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통제사회를 완성하는

전자주민증 도입을 반대한다!

 

전자주민증 도입 시도가 다시 시작되었다. 정부는 주민등록증의 수록사항을 전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등록법 개악안을 지난 9월 20일 국회에 제출했다. 주민증에 전자칩을 장착해 지문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저장하고, 외부에서 리더기를 통해 판독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017년까지 만 17세 이상의 사람 약 4000만명이 전자주민증을 의무적으로 발급받아야 한다. 이미 10여 년 전인 1999년 프라이버시 침해와 예산낭비 논란을 빚다가 결국 좌초한 전자주민증을 아무런 반성 없이 다시 거론하는 정부의 후안무치함에 우리는 경악한다.

 

전자주민증의 도입은 단순히 플라스틱 신분증을 전자칩 신분증으로 대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자주민증은 운전면허증, 건강보험증 등 갖가지 신분증이 연계되는 통합신분증의 등장을 의미한다. 국회에 제출된 개악안은 주민증 수록사항의 범위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중 주민의 수록신청이 있는 것”을 추가하고 있다. 전자칩의 특성상 앞으로 전자주민증에는 공인인증서 등 전자서명과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등도 수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보를 당장 통합 수록하지 않더라도 전자주민증은 주민번호와 지문이라는 연계키를 통해 온라인으로 식별될 수 있으므로 사실상 통합신분증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공공기관이든 민간영역이든 할 것 없이 앞으로는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전자주민증을 리더기에 판독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전자칩에 저장된 개인정보는 순식간에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리더기를 통해서 온라인으로 확인되며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로 전송, 집적될 수 있는 반면 정보주체는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유통되는지 통제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전자주민증은 특히 현재에도 불합리한 청소년보호법, 각종 매체 등급제 등을 강화시키며 연령 확인과 청소년 색출을 빌미로 신분확인 강박사회를 불러올 것이다. 한편 위변조와 유출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정보를 전자화시키는 것 자체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을 극대화시킨다. 전자주민증이 공공영역 뿐만 아니라 민간영역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다 보면 판독 과정이나 온라인으로 전송되는 과정에서 유출될 위험도 따라서 커질 수밖에 없다.

 

신분증의 위변조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신분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존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주민번호의 경우 2006년 발생한 리니지 개인정보 도용 사건, 국민 절반 가까이의 주민번호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된 2008년 옥션 사태 등 도용과 유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정부와 민간을 가리지 않고 주민번호를 요구하고 수집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민증의 경우에도 주민증을 제시해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 위변조 위험도 커지는 것이다.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통합신분증의 등장은 신분증의 활용 자체를 증가시킴으로써 위변조 욕구와 암시장의 활성화를 부를 것이다. 그만큼 개인정보는 유출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미 주민번호가 인터넷을 떠돌고 싼값에 거래되는 것처럼 전자주민증에 담긴 지문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인터넷을 떠돌 날이 머지않게 된다.

 

전자주민증 도입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이기도 하다. 정부는 전자주민증 제작과 읍면동 자치단체의 판독 리더기 구입 등에 드는 비용을 2437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프라이버시를 극도로 침해하는 사업에 예산을 사용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배경에는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제물 삼아 이윤을 추구하려는 관련 업계가 있다고 우리는 본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스마트카드 신분증 시장의 확대를 위하여 전자주민증 도입을 요구해 왔다. 전자주민증을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자마자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고 한다. 추후 민간영역에서 전자주민증 판독을 하게 될 경우 관련 업계의 이익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시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우려를 감수하면서 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전자주민증을 둘러싼 상황이 이럼에도 정부는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개악안을 국무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의결한 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도입 시도가 좌절되었던 정책이라면 더욱 신중하고 민주적인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야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정부가 일삼는 전횡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전자주민증의 도입이 아니라 현행 주민등록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다. 한국의 주민등록제도는 전 국민 고유식별번호인 주민번호, 지문날인, 국가신분증 등이 복합된 ‘국가신분등록제도’로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도입되었다. 특히 만 17세 청소년에게 무조건 지문날인과 신분증 발급을 강요하는 잘못된 제도이다. 이렇게 포괄적이고 강제적인 국가신분등록제도는 세계적으로 드문 인권침해 사례이며 이제는 정보사회의 재앙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행 주민등록제도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개인정보의 디지털화와 활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만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결정판이 전자주민증 도입 시도인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권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의무적 국가 신분증의 폐지와 용도별 선택 신분증의 도입, 주민등록번호의 폐지 등 주민등록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안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이제라도 정부는 전자주민증 도입 시도를 중단하고 현행 주민등록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자주민증 도입 시도를 막아내고 현행 주민등록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워나갈 것이다.

 

전자주민증 도입하는 주민등록법 개악안 반대한다!

감시통제사회 만드는 전자주민증 도입 시도를 중단하라!

정부는 주민등록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

 

2010년 10월 14일

 

다산인권센터,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불교인권위원회,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제주평화인권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함께하는시민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