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후 협상이 20년 이상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기후변화 대응이 각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 때문이었다. 위험한 기후변화를 피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지구적 차원의 노력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개별 국가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손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 따라 각국이 내놓는 대책은 기후변화 파국을 막기에 크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는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국가에게 돌아올 이익이 부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13일 발표된 런던정치경제대학교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상기후 피해 예방에 따른 편익은 고려하지 않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은 일자리 창출과 건강 증진을 동반해 국가 경제에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나타났다. 이번 보고서의 결론에 대해 퍼거스 그린 정책분석 연구원은 “기후변화 대책은 경제에 부담이라는 기존 관념은 틀렸다”면서 “기후 보호의 책임을 다른 국가에게 맡긴 채 ‘무임승차’하는 국가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은 크게 잘못 짚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퍼거스 그린의 지적이 옳다면, 한국은 갇힌 시야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대표적인 국가로 꼽힐 수밖에 없다. 앞서 6월30일 한국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했는데, 매우 뒤처진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정부 목표, 온실가스 ‘감축안’ 아닌 ‘증가안’

정부가 내놓은 기후 목표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방식에 여전히 배출 전망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현행 2020년 감축 목표도 문제적인 배출전망치 기준을 사용했다. 배출 전망치란 현재 추세를 근거로 미래 배출량을 예측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기준 연도(보통 1990년 배출량)에 근거해 절대 감축치로 목표를 제시하는 것과 달리, 배출 전망치 방식은 무엇을 전제하느냐에 따라 예측이 모호하고 ‘부풀리기’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에 따르면,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2년에 비해 23.6% 더 늘어날 전망이다.

둘째, 2030년 목표는 배출 전망치 대비 37%를 줄이는 것으로 정했다. 셋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중 상당량은 ‘국제 탄소시장’을 통해 확보한다. 다시 말해, 감축 목표 37%에서 국내에서는 25.7%p만 줄이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사들이겠다는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산업 부문에 대해선 감축률을 12%가 넘지 않도록 정했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이산화탄소를 37% 감축해야 하지만, 정부는 산업계에게 부담을 완화해준다는 명분으로 3배나 낮은 감축률을 보장했다.
언론들은 37%라는 숫자에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목표가 강화됐다는 이야기다. 기존 2020년 30%에 비해서 2030년 37%로 감축 목표의 숫자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간단한 분석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현행 2020년 목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됐고, 2030년에 이르러도 우리 사회는 지금과 같은 매우 높은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을 계속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2030년 온실가스 목표는 기존 2020년 목표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그려보면, 2020년 목표를 과감히 버리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내 감축을 보면, 2030년 도달할 배출량은 2020년 목표에 비해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16.4%가 더 높다. 이번 목표에 온실가스 ‘감축안’이 아니라 ‘증가안’이라는 비난이 내려진 이유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안은 기후변화 대응과 경제성장을 상충되는 것으로 규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도전은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시장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지만, 이번 계획안은 기후변화 대응을 경제적 부담으로만 바라보는 좁은 안목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2009년 한국은 2020년 온실가스 목표를 국제적으로 약속했고, 이를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으로 법제화했다. 게다가 환경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 발표를 통해 2020년 목표 배출량의 절대적 수치를 재확정했던 것이 불과 1년 전이었다. 지난해 말 리마에서 열린 기후 총회에서 190여 개 국가가 기존 목표의 ‘후퇴방지’ 원칙에 합의한 가운데, 한국의 위반 여부와 관련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의 평가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목표 후퇴에 따른 외교적 압박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초안을 발표한 이후부터 시민사회는 물론 여러 외교적 채널을 통한 압력에 휩싸였다. 초안 발표 다음날인 12일, 한미 정상의 전화통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이 장기적 기후변화 목표치 결정과정에서 최대한 야심찬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기후변화 대응 분야에서의 리더십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면서 한국의 기후 목표 후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국제 평가 기관도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낙제점을 부여했다.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를 비롯한 4개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기후행동추적(Carbon Action Tracker)는 한국 기후 목표에 대해 ‘부적합(inadequate)’ 수준으로 평가했다. 산업화 이후 기온 상승을 2도 안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지구적 목표를 고려하면, 한국의 목표는 책임 수준에 미달한다는 의미다.

이 분석은 “모든 국가가 한국처럼 낮은 목표를 제시한다면, 지구 온도는 2100년까지 3~4도 오르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제 시장의 활용 방안이 제시됐지만, 정작 2030년 배출량이 1990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날 정도로 자국의 감축 노력에는 소홀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보통(Medium)’ 수준이 되려면, 2030년 국내 배출량이 최소 500백만CO2톤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고 평가했다.

산업계 부담 줄이려고 원전 증설?

목표도 약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감축 수단에 의존하겠다는 방향도 심각한 문제다. 산업 부문에 대해 정부가 특혜 수준의 낮은 감축률을 약속하면서, 그만큼 다른 부문에 대한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발전 부문이 대표적이다. 정부 자료를 보면, 저탄소 발전원을 늘린다면서 원전 추가 건설과 탄소포집저장(CCS)와 같은 위험하고 값비싼 수단이 제시됐다. 실제로 언론 보도를 보면, 6월30일 정부 브리핑에서 정양호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산업계에서 줄어드는 부담을 발전이나 다른 부문이 떠안는 모습이 된다. 원전 같은 것을 추가로 지어야 되는 부분들도 같이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2030년까지 원전을 계속 지어야 한다면서 온실가스도 줄이지 못 하는 정책의 모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정부의 해명은 찾아볼 수 없다. 2029년까지의 발전 설비를 정하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 전원믹스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에도 발전 부문의 온실가스는 줄일 잠재량이 높지 않다. 전력계획에 따라 원전 13기, 석탄 20기, LNG 14기가 추가로 늘어나도록 제시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말하는 기온 변동성 확대, 설비건설 차질에 따른 수급불안 가능성을 우선 고려한다면,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과 같이 사회적 수용성도 낮고 가동 경직성이 큰 기저부하를 늘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온실가스 감축량의 무려 30%에 해당하는 96백만CO2톤을 ‘국제 탄소시장’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발상도 문제적이다. 국제 시장은 현재 협상 중인 불확실한 메커니즘으로 주로 저개발국에서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기후체제에서는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만큼 잉여 배출권이 희소할 가능성이 높다. 배출권 가격으로 환산해 약 2조4천억원 규모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지에 대해 정부 스스로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 했다. 산업계에게는 ‘배출할 수 있는 자유’를 계속 허용하며 국내 감축은 미룬 채 기후변화 책임을 돈을 통해 저개발국으로 ‘아웃소싱’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후퇴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위험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 협상에서 무임승차를 선택하며, 기후 책임을 다른 국가와 미래세대에 전가하겠다는 셈이다. 지구적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책임을 가진다고 인정하면서도(2012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 7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16위, 1인당 배출량 OECD 6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선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 오염의 책임이 가장 큰 산업계는 오히려 혜택을 얻고 있다. 산업계는 낮은 감축률과 시장과 기술 중심의 감축 수단을 통한 ‘자발적 노력’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오염자 부담원칙’에 따라 기후변화 정책 결정에서 규제 대상이 돼야 할 산업계가 반대로 목소리를 높이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79개국의 시민 1만여 명이 참여한 ‘기후변화 세계시민회의’ 설문 결과를 보면, 70%가 ‘기후변화 대응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응답했고 한국 참가자의 81%는 ‘다른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아도 우리는 줄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제 시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