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효화 투쟁으로 법안·가이드라인 막아야

 

노동시장 개악 합의문을 결국 정부-경총-한국노총이 서명하고 말았다. 한국노총은 지난 13일(일) 저녁 야합안을 잠정합의한 후, 월요일 중집위원회를 통과시켜 일사천리로 노동시장 개악을 추인하여 ‘어용노총’의 역사를 반복했다.

 

한국노총 중집조차 금속노련 위원장이 분신까지 시도하고, 공공연맹 조합원들의 회의장 점거 등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회적 합의는커녕 한국노총 내의 동의도 제대로 얻지 못한 “반에 반쪽”도 안 되는 합의에 불과하다.

 

최악의 노사정합의안

 

노사정위가 야합한 내용은 1998년 IMF금융위기 과정에서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한 노사정 합의보다 심각한 역대 최악의 내용이다.

 

경영악화나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징계해고만 허용하던 기존 근로기준법을 뛰어 넘어 인사평가에 의한 해고를 허용했다(쉬운 해고). 임금피크·성과연봉제 도입까지 포함되는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동의없이 일방 개악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취업규칙 개악). 노사정‘협의’를 거쳐 정부가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이드라인 추진이 현실화되면, 공공기관의 경우 임금피크제와 함께 2단계 정상화 정책 ‘3종 세트’(성과연봉제·퇴출제)가 정부 지침만으로 현장에 강행될 수도 있다. 심지어 노사합의 없이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 바로 이번 야합안이다.

 

기간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고 비정규 계약을 반복할 수 있게하는 것은 물론 파견제 적용 대상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공공기관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는 것까지 합의하고 말았다. 쟁점이 되어왔던 모든 사항에 대해 양보하고 만 것이다(각 쟁점별 세부적인 내용은 별표 참고).

 

물론 한국노총은,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개악, 비정규법 개악에 대해 정부가 일방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 협의를 거쳐 시행한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충분한 “협의”(‘합의’가 아니다) 후에는 정부가 추진하면 그만이다. 박근혜 정부는 형식적인 협의를 몇 번 거친 후, 한국노총의 무기력한 반대의사 표시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라인 제정과 법 개정을 강행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이제까지 허용되지 않았던 인사평가에 의한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일방개정을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즉각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 노사관계의 관례, 인식을 변화시키게 되어 사용자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민주노총, 투쟁태세로

 

민주노총은 이러한 최악의 야합에 강력 반발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정부-경총-한국노총이 노사정 야합안에 서명하는 시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집위원전원이 삭발식을 진행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월요일 비상중집위원회에서 결정된 투쟁방침과 일정을 발표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야합안을 승인하기 위한 중집위원회를 하고 있던 시간 민주노총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중집위원회를 통해 결의한 사항이다.

 

공공운수노조도 민주노총 투쟁방침에 따라 투쟁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16일(수) 중앙위원회에서는 특별안건으로 투쟁계획을 다루며, 공공기관사업본부는 운영위·대표자회의를 개최하여 실제 파업을 비롯한 총력투쟁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계 속에 진행되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노정협의

 

한편, 공공기관 임금피크제에 대한 양대노총 공공부문 공투본과 기획재정부의 노정협의는 어렵게 시작되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공투본이 상반기부터 요구해왔고, 공공부문 단체교섭 구조 발전을 위해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던 노정 간 직접 협의(교섭)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한국노총 소속 일부 단위노조들이 투쟁전선에서 이탈한 상황에서 한계도 있다.

 

9월11일(금) 열린 노정대표 실무협의(공투본 산별 위원장단-기재부 재정관리관)에 이어 열린 실무자협의(13일, 일요일, 공투본 산별 정책실장단-기재부 공공정책국장·과장)에서는 정부가 대부분의 쟁점사항에 대해 양보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7~18일 경 2차 실무자협의를 통해 노정 간 상호 입장을 다시 협의하기로 예정되어 있으나 정부가 전향적인 양보안을 제출하지 않는 한 한계가 분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사정위 야합 이후 정부의 공세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정부 측의 양보가 있다고 해도 의미있는 내용은 아닐 수 있다. 공공운수노조(공공기관사업본부)는 2차 실무자협의까지 진행한 후 추가적인 협의가 필요한지 여부까지 판단할 예정이다.

 

노사정 야합 후, 승리의 전망은 있나?

 

그러나 정부가 노사정 야합으로 자신감을 얻고 노동시장 개악을 강행하려하기 때문에 현장의 불안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이렇게 한국노총까지 정리하고 공세를 펼치고 있는데 과연 저지할 수 있는가?

 

일단 이번 노사정 합의는 그 내용상 심각한 것이 많고, 합의로부터 즉각 효력을 발생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핵심쟁점인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개정은 노사정위 추가 협의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하고,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은 국회를 통한 법제화가 필요한 사항이다. 일반해고·취업규칙은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더라도 법 위반 소지가 있어 국회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투쟁과 국민여론의 확산을 통해, 정부가 일반해고·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사실상 제정할 수 없도록 압박해야한다. 민주노총의 제대로 된 투쟁은 한국노총의 섣부른 가이드라인 추가 합의를 막는 것은 물론, 정부의 일방추진을 막고 국회 차원의 논란을 만들 수 있다. 비정규직법 개악 등 국회 통과가 필요한 쟁점 역시 야당, 진보정당을 통한 국회 내 대응과 함께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을 압박하는 투쟁으로 19대 국회에서의 제정 자체를 지연·저지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합의가 일방적 도입을 허용하겠다고 하는 임금체계 개악(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일반해고(저성과자 퇴출제)를 막는 단위노조의 굳건한 투쟁전선 유지와 함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대정부 투쟁이 제대로 진행되어야한다. 정부가 속전속결로 가이드라인 제정과 법안 통과를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 투쟁시기도 조기에 가시화될 것이다(10~11월경). 모든 단위노조, 지역과 현장 조직에서는 이번 노사정 야합안의 본질과 위험성을 전 조합원에게 신속하게 대대적으로 알리고 투쟁을 조직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세와 투쟁 4호]

사진: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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