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삶
행복한 불편
최광수 | (사)에코붓다 대표, 경상대학교 교수

2012년에 작고하신 고황수관 박사님의 걸쭉한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예~”라고 답하는 게 맞다 싶은데, 쉽사리 예라고 답할 사람은 적을 듯하다. 왜냐면 ‘살림살이’는 나아졌는데 ‘살~림’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TV는 얇아지고, 휴대폰은 컴퓨터의 기능을 갖게 되었고, 그 휴대폰을 통해 세계 어느 곳에 가있든 가족, 친구와 대화하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고, 가사생활은 거의 다 전자제품의 힘을 빌어서 손쉽게 해결하고 있으니 분명 우리의 ‘살림살이’는 나아졌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를 통해서 우리 삶을 되돌아볼 때 물밀듯 몰려오는 자괴감은 바로 ‘생명 살림’의 반대편으로 흐르고 있는 우리 삶의 단면을 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라는 책에서 “우리는 지금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위험사회’를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얘기한다. 교통사고, 환경파괴, 식품오염, 학교폭력, 성폭력 등이 만연한 사회가 ‘위험사회’가 아니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갖가지 노력이 우리를 진정한 위험에 빠뜨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를 개조하겠다며,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병리현상인 수치심과 공공성 상실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으면서, 선주 일가족 체포에 온 국민의 관심을 몰아가고, 해경을 해체하는 것이 무모한 시도일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지금 물질주의와 성장제일주의에 빠져 생명의 가치를 상실하고, 이익 앞에 안전과 행복까지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양보해버리는 ‘위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에서 보여준 북극곰들의 고통과 희생은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로 인한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라고 하는 전지구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아니, 국제기구와 정부가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우리는 대부분 편안하게 자기 삶에 집중하고 있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에 의하면, 큰 재앙이 생기기 전에 29번의 작은 사고가 일어나고, 그 전에 사고가 일어날 뻔 한 경우가 300번 가량 있다고 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북극곰의 눈물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재앙’이 오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계속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하지 않고 임기응변식으로 위기에 반복 대응하다보면 화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머나먼 북극의 이야기일까? 남태평양 작은 섬의 물난리일까? 아니다. 45억년의 지구 역사를 되돌리는 대역사이다. 우주는 약 60억 년 전에 태어났고, 지구는 45억 살 가량 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생물체가 숨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3억 6천만 년 전부터 식물이 자라나면서 산소를 내뿜기 시작했고, 이후 공기 중 산소의 농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식물은 잎과 줄기와 뿌리와 열매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당을 만들기 위해 광합성을 하고, 이 과정에서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CO2)를 흡수하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탄소(C)와 산소(O2)를 분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소를 모아서 새롭게 결합시킨 게 포도당이고, 자신에게 필요 없는 산소를 잎을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 그래서 우리가 나무 밑에 서면 맑은 산소를 마실 수 있고, 아마존 밀림이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허파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구의 육지 대부분을 뒤덮게 된 식물들은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고, 지각변동에 의해 땅속 깊은 곳에서 오랜 세월동안 엄청난 압력과 온도를 받아 화학적으로 변성되어 나타난 것이 석탄이다. 우리는 지금 이것들을 캐내어 태워서 에너지를 얻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화석연료 속의 탄소(C)와 공기 중의 산소(O)가 결합해서 다시 이산화탄소(CO2)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사용량의 85% 이상이 화석연료로부터 나오는데, 우리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이 화석연료는 모두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그 출발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밥하고, 냉장고와 에어컨을 돌리고, 멀리 이동하고, 산업용 에너지를 얻기 위해 화석연료를 태우는 행위는 지구생태계 전체가 지난 수억 년 동안 이루어놓은 것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간접 경험했던 시간여행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타임머신은 바로 산업문명 자체이다. 산업혁명 이후 1800년에는 280ppm에 머물렀던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0년에는 380ppm까지 증가하였다. 이런 증가 추세가 계속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이제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100여년 미래로 가보자.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주) 이 글은 6월 30일 서초법당에서 진행한 환경특강의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 에코붓다 소식지 2014년 7-8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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