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번져도… 간병인 ‘손 씻어라’는 공문만

 

186명이 감염되고 36명을 사망하게 한(치사율 19.35%) 메르스가 종식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 유행한 메르스의 가장 큰 특징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 못지않게 환자의 가족들도 병에 걸렸다는 점이다. 환자도, 환자의 가족도 병원에서 감염됐다. 한국식 ‘간병 문화’가 메르스 이후 한국 의료체계의 핵심과제로 떠오른 이유다.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메르스 사태에서 본 병원간병 문제, 이대로 둘 수 없다’ 토론회에서 “한국 병원은 감염 확산에 최적화됐다”고 지적했다. 한국 병원 감염 관리 체계의 문제점으로 높은 병상 가동률과 병상 점유율, 환자 대비 간호 인력 부족, 병원 조직문화로 인해 병원 감염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

2014년 기준으로 서울대병원의 응급실 과밀화지수는 175.2로 1위다. 환자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응급실에 175명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경북대학교 병원이 154.0, 서울보훈병원이 138.5로 뒤를 이었다. 메르스 진원지 노릇을 한 삼성서울병원은 133.2로 4위를 차지했다.

▲ 2014년 응급실 과밀화지수 순위. 자료=보건복지부. 토론회 자료집에서 발췌

이 연구위원은 “환자가 빨리 퇴원하고 새로운 환자가 빨리 들어오는 식이면 병원 감염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응급실 과밀화지수는 90이 넘어가면 위험하다”며 “일반 공장과 달리 병원은 응급상황에 대비해 병상을 비워둬야 한다. 그러나 한국병원은 경쟁이 너무 심하고 돈을 벌어야 안 망하기 때문에 병상을 비워두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간호사의 노동밀도도 매우 높다. 2002년 노르웨이 오슬로의 3차병원에서 간호사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간호사 1인이 맡는 환자 수가 30% 늘어났다. 구조조정 전후를 비교했을 때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의 병원 감염률이 그 이전 5년 보다 눈에 띠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윤 연구위원은 “간호사 1명이 담당해야 할 환자가 늘어나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감염수칙을 지키지 않는다. 바쁜데 언제 손 씻고 장갑 끼고 옷 갈아입고 진료하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환자가 미안해하면서 간호사를 부른다. 궁금한 게 있어도 바쁜데 폐 끼치는 것 아닌가 이런 염려를 하면서 간호사를 부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간호사가 부족하니 환자의 가족들이 간병인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조성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간호사 배치 수준이 낮기에 보호자가 간병인으로 상주하지 않으면 환자를 간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성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추정)는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13명, 종합병원은 18명, 병원은 51명에 달한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환자 1명이 제공받는 간호시간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1시간 50분, 종합병원은 1시간 20분, 병원은 30분에 그친다.

의료법조차 지키지 못하는 의료기관이 수두룩하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에 따르면 종합병원/병원/의원에는 연평균 1일 입원환자를 2.5명으로 나눈 수만큼의 간호사가 배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성현 교수가 2013년 환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의료법을 준수하는 종합병원은 약 60%, 병원은 20%였고 의원은 10%가 채 되지 않았다.

▲ 의료법 준수여부. 토론회 자료집에서 발췌.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2013년부터 ‘포괄간호서비스 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2018년까지 모든 병원에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간병인이나 가족 대신 간호사(+간호조무사)가 중심이 돼 간병과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그러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중심의 포괄간호사 서비스 제도에 간병 노동자(요양보호사)들이 배제됐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권명숙 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대구간병 분회장은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간병문화를 바꾸고 포괄간호서비스제도를 빨리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우리들도 바라는 바”라며 “교회 다니는 신도들이 20명씩 떼 지어 병문안을 온다. 주말에 잔치 갔다 오는 사람들이 한복입고 떼 지어 온다. 고객 관리 차원에서 병원이 이를 방치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권 분회장은 “메르스 때 TV뉴스를 보니 간병인들이 임금 3배를 줘도 안 온다, 다 도망갔다는 식으로 보도하더라. 그 사람들이 왜 돈 주는 데도 일을 안 하겠나”라며 “4대 보험은 커녕 산재도 인정 못받고, 몸 아파서 눕게 되면 임금도 안 주니 안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근데 그 뒤 이야기는 안 하고 현장 이탈했다는 식으로만 보도한다”고 토로했다.

권 분회장은 “메르스 때 간병인들은 ‘손 자주 씻어라’는 공문 하나 밖에 안 받았고, 마스크랑 장갑 다 사비로 샀다. 병원에 꼭 필요한 인력임에도 병원은 교육도 안 해준다”며 “그래도 병원 현장을 지킨 간병인들이 있다. 근데 포괄간호서비스 제도에 간병인들은 전혀 포함되지 않아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권 분회장은 이어 “간병인들을 배제한 간호간병 인력구조 재편은 5만 명의 간병인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고 덧붙였다.

▲ 메르스 확진자 유형. 44%인 환자에 이어 환자 가족/보호자/방문객이 35%를 차지한다. 토론회 자료집에서 발췌.

근본적으로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 약화와 근무요건 개선이 없는 한 포괄간호사 서비스제도를 시행해도 의료서비스가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서울의료원에서는 포괄간호사 서비스제도가 시행 중이다. 간호사 한 명이 8명의 환자를 맡고, 간호조무사 한 명이 40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김경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새서울의료원분회장은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상대적인 급여가 낮아 간호사 이직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급여 현실화를 통한 간호인력 확보가 필요하다”며 “서울의료원은 근속 3년 미만의 간호사가 안심병동(포괄간호서비스 병동)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의료서비스 질 저하와 환자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분회장은 또한 “일괄적인 기준이 아니라 환자의 중증도에 따른 인력배치기준이 필요하다”며 “환자 중증도가 높고 와상환자가 많은 경우 간호사들이 환자 1인당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욕창, 낙상 우려로 2시간마다 back care(등 간호) 및 수시로 지켜봐야 하는 환자들이 많은 경우 간호사 1인이 7-8명의 환자를 혼자 돌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포괄간호사서비스 제도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의 조승화 사무관은 “현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할 예정이고,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입구에서 병원 직원들이 마스크와 보호복 등을 갖추고 근무하고 있다.ⓒ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