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유하가 《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는 시집을 상재한 건 1991년이다. 지금으로부터 25년전에 이미 시인은 압구정동으로 상징되는 강남이 대한민국의 중심이며 한국 자본주의의 쇼윈도임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시인 유하는 영화감독이 됐다. 그리고 강남 3부작의 마지막이라고 할 《강남 1970》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유하는 강남을 통해 대한민국과 한국 자본주의를 줄기차게 탐구하고 관찰해 온 것이다. 표현의 형식이 '시(詩)'라는 언어에서 '영화'라는 기계복제매체로 바뀌었을 뿐이다.
유하가 바라본 강남공화국의 실체를 단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땅'이다. 영동(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이라 불렸던 황무지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금싸라기 땅이 된 기적을 통해 우리는 한국사회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집단심성의 작동방식과 상호작용을 석연히 이해할 수 있다.
강남으로 대표되는 토지불로소득은 한국사회 메인스트림의 가장 기초적인 물적 토대가 됐고, 이들은 토지불로소득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한국사회를 조직해 왔다. 그리고 한국사회 메인스트림은 천문학적 토지 불로소득을 바탕으로 사교육전쟁에서 승리해 부를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으로 대물림하고 있다. 메인스트림의 성공스토리를 목격한 대한민국의 수 많은 비주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메인스트림 따라하기에 골물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 한국사회는 난장판이다.
토지불로소득으로 부를 쌓는 사회, 그 부를 지키고 늘리고 세습하기 위해 사회 전 부문을 개조하는 사회, 시민들이 토지불로소득으로 쌓은 부를 부러워하고 그 행운을 누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몰두하는 사회가 건강하고 균형있게 발전할 리 없고 지속가능할 수도 없다. 강남공화국은 병든 탐욕의 언덕에 쌓아올린 허무의 바벨탑이다.
유하의 《강남 1970》에는 강남 땅의 소유를 둘러싸고 날것의 폭력과 유혈이 낭자하다. 적어도 오늘날 그런 식의 폭력과 유혈은 보기 어렵다. 폭력과 피가 이미 제도 안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집단심성 등에 일관되게 관철되고 투사되는 강남스타일은 보이지 않을 뿐 우리의 삶과 미래를 규정하고 결정짓고 있다. 우리가 땅을 사랑하고 불로소득을 탐하는 한 강남공화국의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자유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노예로 살 것인가?
<출처 : 2014년 1월 28일자 허핑턴포스트(http://goo.gl/29xT0G)>
이 태 경 /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