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북동부 지역의 폭우 피해 소식이 심상치 않다. 이번 수해는 베트남 최대 탄광 지역인 꽝닌성 일대에 집중되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일주일 가까이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탄광과 석탄화력발전소에 있던 독성물질이 범람하면서 주민 안전은 물론 세계자연유산인 하롱베이까지 위협에 처하게 됐다.
[caption id="attachment_152410" align="aligncenter" width="650"] 위험 경고를 무시한 채 수백 명이 홍수가 난 진흙탕 속에서 석탄을 건져내고 있다. 사진=Vietnamnet[/caption]
탄광 운영사인 베트남 국유 탄광기업(Vinacomin)에 따르면 홍수에 떠내려간 석탄의 양은 수십만 톤에 달한다. 현지 언론은 석탄 찌꺼기에 범벅이 된 무릎 깊이의 진흙탕을 헤치며 여성과 아이들이 대피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재해 속에서도 일부 주민들이 위험 경고를 무릅쓴 채 석탄을 건져내느라 안간힘을 쏟는 모습도 포착됐다.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진 하롱베이 인근엔 5,736헥타르에 달하는 노천 탄광과 세 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다. 이 일대 탄광은 베트남 석탄 생산량의 약 75%를 공급한다.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침수로 인해 탄광 가동이 전면 중단됐고, 8만 명이 일손을 놓아야 했다. 화력발전소에 공급되는 석탄 생산과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전력 부족을 둘러싼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더 심각한 우려는 석탄에 포함된 유해물질이 빗물에 휩쓸려 유입되면서 광범위한 건강과 환경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국제 환경단체 워터키퍼 얼라이언스(Waterkeeper Alliacne)는 “베트남 정부의 재해 구호팀이 배치되면서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피해 규모와 확산 속도는 매우 우려될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천 탄광의 범람으로 중금속물질을 비롯한 각종 독성물질이 유출됐을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과거 조사 결과 이 지역 토양에서 비소, 카드뮴, 납을 포함한 유해물질이 검출됐고, 이런 유해물질이 홍수에 의해 확산되는 일이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와 같은 기존 사례에서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폭우 피해 지역 지도. 세계자연유산 하롱베이 주변에 탄광과 석탄화력발전소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자료=워터키퍼 얼라이언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24"] 하롱베이 주변 석탄화력발전소 중 하나인 몽즈엉 화력발전소. 이 사업은 현대건설을 비롯한 한국기업이 참여했다.[/caption]
이와 관련해 아론 번스타인 하버드 의대 소아과 교수는 “심각한 수해로 인한 정식적 외상과 수인성 질병 또는 사망과 같은 일반적인 직접 피해 외에 꽝닌 일대의 홍수는 독성물질에 특히 취약한 아이의 발달 신경계에 영구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경단체는 석탄 오염에 따른 하롱베이 지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와 유네스코 그리고 국제사회가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베트남 폭우 사태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서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란 경고가 나오게 된 온 대목이다. 이런 재난은 안전과 환경보호 조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기업에 의해 발생하지만, 피해는 사회와 생태계에 고스란히 전가되어 왔다. 이번에도, 석탄 산업계가 일으킨 끔찍한 피해를 무고한 주민과 자연 생태계가 뒤집어쓰게 됐다.
탄광과 석탄화력발전소가 인접한 하천은 하롱베이로 직접 유입된다. 하롱베이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서 수천 개의 기암괴석과 동굴 그리고 수상마을을 보러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다. 베트남 하롱베이 외에도 호주의 그레이트베리어리프, 방글라데시의 순다르반은 천혜의 물 생태계에 기반한 세계자연유산인 동시에 석탄 산업계에 의해 위협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석탄의 유해성을 염두에 두면 생태적으로 민감하고 식수 공급에 중요한 지역에 석탄 개발 사업을 허용해선 안 된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50"] 폭우와 홍수로 인해 꽝닌성 캄파시에 있는 최대 탄광 지역에서 석탄이 바다로 유입됐다. 사진=Vietnamnet[/capt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선 해안과 하천 주변에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늘릴 계획을 추진 중이다. 게다가 탄광 기업은 재해 수습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업 재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폭우 사태에서 나타났듯 석탄 화력발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기후변화로 인한 전력 공급의 불안정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다. 대부분 해안가에 입지한 석탄화력발전소는 기후변화에 의해 더 심각해지는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석탄은 기후변화의 최대 주범이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7%를차지한다. 극심한 폭풍과 이상기후는 점점 더 빈번해지는 가운데, 석탄재 폐기물 처리장이 폭우에 견디도록 제대로 건설되지 않는다면 ‘시한폭탄’에 불과할 수 있다. 폭우가 시작되던 시점에 석탄을 싣고 베트남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다섯 척의 선박이 폭풍을 만나 침몰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 기업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시아 지역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도 짚을 필요가 있다. 이번 재해 지역에 인접한 몽즈엉 석탄화력발전소는 포스코, 현대건설, 두산중공업이 참여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이 자금을 조달한 사업이다. 한국의 발전사와 건설업체들은 수출신용 지원을 통해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에 뛰어들어왔고, 대부분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같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이다. 세계가 위험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제한해나가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검은 황금’으로 이윤을 거두는 일에만 몰두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