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낯익은 이야기들이었다.

함세웅 신부를 직접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인데 신부님 이야기는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들었을까?

<함세웅 신부, 주진우 기자의 현대사 콘서트> 대전 편을 찾아간 날, 토크 콘서트 내내 궁금했던 것이다.

 

함세웅 신부는 11월 13일부터 서울, 부산, 대구를 돌며 현대사 콘서트를 열고 있었다. 

“서울 명동에서는 ‘역사’에 대해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부산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때여서 ‘정치’를 주제로 부마항쟁과 함께 박정희 살해와 배경을 이야기 나누었고, 대구에서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3.15 부정선거, 2.28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했던 역사, 74년 인혁당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대전에서는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대전 <현대사 콘서트>의 주제는 ‘통일’​.

먼저 함세웅 신부가 간략하게 통일에 관해 강론하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6.15공동 선언을 통해 북한과 합의한 사항이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북송금에 발목잡혀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임기 말 북한을 방문해 10.4남북 정상선언을 받아왔으나 임기말이라 국민들 마음속에 자리잡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를 지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금은 6.15공동 선언문이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어요. 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정책을 잘 이어받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퍼주었다 비난만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북한에 우리가 퍼 준 것은 없습니다. 서독이 동독을 도운 것에 비하면 몇십 분의 1, 몇백 분의 1도 안됩니다.

남한 5,000만 인구가 한 사람당 지금까지 5,000원 정도 도와준 것밖에 안됩니다.’

이번엔 북한의 인권을 들어 비난하자 굶주린 사람들한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바로 인권이라고 강변했던 김대중 대통령 이야기가 참 설득력 있지 않습니까.

‘통일은 대박’

그 얘기를 듣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순교자, 순국선열의 얼과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몸 바친 분들이 피땀흘려 얻은 노고의 결실입니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함세웅 신부의 이야기를 받았다.

 

“민간교류, 종교간 교류가 이명박 정권 중반부터 막혀버렸어요. 잘못됐다 말하면 북한으로 가라 하고, 종북이라 하고, 빨갱이라 몰아세웁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도 무기만 팔려고 들 뿐 진심은 우리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분단을  극복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비록 물리적 정치적으로 분단되었지만 생각을 통해, 기도를 통해서 이미 남북을 넘나들고 북한 동포를 마음으로 껴안으면서 '통일은 이미 되었다' 라는 생각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8일 명동성당 미사 강론에서 남한 국민들에게 전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북한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려운 북한을 도와야 합니다.

남과 북 국민들은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은 어머니가 같다는 뜻입니다.

어머니가 같으면 한 형제자매이므로 여러분은 마땅히 북한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신학적 철학적 측면에서 통일은 됐습니다. 이제 통일을 방해하는 분단 세력들, 이익만 아는 정치인들 이런 사람들을 제거해야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노신부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이미 통일은 이루었다고 말하는 단호함. 미군정 시기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은 진보학자만큼이나 날카롭고 설득적이었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에 종북시민이 어디 있느냐, 건강한 민주시민이 살고있는 이 시대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친일 후손이고 매국노이며 유신독재 잔당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 함세웅 신부는 여전히 젊은 기백이 넘쳤다.

 

주진우 기자는 지금 우리 현실과도 맞닿아있는 현대사 키워드를 짚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70년대 80년대 민주화의 산증인이기도 한 노신부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해방 직후 우리역사를 로마 유학시절 유럽 교수 신부들로부터 들은 대로, 신학교 시절 진취적인 교수 신부에게 배운 가르침대로 역사를 꿰뚫는 통찰로 우리에게 깨우침을 전하고 있었다.

그 속엔 우리 가톨릭의 뼈아픈 성찰과 회개하는 노력도 있었다. ​        ​

주진우 기자가 북한의 중국개방을 마음 아파하며 질문하였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풍부한 지하자원, 평양은 관광도시로 발전할 여지가 많은데 중국이 선점하여 개발을 시작했다. 이러다 북한이 중국의 속국 내지는 자치주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

함세웅 신부도 그 점을 가슴 아파했다. 그렇지만 '꿈'을 지녀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이룩해야 할 '통일'의 의미가 무엇일까, 왜 민족일치와 화해를 이루어야만 하는가를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고.

 

일을 논하는 6자 회담 자리에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가 참여하는데 그들이 남북통일을 원하겠습니까? 

일본이 바랍니까? 중국이 바랍니까? 미국이 바랍니까? 러시아가 바랍니까?

그들은 통일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 외교정책을 잘 이용해서 남과 북 당사자가 회담하여 남북일치를 얻어내야만 합니다. 국제정세 속에서 정치인들이 종속된 외교를 펼치지 않도록  우리 국민이 깨우치고 성숙된 태도를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부님 이 말씀이 오늘 현대사 콘서트의 핵심이 아닐까.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은 주진우 기자가 사전에 모은 질문지 중 골라서 묻고 함세웅 신부가 대답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누구는 당시 이슈였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고 누군가는 이 암담한 시대에 새로운 빛을 줄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적당히 솔직하고 적당히 유머러스한 대답들.

그리고 이어지는 주진우 기자의 자기고백.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오래전 함세웅 신부를 만나 이렇게 살게 됐다 투덜거리지만 아직까지 무서워서 보도하지 못한 사건은 없고 조사(? or 취재?)가 부족해서  보도하지 못했다는 주 기자는 함세웅 신부를 만날 때마다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고 고백했다.  

그는 함세웅 신부를 존경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래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요청한 현대사 콘서트에 참여하고 젊은이들을 이 자리로 끌어오는 역할을 맡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현대사 콘서트가 열린 대전 기독교봉사회관 2층 태평홀은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젊은 커플과 수능을 끝내고 온 학생부터 부모와 함께 온 중학생까지, 사실 몇몇 중년들을 뺀 젊은 사람들은 주진우 기자를 보러 온 것처럼 보였다.

'쫌말('쪽팔리게 살지 말자'의 준말이란다)'이라 불리는 주진우 기자의 열혈팬들이 몰려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낯익음의 정체는 「껍데가는 가라」-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신부와의 대화 라는 책이었다.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이었던 손석춘 교수와의 대화집.

신부님이 걸어온 길이 더욱 숭고해 보였다. 주진우 기자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저는 신부님에 대해서 책으로만 읽었고, 역사 속에서 고비 고비마다 신부님이 계세요.

그래서 기자 생활하고 현대사를 공부하고, 삶을 공부할 때, 신부님이 어떻게 보면 이 시대에 있어서

위인 같은 분인데 신부님을 뵐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그래요.

이제는 자주 못 뵙는데… 내일이 마지막인데 여러분과 함께 이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한테는 굉장히 축복 같은 시간인데 여러분도 신부님을 알아가는 일이 굉장히 축복 같은 일일 거에요.

콘서트 말미 주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