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드사 직원 말만 믿고, 빚갚으면 큰일 납니다

'구사일생' A씨의 사연... 소비자 등쳐먹는 유명 카드사에 대처하는 법

14.09.09 14:02l최종 업데이트 14.09.09 14:02l

조인숙(minsa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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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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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이하 민생연대) 상담실에서 일합니다. 8월 마지막 주 화요일, 경남 김해에 산다는 47세의 여성 A씨가 민생연대로 전화를 했습니다.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었고 절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2005년 A씨에겐 1700여만 원의 채무가 생겼습니다. 남편의 사업 문제로 카드빚이 생겼고, 연체가 되자 카드사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독촉전화를 했습니다.

카드사 담당자는 1700여만 원을 8년 동안 매월 23만 원씩 갚으면 다 변제할 수 있는 조건으로 대환대출을 권유했습니다. 대환대출은 대출을 갚지 못할 경우 연체금을 같은 종류의 대출로 전환해줘 기존 대출금을 갚는 것입니다. A씨는 '나눠 갚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카드사 담당자의 말대로 8년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돈을 갚았습니다.

A씨는 8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어라 일했습니다. 남편도 본인 앞으로 있던 빚을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해서 모두 갚았습니다. 지난해, 두 부부는 열심히 일해서 빚을 다 갚았다는 생각에 좋아했습니다. 기쁘고 또 한편으로 서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래도 이제 더 이상 빚이 없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카드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2005년 대환대출 당시 계약조건이 1700여만 원 중 1030만 원은 8년 동안 23만 원씩 변제하고 나머지 687만 원과 687만 원에 대한 그동안의 이자 1100만 원을 더한 1800여만 원은 8년 후 만기 일시상환 조건이었다며, 1800여만 원을 또 다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A씨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냐고 따지니, 그 당시 담당했던 직원은 퇴사를 했고 계약서에는 분명히 위 조건대로 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계약서를 달라고 하여 확인해보니 계약서에는 정말 위와 같은 조건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죽어라 갚았는데, 계약서엔 또 빚이 떡하니...

정말 하늘이 노래졌다고 합니다. 카드사 담당자 말만 믿고 계약서를 확인하지 않은 게 죄였습니다.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1800여만 원을 또 다시 갚아야 한다니... 정말 죽고 싶었답니다. 카드사는 선심 쓰듯이, 일시상환이 힘들면 또 다시 8년 동안 23만 원씩 납입하는 조건으로 갚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A씨는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줄 알고 그때부터 또 2014년 7월까지 19개월 동안 23만 원씩 갚아나갔습니다.

그러다 A씨는 지난달 아주 크게 뺑소니 사고를 당했습니다.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하여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뺑소니 차량을 잡지 못해 병원비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치료도 다 못 받고 퇴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장이 거의 다 파열될 정도의 큰 사고였습니다. 도저히 빚을 갚아나갈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정말 억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정말 죽자'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고 합니다. A씨는 마지막으로 방법을 찾아보자며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곳 민생연대로 전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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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화차>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채권추심이 한 인간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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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사례를 살펴보니, 우선 카드사가 계약서를 교부하지 않았으므로 계약서 교부의무 위반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약 내용을 제대로 고지해주지 않은 고지의무 위반에도 해당되었습니다. 1700여만 원을 8년간 나눠갚으면 된다는 카드사 담당자의 말만 믿고 매달 꼬박꼬박 넣었는데, 결국 거짓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A씨에게 금융감독원에 이 내용으로 민원을 넣으라고 했습니다. 민원을 넣자마자 다음 날 카드사에서 A씨에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카드사에서 연락도 없이 A씨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A씨는 너무 놀랐습니다. 과거 카드빚을 연체했을 당시 혹독한 추심 때문에 카드사에서 전화만 와도 가슴이 뛰었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카드사에서 집으로 바로 찾아온 것입니다.

숨이 컥 막혀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쓰러지는 A씨를 보고 카드사 직원은 큰일 날 것 같다며 몸을 추스르라고 하고는 황급히 돌아갔다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전화를 해서 빚을 400만 원으로 깎아주겠다고 했다가 다시 200만 원으로 깎아주겠다며 민원을 취하해달라고 했답니다.

"200만 원이고 400만 원이고 저는 이제 갚을 상황도 능력도 안 됩니다.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도 없고 병원치료를 받을 돈조차 없어요. 지난 10년 동안 2700만 원 가까이 갚았으면 난 갚을 만큼 갚았다고 봅니다. 더 이상은 갚기 힘들어요."

죽음까지 생각하다 금융감독원에 민원

그러자 다음 날 카드사에서 완납처리 해주겠으니 제발 금융감독원에 넣은 민원을 취하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A씨에게 취하를 할 거면, 카드사에서 완납증명서를 받은 뒤 하라고 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말로 농간을 부린 카드사였습니다. 저는 A씨에게 정확한 문서가 아닌 구두상의 약속은 절대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카드사에서 완납증명서를 가지고 다시 A씨 집으로 왔고, 그제야 채무를 다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저에게 방법을 알려줘 정말 고맙다며 민생연대 사무실에 꼭 한 번 들르겠다고 했습니다. 말씀만 들어도 고맙고, 얼른 몸 추스르라고 하고 나니 제 마음도 안심이 되더라고요.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양산된 2002년 카드대란 이후 카드사들의 횡포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동안 민생연대에도 A씨와 비슷한 일을 겪고 상담을 신청해 온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대환대출을 해준다며 조건을 속이기도 하고, 보증인을 세우게 하여 온 가족이 보증채무로 얽혀 모두 파산하는 상황도 적지 않게 발생했습니다. 추심원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누워 있는 노모의 손가락을 끌어다 보증인란에 지장을 찍게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카드대란 이후 10년도 훨씬 지났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때의 빚으로 아직도 고통받는 채무자가 많습니다. 특히 이제는 대부업체며 불법 사채업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서민들만 더욱 고리대에 놀아나며 곤궁해지고 있습니다. 민생연대에는 사채로 인해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이 더욱 늘어만 갑니다. 상담을 신청하시는 분들께도 드리는 말씀이지만, 중요한 건 문서로 된 계약서입니다. 대환대출을 신청할 때는 반드시 계약서를 받아 내용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나마 서울시가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운영하며 많은 채무자들에게 채무상담과 채무조정제도를 안내해주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채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창구는 전무한 상황입니다. 이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전체적인 채무상담뿐만 아니라 사채 피해자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담창구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카드사나 금융사, 대부업체의 횡포에 당하지 않도록 약탈적 대출이 아닌 금융권의 책임대출과 금융감독원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생연대 상담실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