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은 어디일까? 홍대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홍대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유행과 문화의 첨단을, 소비의 전시장을 의미한다. 물리적 공간으로 봐도 홍대는 서교동, 동교동, 상수동, 합정동, 망원동, 연남동 등을 아우른다. 본디 홍대는 홍대역 인근과 홍대 정문에서 지척에 해당하는 곳 정도를 물리적으로 포섭했지만, 교통망이 집중되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무서운 속도로 주변을 빨아들였다.
홍대를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할 때 단연 중심에 놓아야 하는 주제가 부동산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동산 소유주들이 부동산의 임대 및 처분을 통해 취득하는 불로소득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중심에 놓고 사고할 때 홍대는 상가 등의 임차인들이 흘리는 피눈물이 마를 새 없는 장소이고, 홍대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는 건물주들의 웃음이 그치지 않는 사회경제적 공간이다.
홍대의 발전(?)궤적을 따라가면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이 어떤 연유로, 어떻게 형성되고, 이 불로소득을 극소수의 토지 및 건물주들이 독식하는지가 극명히 드러난다. 아래 인용한 기사를 보라.
홍대 상권은 1984년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압구정 상권을 형성한 오렌지족이 홍대 쪽으로 모이면서 클럽 문화가 형성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음악클럽 붐을 타고 젊은이들이 대거 몰렸다. 그러던 것이 2010년 12월 인천국제공항철도가 뚫리고 2012년 12월 경의선역이 개통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최근 4년 사이 방문객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도 홍대 상권이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가 서울의 대표 상권 15곳의 전철역과 버스정류장 승하차 인원 빅데이터를 분석해 비교한 결과, 2010~2014년에 홍대 상권 방문객(승하차 인원 합계)이 21.9%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홍대 상권 다음으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인 곳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으로 같은 기간 21.3%늘어났다. 세번째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상권으로 2014년 방문객이 2010년에 견줘 19.8%늘었다. 자연스럽게 홍대 상권은 웹 포털이나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서울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핫플레이스'(hot place)로 부상했다. 핫플레이스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기 있는 장소를 뜻한다.
… 홍대 상권의 중심인 서교동 일대는 홍대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클럽 상권’에서 ‘대형 복합상권’으로 진화했다. 특히 서교동 일대에서도 중심부인 KT&G건물(별칭 상상마당)주변 거리는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다. …홍대 상권에서도 핵심 권역으로 떠오르면서 전용 100㎡안팎 점포의 권리금이 최고 3억원에 이른다. 50㎡짜리 미만의 소형 점포도 보증금 1억원에 월세가 500만~600만원 수준이다.
… 홍대 상권 일대를 변화시킨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합정역 주변에 들어선 메세나폴리스다. 메세나폴리스는 GS건설이 4년간 약 1조 2천억원을 투자해 2012년 8월 입주가 시작된 복합단지로, 주상복합아파트와 문화쇼핑센터가 결합됐다. … 스기야마 다카시 메세나폴리스몰 제너럴메니저는 “지하철 환승역이 연결된데다 홍대를 찾는 젊은 층과 상암동 주변의 직장인 등 유동인구 연령대가 20대부터 40대까지 폭넓게 형성돼 있다”며 “홍대 상권의 팽창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특유의 젊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메세나폴리스의 등장으로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변하며 가치를 높인데 있다”고 말했다.
… 주차장길 핵심 상권의 2~3평 점포가 보증금 3~4천만원에 월세 300만~400만원 수준이다. 반면 와우산로 이면도로는 10평 기준 월세 250만~300만원이라 다소 저렴하다.
… 인근 K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양화로 6길 30평 기준 월세는 300만~400만원으로 권리금 역시 2억~3억이나 된다”며 “일부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몇년 새 월세가 2배 이상 올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임대료가 오를 대로 올라 어설프게 들어와서는 권리금도 못 챙기는 수가 있다”고 덕붙였다.
… 지하철 2·6호선 합정역과 6호선 상수역 사이 지역은 2009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강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고 50층 높이로 개발하겠다며 ‘합정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로 인해 빌라 지분 가격이 3.3㎡당 1500만~1800만원에서 몇달 새 4500만~6천만원까지 뛰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5. 8. 핫플레이스 홍대 상권 93~99P 발췌
위의 기사에서 보듯 홍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간명하되 도식적이고 폭력적이다. 이것은 일종의 영겁회귀이며 개미지옥과도 같다. 부동산 불로소득에 방점을 찍고 홍대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패턴으로 만들면 대략 아래와 같을 것이다.
먼저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교통이 좋은 곳에 분위기 좋은 공연장, 갤러리, 카페, 식당 등이 입주해 장사를 한다. -> 유행과 문화를 쫓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되고 장사 등이 잘 된다. -> 입소문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더 몰려든다. -> 교통인프라가 더 확충되고 랜드마크 건물들이 들어선다. -> 땅값과 보증금과 임대료와 권리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 견디다 못한 임차인들이 변두리로 쫓겨난다. -> 임대료 수입과 부동산 매매차익을 얻는 부동산 소유주들만 행복하다.
단언컨대 홍대 등의 핫 플레이스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땅값이 치솟고 임대료가 치솟아 지갑이 날로 두둑해지는 사람들 보다 사회경제적 처지가 나은 사람들은 몇몇 재벌 말고는 찾기 힘들다. 홍대에 어지간한 부동산을 소유한 가문은 사업이나 주식이나 노름을 하지 않는 한 대를 이어 호의호식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들이 누리는 행복 중 많은 부분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홍대 부동산소유주들이 누리는 부의 압도적 부분이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홍대에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들은 홍대가 지금과 같이 대한민국 최고의 핫 플레이스가 되는 데 기여한 것이 거의 없다. 홍대가 대한민국 최고의 핫 플레이스가 된 건 위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세금으로 투입한 각종 인프라 덕분이고, 홍대를 특색 있는 문화명소로 만드는데 문화자본을 투입한 임차인들 때문이다.
온갖 문화.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되고, 문화자본이 투입되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이치. 특정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면 지대가 치솟고, 지대가 치솟으면 땅값이 폭등한다. 부동산 소유주들은 단지 특정 공간에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와 타인이 만든 부를 독식하는 것이다. 특정 공간의 자리에 홍대를 놓으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물론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합법이다. 그러나 그처럼 부정의하고 비효율적인 일도 세상에 드물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최소주의적 정의(justice)는 “기여한 자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가져가는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이 최소주의적 정의에 완벽히 반한다.
홍대에서 장사하다 쫓겨난 임차인들은 자조적으로 ‘소원이 건물주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청소년을 비롯한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의 꿈이 건물주가 돼 임대료를 받으며 놀고 먹는 것이라는 말도 꽤 오래전부터 회자된다. 어쩌다 다아나믹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대다수 시민들의 꿈이 건물주인 나라에 미래와 희망은 존재하기 어렵다.
<출처 : 2015년 9월 8일 뉴스타파(http://goo.gl/Phs1D2)>
이 태 경 /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