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 2015-07-20 17:41:27 |
[논평]
실종된 사법정의-RTV 2심판결에 부쳐
시민방송(RTV)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징계 취소를 다툰 재판에서 법원은 또다시 방송통신위원회의 손을 들어 주었다. 지난 7월 15일 서울고등법원 제6행정부(판사 김광태, 손철우, 윤정근)는 RTV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명령의 취소 소송에서 항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역사 다큐 ‘백년전쟁’을 방영한 RTV에 대한 방통위의 중징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RTV는 즉각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에 있었던 서울행정법원의 1심판결은 재판부의 정권 눈치 보기와 시대착오적 역사인식을 드러낸 한편의 촌극이었다. 그들에게 전직 대통령, 독재자는 비판이 금기시되는 성역이었고, 5·16은 혁명이었다. 재판부의 저급한 역사인식과 법리에 대한 오인은 사법부의 양심과 합리적 이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심리과정에서부터 노골적인 편향성을 드러냈다. RTV는 ‘백년전쟁’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 측을 증인으로 채택하려 마지막까지 애썼으나 재판부는 끝내 이를 외면하였다. 법학계와 역사학계 수백명의 학자들이 연서명으로 제출한 간곡한 의견서도 완고한 이들에게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았던 듯 보인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심 판결을 전문 인용한다고 밝히면서 몇 줄 되지 않는 추가 판단에서, ‘백년전쟁’을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을 다룬 것으로 전제한 후,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편집·재구성하여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결론지었다. 헌법상의 기본권인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둘러싼 첨예한 해석 차이에 대한 사법부의 고민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판결이었다.
많은 이들은 최근 사법부의 급속한 보수화를 경계하며 깊이 우려하고 있다. 국민들도 과연 사법부가 정의를 지켜낼 마지막 보루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책임 회피적인 판결에서부터, 동아일보의 김성수와 조선일보의 방응모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결정취소소송에서 판결을 수년째 미루는 행태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언론 권력에 약한 비겁한 민낯이 사법부의 현주소라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제 사법적 절차는 대법원의 판단만이 남아있다. 우리는 대법원이 예단을 배제하고 이번 사안에 진지하게 접근하여 하급심의 오류를 바로 잡고 헌법정신에 충실한 최종 결론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는 ‘심급제도’를, 법원 스스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신중한 재판을 하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번 기회에 대법원은 심급제도가 필요한 이유를 스스로 보여주길 바란다.
2015. 7. 20.
민족문제연구소
☞ 시민방송(RTV) 2심 판결문 (내려받기)
<RTV의 방통위제재결정취소청구를
기각한
법원 결정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백년전쟁'에 대한 극우적 시각을 답습한 재판부의 시대착오적 판결을 개탄한다
지난 8월 2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 차행전)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 RTV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징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백년전쟁』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했고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전직 대통령들을 폄하한 점을 적시하면서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단정했다.
연구소는 RTV가 항소하기로 하였음에도, 먼저 이번 판결의 오류를 낱낱이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백년전쟁』은 지난 해 5월 이승만 쪽이 사자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를 하여 1년 넘게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상태이다. 연구소는 『백년전쟁』의 제작 주체로서 또 명백한 이해당사자로서 RTV의 청구를 기각한 이번 판결이 사자명예훼손사건에 끼칠 악영향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이번 법원의 결정이 과도한 선입견과 법리적 오인에서 비롯된 상식을 벗어난 판결이라고 확신한다.
첫째, 재판부의 역사인식이 헌법적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새삼 거론할 것도 없이 전직 대통령들을 아직도 성역으로 여기며 독재자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자못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일례로 『백년전쟁』에서 다룬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이나 재심에서 거액의 배상판결까지 내려진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을 악의적 왜곡인양 표현하고, 5·16쿠데타를 5·16혁명이라 기술한 데서도 재판부의 시대착오적 역사의식을 잘 알 수 있다.
둘째, 보도 프로그램이 아닌 탐사 다큐멘터리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을 문제 삼은 것이야말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은 판결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백년전쟁』은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두 독재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역사다큐이다. 연구소가 제작에 착수한 배경도 뉴라이트 등 극우세력의 친일.독재 미화와 이승만 박정희 우상화 등 역사왜곡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었다. 기계적인 형평성을 거론하자면 먼저 어용언론과 극우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미화 찬양 일색의 무수한 보도와 다큐들이 심판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셋째,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이례적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RTV의 제재취소청구는 방통위의 중징계 결정이 재량권 남용이라는 점과 정치편향적인 심의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재판부는 뜻밖에도 『백년전쟁』의 내용이 사자명예훼손에 상당하는 지를 집중 검토했다. 본말이 전도되고 의욕과잉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어 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백년전쟁』을 둘러싼 명예훼손고소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고 본격적인 재판 개시가 예견되는 시점이다. 명리 다툼도 아닐 터인데 이해당사자의 진술은 일체 듣지 않은 채 명예훼손이라는 단정을 조급히 내린 이유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넷째, 비교표 제시와 같은 전례 없이 상세한 보도자료도 의문을 가지게 한다. 누가 보라고 건별로 명예훼손 여부를 일일이 판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만한 성의가 있었다면 당연히 사안별로 연구소의 구체적인 반론을 들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우리 연구소는 재판부가 명예훼손의 근거로 적시한 모든 사례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입증 자료들을 제시할 수 있다. 재판부의 결론은 방통위와 극우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그 자체로 편파적이고 정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이번 재판이 선입견에 기초해 이루어졌다는 의심에 설득력을 갖게 한다.
다섯째, RTV는 퍼블릭 액세스 채널로서 제작자가 신념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시청자 참여형 방송이다. 이런 방송사의 특성을 무시하고 뉴스에나 적용될만한 산술적 잣대를 들이대는 후진적 사고가 한심스러울 지경이다. 대다수 방송매체가 정권의 시녀가 된 지 오래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편향된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해 왔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사법부가 정의 실현의 마지막 보루로서 이런 언론 환경에는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열악한 여건 아래 그나마 사회적 약자들에게 의견 개진의 기회를 주려 노력하는 시민방송에 대한 탄압을 옹호하는 현실이 암담할 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백년전쟁』에는 허위의 사실이 포함되지 않았다. 역사적 인물의 실체적 진실을 폭로했다 해서 명예훼손으로 규정한다면, 모든 비판적 역사서술은 범죄가 되고 말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판결을 연구소와 RTV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과 학문의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받아들인다.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와 같은 퇴행적인 조짐을 방치한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 판결을 전혀 수용할 수 없으며, 『백년전쟁』과 관련하여 앞으로 진행되는 재판과정에서 전력을 다해 반드시 잘못을 바로 잡을 것임을 밝혀둔다.
2014. 9. 3.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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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방송 판결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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