재정위기에도 헤어나지 못하는 토목 중독

2014년 정부 예산안의 특징은 무려 25.9조원에 달하는 적자와 515.2조원의 중앙정부채무로 상징되는 최악의 재정위기 예산이다. 더 큰 특징은 어려운 재정조건과 사회적 수요의 감소에도 고집되는 토목 예산들이다. 국내 최대 건설사들이 4대강 사업에서 불법과 담합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여전히 굳건한 토목예산 규모를 보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 4대강사업 그림자 여전한 국토부 예산
정부는 예산안에서 ‘SOC 스톡이 어느 정도 확충된 점을 감안하여 투자 규모 확대보다는 운영 효율성 제고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경제위기를 핑계로 과다하게 팽창한 ‘SOC예산을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본예산 24.3조에 비춰 소폭 감소한 23.2조원으로 수립했고, R&D 등을 명목으로 실질 건설투자는 60.3조원에서 도리어 60.5조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특히 국토부의 수자원 관련 분야는 지난해 2.7조원에서 약 10% 감소한 2.4조원에 달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매년 2-3조를 쓰는 것보다 한꺼번에 투자해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더니, 늘어난 예산을 줄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내세운 예산 배정의 이유가 ‘물 부족 해소,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 절감 등’이고 이를 위해 ‘다목적댐 적기완공과 국가하천 정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용도 부재와 과잉 공사가 분명한 이들 사업을 추진하면서, 4대강 사업의 근거를 한 자도 고치지 않고 복사해 놓다니, 참으로 민망하다.

고속도로 연장을 대거 연장하겠다는 계획(13년 4,112 → 17년 4,788km) 등 도로 건설 위주의 정책도 시대착오적이긴 마찬가지다. 도로의 중복 과잉 건설에 따른 비효율과 환경 부하 등을 고려한다면, 국토부 예산의 36%(8.4조원)에 달하는 도로 예산의 조정은 시급하다.

○ 원전과 공급계획만 있는 에너지예산
지난여름을 원전마피아의 부정부패와 수요관리의 실패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보냈음에도, 에너지 정책의 변화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기껏 내놓는 것이 실시간 전기요금제가 도입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는 스마트그리드나 고효율기자재 보급 같은 캠페인성 이벤트 정도다. 실질적인 전력수요 감축 사업은 기획하지도 않고 기업들에게 돈을 퍼다 주는 전력부하관리를 이어가 내년에도 395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전력부하관리 사업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정상화한다면 필요 없는 사업이다. 언제 또 원전에 문제가 발생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년도 전력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토목DNA로 오염된 환경부 예산
환경부의 예산 역시 토목 추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동일소득(1인당 GDP 27000달러) 기준 분야별 예산 비중을 비교해보면, 지역개발에 미국 2.0%, 독일 2.2%, 일본 2.1%에 비해 한국은 2배인 4.2%로 한국의 환경정책은 토목과 시설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타국가에 비해 월등히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이러한 토목 중독은 환경부 전체 예산(6.4조원)의 67%(4.3조원)가 집중된 상하수도 등 물 분야에 두드러진다. 물 분야 예산의 대부분은 하폐수처리 시설 등에 쓰이는데, 4대강 사업의 실패 이후 수질 관리가 곤란해지면서 더 악화됐다. 또한 환경부 사업이라 보기 어려운 치수사업과 하천정비사업까지 영역을 넓힌 탓도 크다. 2014년 예산에서도 물분야는 전년 대비 1170억원이 증가했는데, 이는 환경부 전체 예산 증가액 970억 보다도 많을 뿐더러, 대기, 폐기물, 자연 및 해양환경분야를 희생시킨 결과다.

환경운동연합은 토목 중독에 대한 성찰이나 조정이 없는 정부 예산안이 실망스럽다. 특히 4대강 사업의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확인하며,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성인지 예산이 별도로 작성되는 것처럼, ‘토목예산’에 대해 별도 관리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환경연합은 2014년 정부 예산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것이며, 과도한 토목 위주 정책들에 대해, 환경부 예산 수립의 방향을 바로 잡는 일을 위해 활동할 것이다. 독자적인 분석 보고서와 토론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2014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환경운동연합 2013년 9월 26일자 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