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암덩어리이고 쳐부수어야 할 원수”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이 마치 규제와의 전쟁이라도 치룰 기세이다. 모든 정부부처가 나서서 규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마주하고 있고 기업들은 제철을 만난 양 신나서 자신들의 이익을 맘껏 채우기 위한 규제철폐를 목청껏 외치고 있다. 심지어 국민생존과 미래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안전과 환경관련 규제조차 암덩어리로 규정하고 폐기처분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상황이 이쯤되니 국민의 건강과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합리적인 환경론자들조차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되었고, 안전을 위해 화학약품을 포함한 안전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목소리조차 사회흐름과 역행하는 시대착오로 치부당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모든 규제가 악인가? 규제를 풀면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감이 높아질까? 필자 또한 규제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찾아보면 아무런 필요도 없고 사회발전을 방해하는 정말 암덩어리같은 규제도 있을 것이다. 또한 시대가 지나서 무용지물이 된 규제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찾아내어 합리적으로 개혁하거나 철폐하는 것은 대 찬성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들의 안전과 환경보전에 관련된 규제들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구미에서 터진 불산누출사고를 대부분의 국민들은 기억할 것이다. 사고 직후 대부분의 대통령 후보들은 물론이고 언론들이 나서서 정부와 기업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했고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화학물질의 등록·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제정하였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 구미시민들의 악몽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화평법 등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악법’으로 규정하고 쳐부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러하니 당시 안전불감증을 질타하던 각종 언론들이 언론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마저 버리고 앞다투어 화평법 혁파를 외치고 있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불산을 포함한 지극히 위험한 화공약품을 누출한 사건은 구미에서만이 아니다. 구미사고가 있는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 최대기업이라는 삼성전자에서도 불산가스 누출로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고 전국 곳곳에서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안전사고가 속출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화평법을 없애야 할 것인가? 필자는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당시 ‘구미 불산가스 피해 진상조사단장’으로 구미를 몇차례 다녀온 적이 있고 진상규명과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경험이 있다.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는 말이 필요없는 안전불감증에 의한 인재였고 사후대응 미숙으로 피해를 엄청나게 키웠었다. 안전규제를 폐지하게 되면 이러한 사고는 더 자주, 더 큰 규모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안전문제와 더불어 가장 심각한 것은 환경문제이다. 규제가 있어도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4대강사업, 새만금사업, 뉴타운 등이 추진되었고 그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가 일어났다. 그런데 그나마 있던 환경관련 규제마저 완전히 풀게되면 국토의 난개발과 심각한 환경오염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그 후유증은 우리세대는 물론이고 미래세대의 삶과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
당장 백두대간을 비롯한 고산지대에 설치하려는 풍력발전관련 규제를 풀어버리면 도봉산보다 넓은 2,660만평방미터의 울창한 산림지대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수십년동안 지켜왔던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수도권의 허파역할을 해 왔던 기능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뿐만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인 미세먼저는 2015년부터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엘피지 택시보다 미세먼지가 3.5배나 많고 질소산화물을 50배나 많이 배출하는 경유택시 도입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환경규제를 풀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들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모든 규제를 풀어도 안전과 환경규제만은 오히려 강화하여야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이 단순한 명제를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가 나서서 부정하려 하고 있다. 그 부정의 결과는 정책결정자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들과 미래에 태어날 후세들이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될 것이다.
환경과 안전관련 규제는 암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삶과 행복을 지켜주는 마지막 안전장치와도 같은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이마저도 부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최승국(내가꿈꾸는나라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