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2015-07-20 11:29:26



천안함 의혹 ‘추적60분’ 제재는 “부당”, 이승만·박정희 비판 ‘백년전쟁’ 제재 “적법”

최근 법원이 국가 정책과 정권에 비판적인 내용을 방송했던 프로그램을 정부가 제재처분한 것에 대해 각각 상이한 판결을 내려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고에 대한 정부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던 KBS <추적60분>은 대법원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반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해 징계가 정당하다는 2심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민일영 대법관)는 지난 8일 KBS(조대현 사장)가 방통위(최성준 위원장)를 상대로 제기한 <추적 60분> 제재조치처분취소 소송에서 방통위의 ‘경고’ 제재조치 처분을 취소하라고 확정판결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판 결과 상고이유를 살펴보면, 상고인(방통위)의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심리의 불속행) 제1항과 제3항에 해당한다고 인정되므로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심리불속행은 상고사건 가운데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은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앞서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편(2010년 11월 17일 방송)에 내린 방통위의 제재가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정부의 정책 및 활동에 관해 어떤 의혹을 품을 만한 충분하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방송이 ‘공익성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봐야지 공정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 지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

<추적 60분> 재판부 “정부 활동에 합리적 의혹은 공정성 위반 아냐”

아울러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 제4부(김국현 부장판사)는 <추적 60분>이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 사건 의혹을 다뤘다가 방통위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것에 대해서도 “방송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의혹을 품을 만한 충분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그 공개가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된다면 공정성과 균형성 판단을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며 제제처분 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5일 서울고등법원 제6행정부(재판장 김광태 부장판사)는 <백년전쟁>을 방송했던 시민방송 RTV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명령의취소 소송에서 항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관련기사 : “‘백년전쟁’ 징계는 정당” 항소심도 같은 결론)

재판부는 “방송사는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해야 한다”며 “이러한 의무는 해당 방송이 역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 각 방송의 구체적인 내용과 구성 및 편집 형태 등을 종합해 보면 RTV는 단지 해당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 내지 의혹을 제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편집하거나 재구성함으로써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정도라고 판단된다”며 “(방통위가) 이 사건 처분으로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그로 인해 RTV가 입는 권리 침해 등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없는 이상 처분은 적법하다”고 설명했다.

▲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민족문제연구소 제작·김지영 감독) 포스터

하지만 이는 <추적 60> 국정원 보도 관련 행정법원 판결에서 “공정성과 균형성의 문제를 일정한 수학적 기준이나 단순히 방송 분량만으로 판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 반대 입장에 서 있는 당사자들의 지위도 개별 사건마다 다르다”며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할 경우 헌법이 정하고 있는 방송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과도 상충하는 부분이다. (관련기사 : ‘국정원 간첩사건’ 편든 방통위, 법원서 또 깨졌다)

방송사의 독자적 조사에 기반한 국가 정책 및 사회 현안 비판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탐사보도·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경우 항상 공정성과 균형성만을 강조한다면 방송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게 최근 일련의 법원 판결 취지이다.

<백년전쟁> 재판부 “역사 다큐 형식을 취했어도 공정성 면제 안 돼”

그러나 RTV의 소송에 대한 2심 법원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얻는 공익보다 이들의 명예를 지켜줌으로써 달성할 공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어서 정부 권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RTV 측 변호를 맡은 양홍석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역사 해석자의 관점이 투영될 수밖에 없고, 두 전직 대통령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선 다양한 가치평가가 나올 수 있다”며 “여기에 기계적 공정성을 요구한다면 무색무취의 프로그램밖에 나올 수 없으며, 역사적 인물의 공과에 대한 평가 여지가 충분함에도 이를 명예훼손이라고 하면 평가 자체를 못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또 “시청자들이 직접 만든 방송을 내보내는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미디어 시민권) 채널 안에서 다뤄지는 표현이 지상파 방송처럼 정제돼 있지 않은데 그런 고려 없이 최고 수위 징계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퍼블릭 액세스 채널의 특성을 고려해 제재 기준을 완화해 적용하거나 선별 적용할 필요가 있는데 그에 대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강조했다.

RTV는 이를 지난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편성했다가 당해 7월 심의·제재 의결 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공정성·객관성·명예훼손)을 위반으로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벌점 5점) 중징계를 받았다. (관련기사 : 역사다큐 ‘백년전쟁’ 편성한 RTV 중징계 논란)

<2015-07-20> 미디어오늘

기사원문: 사법부, 정권 비판 방송에 오락가락 ‘공정성’ 잣대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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