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완의 책으로 말 걸기] 책 <제로성장 시대가 온다>를 읽고

책 <제로성장시대가 온다>의 저자 리차드 하인버그에 의하면 성장은 더 이상 ‘정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채무에 바탕을 둔 금융자본주의는 거품불기와 거품 터지기의 반복으로 인해 지탱불가능하고, 고갈될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가 없으며, 기후변화로 인한 대규모 환경재앙이 빈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값싼 에너지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채무에 바탕을 둔 세계경제는 화폐전쟁(환율전쟁)으로 비화하고 정치적 긴장이 높아지며, 세대간 갈등, 계급간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성장이 종말을 고하는 시대를 대비하여 금융청구권을 삭감하고, ‘비채무화폐’를 발행하고, 고리대금업 금지법을 제정하고, 지역화폐를 활성화하고, 정상상태경제(steady-state economy)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성장이 종말을 맞이할 것이란 소리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종말은 아니다. 자연은 때로 느리고 점진적으로, 때로는 사납고 파괴적으로 변화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성장 종말론이란 무엇인가?

책 <제로성장시대가 온다>는 <성장의 한계>에서 논의된 자원과 환경오염, 인구증가 등의 변수에 바탕을 둔 성장의 한계론을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지탱불가능성과 결합하여 ‘성장의 종말’론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성장의 한계>는 1972년 로마클럽의 경제학자 및 기업인들이 경제성장이 환경오염 자원 고갈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다.

또, 이 책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금융시스템의 위기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에 에너지가격의 폭등이 있다고. 세계경제는 구조적으로 성장의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성장의 한계>, <정상상태 경제학> 등의 기본전제 즉, 유한한 지구의 유한한 자원과 오염처리능력을 고려할 때 이런 주장은 구조적으로 올바른 진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산업문명 혹은 과학기술체계의 기술개발 능력과 자본주의의 시스템 변형 혹은 혁신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에 불과하다. 논의의 핵심 논거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는 없다는 것이고 그것을 채굴하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이 갈수록 높아진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신맬서스주의의 인상을 강하게 주면서 경제, 환경, 사회의 임박한 파국을 ‘예언’하는 것은 그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전체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신맬서스주의는 빈곤 해결을 위한 산아를 제안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인구 조절이 지구 온난화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제러미 리프킨이 ‘엔트로피’를 이야기하면서도 자본주의의 불평등문제와 기존 시스템의 권력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기술낙관론에 바탕을 둔 ‘제3차 산업혁명’론을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러미 리프킨은 기술혁신을 통해 한계비용이 제로에 근접하는 사회가 도래한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물론 리프킨도 분산형 에너지망과 같은 저비용 공공재를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이 닥치기 전에 빨리 만들지 않으면 지구인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책 <제로성장의 시대가 온다>에 드러난 한계

그렇다고 하인버그가 옛 맬서스처럼 근거가 빈약한 논리로 성장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으로 볼 때, 하인버그의 진단과 예측은 올바르다. 문제는 ‘산업자본주의적’ 성장의 한계를 관리할 수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지배세력의 혁신과 관리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성장의 한계 -> 임기응변식 대응 -> 파국 -> 새로운 체제의 등장”과 같은 논리는 지나치게 단순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임기응변식’ 대응이 상당기간(적어도 20-30년간) 지속될 것으로 가정할 때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환경 문제, 권력관계, 세계적 불평등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는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따라 지배세력(옛 좌파와 우파의 성장동맹)에 대항하여 새로운 탈성장 동맹을 어떻게 구성하고 이들의 대안적 정치, 경제 전략은 무엇인지 좀 더 정치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하인버그의 주장은 마치 파국이 곧 올 것이라고 계속 외치면서 파국이 오고 나서야 대안을 고민할 어리석은 인간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눈 밝은 몇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면서 구명선을 만들자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파티는 끝났다’고 계속 외치면 양치기 소년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구조적인 취약성과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구조적 한계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본다. 지구상의 다양한 국가와 지자체, 지역 공동체 등이 다양한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복원력을 키우고 있는지 조사하고 거기에서 변화의 씨앗을 찾는 전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논의를 넘어서서 (상대적) 성장이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을 성숙하게 만드는가 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이 문제에서 부정적인 답을 얻는다면 성장의 불가능 성과관계 없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전환을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하인버그가 스웨덴,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을 예로 들며 성장이 종말을 고할 때 회복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거론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미 시작된 한국의 성장 종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국가들과 달리 개방형 중규모 경제로서 한국은 화석연료 가격 상승, 선진국 소비 감소,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이 책의 전망이 현실화될 때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경제체제다. 게다가 한국은 북한과의 갈등, 사회 내부의 계급갈등과 세대갈등, 약한 사회안전망, 취약한 정치적 리더십 때문에 성장이 종말을 고할 때 그 충격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회복탄력성도 매우 약하다. IMF 때 급증한 사회적 해체와 파괴를 보면 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사실은 2-3%의GDP 성장의 이면을 보면 자영업, 비정규직 등 사회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성장의 종말이 이미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전환운동,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와 같은 활동들을 지역에서 조직하면 될까? 이들 사이의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면 되는가? 지역과 중앙의 정치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글쓴이 : 구도완 환경연합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