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불어터진 국수'발언을 듣는 심정은 무참했다. 박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난 해 국회를 통과한 '부동산 3법(주택법 개정안,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개정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의미하며, 각각의 내용은 민간택지의 분양가상한제 탄력조정,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3년간 유예, 재건축 조합원 주택분양 3채까지 가능이다)'을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했다. 박 대통령의 육성을 직접 확인해보자.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를 생각하면 저는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운을 뗀 뒤 “지난번 부동산 3법도 작년에 어렵게 통과됐는데 비유하자면 아주 퉁퉁 불어터진 국수인데, 그것을 그냥 먹고도 경제가, 부동산이 힘을 좀 내가지고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활성화되고 집 거래도 많이 늘어났다. 불어터지지 않고 아주 좋은 상태에서 먹었다면 얼마나 힘이 났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경제가 이런 불어터진 국수를 먹고도 힘을 차리는구나, 그래서 앞으로는 제때제때 그런 것을 먹일 수 있도록 좀 중요한 경제활성화를 위한 법안들도 통과가 (돼야 한다)”며 “지금 1년 넘은 것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다 힘을 합해 통과시키고 우선 경제를 살리고 봐야 된다”고 말했다.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79351.html?_fr=mt1r

 

박 대통령은 부동산 3법을 불어터진 국수로 여기고 불어터진 국수라도 먹고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고 그 여파로 불쌍한(?)경제가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주택 매매거래량이 늘어나고 가격이 들썩이는 지금의 주택시장이 정상이고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촉매제 역할을 한 건 이른바 부동산 3법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건 정말 완전한 착각이며, 위험하기 이를데 없는 인식의 전도다.

 

현재 주택 매매거래량이 늘어나고 가격이 들썩이는 건 치솟는 전세가격을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매매시장으로 들어오는 가련한 임차인들 덕분이다. 그리고 이 가엾은 임차인들을 토기몰이하듯 매매시장으로 몰아댄 게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임차인들은 부동산 취득비용과 재산세 부담, 주택가격하락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매매가격에 육박하는데다(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679123.html?_fr=mt1r) 매물이 너무나 희귀해 도무지 구할 길이 없는 임대차 시장에 머물 방도가 없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매매시장으로 들어오는 중이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전세대란에 피눈물을 흘리는 중인데 국정의 최고 책임자라는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고 이로 인해 경제도 기력을 차린다며 희희낙낙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일부러 시민들을 못살게 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박 대통령 나름으로는 '수급의 극단적인 불균형으로 인한 전세가격 폭등 → 전세대책의 의도적 무시 → 전세시장에 머물 방법이 없는 임차인들의 매매시장 진입 → 주택거래량 증가 & 주택가격 상승 → 건설경기 활성화 & 부의 효과에 의한 소비 증가 → 경제성장률 상승'이라는 선순환 도식을 머릿 속에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선순환 고리가 가동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박 대통령이 꿈꾸는 선순환 고리는 시효가 다했다. 부작용이 크긴 하지만 저런식의 선순환 고리가 유효할 때가 있었다. 고용이 보장되고, 소득이 빠르게 늘며, 자산가격 상승의 수혜가 고루 퍼지던 시절이 그 때다. 그러나 그 시절은 과거의 일이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박 대통령은 현실을 직시하고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주문은 박 대통령의 퍼스낼러티와 스타일 앞에서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진다.

 

가뜩이나 소득대비 주거비가 높은데 더해 빚내서 집을 사거나, 빚내서 전세보증금을 맞춘 중산층과 서민들은 다른 부문에 소비를 할 여력이 없다. 그나마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 다행이지만, 글로벌 경제의 심장 미국이 자산 버블의 선제적 제거를 위해 기준금리를 과격하게 올릴다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게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나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가계가 이를 견딜 수 있을까?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부동산 지옥의 초입에 있거나 이미 부동산 지옥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서민과 중산층을 부동산 지옥으로 밀어넣은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끝으로 언론에게 한 마디. 참여정부 당시 조중동을 위시한 대부분의 언론이 버블세븐 위주의 주택가격 상승에 대해 정부의 무능을 얼마나 힐난했던가? 종부세를 세금폭탄이라고 얼마나 사납게 몰아세웠던가? 하지만 노무현은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해 부동산 투기와 맞섰고 그 덕분에 전 세계가 부동산 버블 붕괴로 홍역을 치르는 사이 대한민국은 안녕했다.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참여정부 당시 임대차시장은 안정돼 있었다. 버블세븐 위주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지만 이런 현상이 주거비 상승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쉽게 말해 버블세븐 위주의 아파트 가격상승은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한 심리적 스트레스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반면 지금의 전세난은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협이다.

 

노무현에게 그토록 가혹했던 언론이 정작 중산층과 서민들의 숨통을 치명적으로 조이고 있는 전세난에 대해 박근혜의 책임을 얼마나 준열하게 묻는지 묻고 싶다. 언론이 노무현을 잡듯 박근혜를 잡았다면 박근혜가 태평하게 "불어터진 국수" 운운하는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없었을 것이다.

 

<출처 : 2014년 2월 25일자 미디어오늘(http://goo.gl/r0J08v)>

 

이 태 경 /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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