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생활양식과 쓰레기제로운동(4)
정토회는 한국사회에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고 사회주의권이 몰락해 가던 1988년 ‘일과 수행’을 하나로 하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찾고 만들어나가는 수행공동체로 출발하였다.
정토회는 그동안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일구기 위하여 환경문제와 제3세계 빈곤문제, 평화와 인권문제를 활동의 주요과제로 삼고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만들기 위한 실천과 수행활동을 해 왔다. 맑은 마음으로 욕심을 버리고 나눔을 실천할 때 인생이 행복해지고 이웃과 좋은 벗이 되어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해 깨끗한 땅,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활동의 기본정신이다.
특히 정토회는 ‘내 것’ 중심의 소유에 기반한 소비 지향적인 탐욕과 경쟁중심의 생활양식이 오늘날 인류는 물론 뭇 생명들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생태위기를 불러왔다는 데 대한 반성을 통해 1999년부터 ‘쓰레기제로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쓰레기제로운동은 ‘이 우주 안의 모든 생명은 한 몸으로서 누구의 것도 아님을 알아, 적게 쓰고 적게 가짐으로써 자연과 더불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대안적인 생활양식과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나가는데’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도시’라는 공간에서 쓰레기 없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쓰레기제로운동을 전개하면서 정토회 내에서는 다양한 실험과 실천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우리가 먼저 직접 실천해 보고 그 경험을 통해 대안적인 생활양식 운동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안을 사회화하는데 쓰레기 제로운동의 목적을 두고, 밖으로 배출되는 쓰레기의 제로화, 음식문화의 전환으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와 음식물쓰레기의 완전 퇴비화, 화장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뒷물 이용하기, 캔 제품 사용의 억제를 위한 캔 제품 반입금지 등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실천활동을 해 오고 있다.
쓰레기제로운동은 현대 사회에서 도시라는 생활공간이 가지는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지만 생태적 위기라는 현실상황 속에서 새로운 실천적 대안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쓰레기제로’라는 근본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생활속에서 실천 가능한 수준과 방법들을 직접 체험을 통해 확인하고 보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축적된 경험들을 토대로 대중적인 시민 실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는데 활동의 목적을 두고 있다.
쓰레기제로운동을 전개하는데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활동하고 있다.
① 사후 처리에서 사전 예방적 관점으로 바꾸기
그동안 쓰레기는 우리의 생산과 소비활동을 통해 최종적으로 배출되는 물질로써 인식되어왔다. 따라서 쓰레기가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해결방식은 주로 배출된 결과물로서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정부는 행정을 통한 ‘청소’차원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매립 또는 소각 처리해 왔으며, 시민들은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아 배출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환경위기시대에 우리는 쓰레기 문제를 생활 환경오염의 차원을 넘어 지구상의 유한한 자연자원을 고갈시키는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현재와 같은 자원 과소비형 생산과 소비양식을 유지하고서는 문제해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쓰레기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사후 처리적 관점에서 사전예방적인 관점으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쓰레기 제로운동은 생활 속에서 실천을 통해 사전 예방적인 차원에서 문제해결 방안을 찾아 나가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생활인이자 소비자로서 생활속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과 유형, 특성들을 발견해 내고, 물건의 유통과 구매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개선할 것을 요구해 나가는 것이 쓰레기 제로운동의 전체모습일 것이다.
② 편리함을 추구하는 삶에서 불편함을 즐기고 감수하는 삶으로 바꾸기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현대사회의 물질문명이 제공하는 편리함에서 ‘거리’를 둘 수 있는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의 소비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즐기고 수고로움을 감내하려는 마음을 이끌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토회의 쓰레기제로운동은 실천활동을 통해 ‘현대물질문명의 편리함’ 이면에 작동하는 ‘생명의 죽임’ 현상을 자각토록 하고, 나아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불편함’이 가져다 주는 기쁨과 정신적 풍요로움의 참 맛을 직접 확인하고 체험하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쓰레기제로운동은 일반시민들도 실천 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경험하지 않은 막연한 두려움과 오해를 해소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하고 있다.
③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고 꾸준히 실천하기
우리는 그동안 환경과 생명을 파괴시켜 왔던 사례들 가운데서 과정을 소홀히 하고 결과에만 집착하여 급하게 서두름으로써 나타났던 문제들을 무수히 봐 왔다. 자연 생태계가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서 경쟁적으로 파괴하고 오염시켜 온 ‘생산력 증대주의’ 역시 그 속에는 바로 속도주의와 결과 중심주의로 흘러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가 오늘날 환경을 보존하고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들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환경개선 효과를 얻기 위한 노력들은 결국 목표로 했던 효과도 달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측면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결과에 집착하여 과정을 소홀히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쓰레기제로운동은 짧은 시간에 눈에 띄는 효과를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과정’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실천과정에서 나타나는 성과와 문제점들을 느리지만 철저하게 분석하고 검증하는 운동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대안적인 생활양식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근본적인 실천운동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쓰레기제로운동은 머리로 이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생활 속에서 느리지만 철저한 실천을 통한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머리와 손발이 일치되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④ 절약의 정신을 넘어 공경의 정신으로 전환하기
오늘날 지구상에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연자원의 매장량이 유한하다는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만큼 현재의 자원절약 운동은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투자라고도 볼 수 있다. 쓰레기제로운동은 바로 생활환경오염의 차원을 넘어 자원절약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쓰레기제로운동은 물질 또는 물건의 사용량을 줄이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웃과 자연환경을 공경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하는데 있다. 지역과 국가, 지구적인 차원에서 자원이 불평등하게 편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웃인 지역과 국가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경쟁적인 자원채취와 이용행위를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또한 자연 생태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인간의 편리와 이용의 측면에서 구분하고 이용하려 한다면 자연 생태계의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물질 사용에 대한 절약의 차원을 넘어 사람은 물론 모든 유정물( 有情物), 무정물(無情物)까지도 생명의 존재로서 소중하게 모시고 공경해야 할 대상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쓰레기제로운동이 목표로 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토대가 될 때 모든 물건은 적절한 자리에서 충분한 자기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면서 수명이 다하도록 끝까지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환경문제의 해결도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적절하게 잘 쓰여 질 수 있도록 하는데서 가능할 것이다.
# 에코붓다 소식지 2014년 7-8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