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2015-11-23 19:24:38



친일 청산 앞장서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인터뷰. 사죄와 반성이 표백된 정부… 시민을 향한 폭력과 언론 장악은 일제강점기 수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1세기의 히틀러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치관도 아베의 것과 똑같다.”


11월19일 서울 종로구 (주)한국산문·한국산문작가협회 사무실에서 임헌영(74·사진) 민족문제연구소장을 만났다.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한 문학평론가로서 그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두 차례 투옥되기도 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2003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친일인명사전>(2009) 편찬 작업을 이끌었다.


임 소장은 박근혜 정권의 몰염치와 부정의, 부도덕을 인터뷰 내내 질타했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국정 역사 교과서를 강행하다 못해 농민을 물대포로 직사해 사경에 빠뜨린 정권을 보면서 참담하다고도 했다. 그는 야당과 진보세력, 시민사회단체가 역사의 큰 흐름을 보면서 힘을 모아야 하고, 젊은이들은 정치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점을 깨닫고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합법과 불법을 마음대로 재단해

류우종 기자

11월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정권의 폭력성이 다시금 드러났는데.



독재정권들이 해왔던 국가폭력이 드디어 노골화·양성화되기 시작하는구나 하고 참담함을 느꼈다. 박근혜 정권은 뭐든지 자신들이 판단해서 합법과 불법을 정한다. 세계사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자기들 의사에 안 맞는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내몰고, 자신들이 하는 것은 다 합법이라는 게 공식화돼버렸다.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는) 동영상을 보면 명백한 상해 행위다. 살인 의사까지는 모르지만 직사 살수를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또 물대포를 쏘았다. 시민의식이 있는 나라라면 정권의 위기까지 올 수 있는 반인륜적인 행위다.


동영상을 보고 1987년 6월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서울대병원에 가서 백남기씨 가족을 만나고 쾌유를 빌고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에서 아무도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정부 어느 기관에서도 일절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과연 국민을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이미 모든 것을 장악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집권층에서는 생각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도 100% 언론을 장악하고 감독·검열했다. 그래도 독립운동가들이 계속 나왔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어떤 악조건에서도, 아무리 겨울이 추워도 정의감은 항상 솟게 돼 있다. 어떤 독재하에서도 저항세력이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정부 손아귀에 들어간 언론이 강하다고 해도, 손아귀에 들어 있지 않은 언론 또한 강하다.


경찰이 집회·시위 진압을 넘어 탄압했다는 지적도 많다.


이미 이명박 때부터 이골이 났다. 정권 비판하는 이들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기구로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정권 비판자들을 탄압·조작하는 데에는 세계에서 금메달을 줘도 될 정도다. 세금 잘 걷어가고 부정선거 잘하는 면에서는 완벽한 국가기구다. 어떤 부당한 권력에도 충성하겠다는 사람들이 어느 분야든 줄을 서 있다. 그러나 역사는 정의와 부정의의 길항 관계다. 집권세력은 국민을 탄압하면 다 되는 줄 알지만, 세계 역사에서 탄압만으로 성공한 예는 없다. 탄압이 세지면 저항도 세진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독재세력조차 국민에게 미안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지식인·언론인·예술가들을 만나면 일말의 미안함 같은 것을 내보였다. 이것이 없어지기 시작한 게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박 대통령한테서는 아예 표백돼 없어져버렸다. 오히려 올바른 일을 한 사람들이 악이고, 나쁜 짓 한 사람들이 옳다는 것을 심자는 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나타난 것이다. 그 뿌리는 친일·반민족 행위다. 일말의 양심적 가치도 없다. 무엇을 잘못했느냐에 대한 생각이 없다.


국정화는 21세기형 친일파 양성 선언


현 정부의 폭력성에 맞서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시민들은 이제라도 빨리 한국 근현대사 공부를 해야 한다. 왜 집을 사기 어렵고 취직 걱정을 해야 하는지,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가난하며, 과연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있는지, 이런 질문들을 해야 한다. 왜 먹고살기 힘든지 시민들이 생각을 해봐야 한다. 여기서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 역사는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현실이 왜 이런지에 연관돼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세력은 친일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의 불행과 내일의 재앙을 가져오는 것은 과거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취직 공부 전에 역사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의 뿌리가 무엇인지, 역사의식이 무엇인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


젊은 층의 투표율은 여전히 낮다. 참여하지 않는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치가 자기 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살다보면 정치가 바로 내 삶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는 왕조시대보다 우리의 운명을 훨씬 더 깊게 좌우한다. 병원에 가서 돈을 얼마 내는가부터 직장에서 얼마나 돈을 받고 세금을 얼마 내는지를 정치가 결정한다. 결혼해서 자녀 학교 보내는 문제, 취직하는 문제, 직장에서 상해를 당했을 때 보상받는 문제, 다 정치권력이 결정한다. ‘나는 정치와 상관없다’고 하는 젊은이들은 무지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현대인은 모두 정치의 지배를 받고 있다. 정치가 내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는 정의와 부정의의 길항 관계다. 집권세력은 국민을 탄압하면 다 되는 줄 알지만, 세계 역사에서 탄압만으로 성공한 예는 없다. 탄압이 세지면 저항도 세진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나.


국정화의 본질은 역사의 날강도 작업이다. 21세기형 친일파 양성 선언이다. 21세기형 친일파란 외세 의존, 민족 분열 영구화, 민주주의와 국민복지 반대, 평화 대신 전쟁을 지지하는 자들이다. 역사를 조작하려는 이들은 영구 집권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영구 집권을 꿈꾸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임기가 2년밖에 안 남았는데 역사 교과서를 1년 안에 써서 보급하겠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 역사 교과서를 쓰지 않을 텐데 왜 계속 국정화를 진행하는지에 대해 질문해봐야 한다. 그 저의가 무엇일까, 이것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설령 박근혜가 각성해서 국정교과서를 포기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정치인이 박근혜였다고 영원히 심판해야 한다. 역사를 날조하려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집권층에서 대통령중임제, 이원집정부제 개헌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권 교체를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그대로 이긴다는 게 전제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이미 떠난 사람들이다. 국민을 실험실 속에 집어넣는, 그런 만화 같은 발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 아닌가. 국정교과서 논쟁은 인간의 상식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하는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생각하면서 다뤄야 한다.


진보세력 옮음의 오류 깨달아야


‘혼의 비정상’과 같은 박 대통령의 언어는 어떻게 보나.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가관을 가지라고 말한다. 오히려 대통령에게 국가관을 가지라고 얘기하고 싶다. 국가관은 헌법이 정하는 것이다. 외세에 저항한 3·1운동,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남북 평화통일과 국민복지, 모두 헌법 전문에 나와 있다. 우리나라 국가관은 헌법이 말하는 것이지 그때그때 집권하는 대통령이 말하는 게 아니다. 유신독재 체제가 국가관이 돼야 한다는 박 대통령 내면의 소망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다.


무기력한 야당에 대한 책임론도 만만치 않다.


4·19혁명 뒤에 5·16 군사쿠데타를 허용한 것은 민주당의 잘못이다. 집권당이 그 엉성한 쿠데타 하나를 분쇄 못했다. 그것이 야당의 한심한 뿌리다.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윤보선의 득표 차이가 15만6천 표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3명의 야권 후보가 얻은 표를 합치면 70만 표가 넘는다. 국민은 5·16을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야당이 정치공학에서 실패한 것일 뿐, 국민은 실패하지 않았다. 1987년 대선에서도 노태우가 얻은 게 36%에 불과하다. 김대중·김영삼이 분리돼서 얻은 표가 55%다. 전두환 군부독재 세력 또한 국민이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실패는 야당의 무능 때문이었다. 이 점을 반성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도 똑같을 거다.


진보세력이나 시민사회단체는 어떤가.


진보세력은 4·19혁명 이후 올바른 민주주의를 위해 항상 앞장서왔다. 훌륭한 일을 해왔지만 분열하는 데 일조한 것도 진보세력이다. 말을 들어보면 다 옳다. 그런데,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다. 모두가 옳기 때문에 분열하고 패배했다. 그 옳음이 오류였던 것이다. 제발 더 크게 역사를 봐달라고 말하고 싶다. 분열했던 사람들은 무조건 반성해야 한다. 하나로 뭉쳤으면 집권을 앞당길 수 있었다. 집권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다 배제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읍참마속과 석고대죄를 해야 한다. 자기 단체가 맡은 분야에만 열중하다보니 종횡적인 연대나 현대사를 크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자기 분야만 잘하다보니 전체를 아우르고 크게 보는 게 결여돼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도 필패다.


아베의 속내, 박근혜의 속내


큰 틀에서 볼 때 한국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나.


정치세력이 우를 한 번 더 범하면 민족사를 그르칠 수 있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박근혜의 ‘통일 대박’은 구호에 불과하다. 남북 문제와 대일 문제를 보면 동아시아의 운명이 달려 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곤혹스럽다. 한국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건 남북 화해와 공존뿐이다. 하지만 부당한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오로지 북한에서만 찾고 있다. 북한이 계속 저렇게 해줘야 지금 집권세력에게 유리한 거다. 미국에는 또 얼마나 좋은가. 무기 팔아먹고 무역에도 좋다. 부당한 세력이 영구 집권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처럼 되는 것이다. 아베는 21세기의 히틀러다. 한국전쟁이 일본의 경제 부흥을 가져왔던 것처럼 한반도의 재앙이 일본에는 제2의 경제부흥기다. 이것을 노리는 게 일본과 아베의 속내다. 박근혜의 가치관도 아베의 것과 똑같다. 내부적으로는 너무나 궁합이 잘 맞지만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쇼를 하는 거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이 고비, 갈림길이 아닐까.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삶, 우리의 팔자가 걸린 문제다.


인터뷰 막바지, 임 소장은 집권세력을 욕하고 규탄만 해서는 대책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뭉쳐야 한다고 했다. “나 자신부터 석고대죄를 한다. 다 우리 잘못이다. 이제라도 뭉치면 된다. 모래알로는 안 뭉쳐지지만 콘크리트를 만들어 철근에 넣으면 백년을 가는 튼튼한 집이 된다.”


전진식 기자 [email protected]


박로명 교육연수생 [email protected]


<2015-11-23> 한겨레

☞기사원문: “역사를 조작하려는 이들은 영구 집권을 꿈꾸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