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대한문에서 팽목항으로 출발

검은 바다 한 가운데 노란 리본을 단 빨간 등대가 서 있다. 깜빡 깜빡 신호를 규칙적으로 보내고 있다. 어둠이 온 개천절 오후 7시 진도 팽목항. 한 대 두 대 ‘기다림의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에 내린 이들은 등대로 향했다. 종소리와 바람이 매섭게 귀를 파고들었다. 노란 리본들과 불빛은 힘겹게 한쪽 끝을 잡은 채 흔들렸다.

   

지난 7월 18일 이후 두 달 넘게 실종자 수습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매일 밤 자정 실종자들의 이름 한 명 한 명을 목 놓아 부르지만 저 깊은 바다 끝까지 닿지 않는 듯 했다. 팽목항의 시계는 늘 24시간을 지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개천절인 이날 역시 171일째 ‘4월16일’이 되고 말았다.

“4월16일 참사가 발생하고 부모들은 하루하루를 기다림과 백배 천배의 간절함으로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그 간절함은 우리의 목숨줄까지 끊어 놓을 수도 있겠다는, 거의 죽음의 문앞에까지 갔다가도 오늘은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목숨을 부지하던 날들이었습니다”(박은희_단원고 희생자 故 유예은 양 어머니, 경향신문 9월30일 기고글 중)

   

박은희 씨는 기다림의 버스에 타는 것은 ‘저희가 함께 할게요. 제대로 수색이 되는지 함께 지켜봐 줄게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며, 가늘어진 숨을 헐떡이며 쉬고 있는 이들에게 인공호흡기가 되어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전국에서 기다림의 버스를 탄 이들의 마음도 이와 같았다. 이날 오전 11시 대한문을 출발한 9호차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중학교 3학년 아들과 함께 온 한 시민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답고 안전한 세상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원구에서 왔다는 다른 시민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힘든 것을 나누기 위해 내려가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강서구에 사는 40대 남성은 “저에게 지금 가장 쉬운 것이 이렇게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기다림의 버스’를 타게됐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선거 잘하고, 내 일만 잘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그냥 넘어가면 이후 내 가족과 이웃에서 뭔 일이 생길 때 결국에는 아무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라고 밝힌 한 청년은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오지랖이 아니냐는 생각도 했다. 내려가려면 3만원이라는 돈도 들고 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계종 노동위원인 재마 스님은 “가족과 마음을 함께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며 “생명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권력 앞에서 말하자”고 강조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라고 밝힌 이는 가장 두려웠던 것은 잊혀지는 것이었고, 잊지 않고 함께 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고 말했다. 또 코오롱 복직 투쟁 중인 최일배 씨는 “세월호 문제는 우리와 동떨어진 투쟁이 아니다. 우리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간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석운 민언련 공동대표는 “저들은 3차례 야합을 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팽목항, 세월호가 잊혀 지지 않게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의 유기수 사무총장은 “다음 주부터 연말까지 기다림의 버스에 참여하겠다”고 강조했고,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우리 사회의 진보와 생명을 위해”라며 짧은 다짐을 전했다.

   

가야금 연주자인 정민아 씨는 “세월호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골든타임은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제가 내세울 경력도 힘도 없지만 함께 내려가는 머리수는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곳에서 경제 활성화가 가능한가. 안전이 우선”이라고 했다.

중2 딸을 뒀다고 소개한 한 여성은 “방송의 세월호 보도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우선 순위에 진실이 있어야 하는데, 사고 아닌 사고를 사건화 시키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취재 기자들의 목소리도 전해졌다. 대한문 스케치만 하고 돌아가려 했던 한 기자는 기다림의 버스를 타게됐고, 진도에 남아 취재를 더 하겠다는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기자는 “조금이라도 더 잘 보도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라며 다짐했다.

‘기다림의 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이원호씨는 2009년 용산참사를 말했다.

“우리가 용산참사에서 봤던 것은 진실의 은폐와 조작이었고, 지금 세월호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참사 50일 때 버스가 내려갔는데 당시 16명이 아직 바다에 있었습니다. 그 이후 매주 버스가 내려갔습니다. 처음에 가족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싶어 조용히 팽목항에서 기다리다 올라왔습니다. 진도 체육관을 가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 집니다. 걸음 하나하나가 힘들어집니다”

   

오후 9시 등대 앞에서 ‘기다림의 콘서트’가 열렸다. 가야금, 대금, 레게 등 뮤지션들의 공연과 노래가 이어졌다. 또 시민들과 세월호 가족들은 평화의나무 합창단과 함께 ‘잊지 않을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다. 김제동씨도 ‘정치인들 사람해요’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자정이 넘어서자 팽목항에서는 단원고 학생인 조은화 허다윤 황지현 남현철 박영인, 단원고 교사인 양승진 고창석. 그리고 일반인 실종자인 이영숙 권재근, 권혁규 어린이의 이름이 차례로 불려졌다.

故 최성호 학생의 아버지 최경덕씨는 유가족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유가족이 되고 싶어 한다. 한국에서 유가족으로 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데 말입니다. 노숙을 밥 먹듯이 해야 하고, 서명 받으러 다녀야 하고, 국회와 길거리에 누워 있어야 하고... 정말 한국에서 유가가족으로 사는 것은 정말 더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유가족이 되고 싶어 한다”

최경덕씨는 이어 “정말 더러운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꿈이 아니다. 왜 우리 아이들이 왜 저런 일을 당했는가”라며 “우리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이 있는 곳이 있으면 전국 어디라도 간다. 이제 알리려는 자와 덮으려는 자와의 싸움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팽목항에 작가들이 찾아와 ‘눈먼자들의 국가’라는 책을 전달했다. 책 필진에는 소설가 김애란 김연수 황정은 배명훈 박민규, 시인 김행숙 진은영, 문학평론가 황종연 김홍중, 언론학자 전규찬, 정신분석학자 김서영, 현대정치철학연구자 홍철기가 각각 필진으로 참여했다.

   

김애란 작가는 “침몰하는 배에서 한 여고생이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는 농담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며 “이 경사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라고 썼다.

박민규 작가는 기울어진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들을 전했다.

“붐비는 통로에서 또 복도에서 우리는 늘 방송을 들었다. 잘살아보자는 방송, 하면 된다는 방송이었다. 올라가기 위해, 한 층이라도 더 올라가기 위해 우리는 노력했다. 발전과 번영은 종교가 되었고 배가 왜 이렇게 기울었지? 의혹을 제기하면 종북이란 이름의 이단으로 몰려야 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기울어야했던 국민이다. 기울어진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간들에게 이 기울기는 안정적인 것이었다. … (중략) 그리고 어느 날 마치 이 배를 닮은 한 척의 배가 침몰했다”

황정은 작가는 일상으로 돌아오라는 말에 물음을 던졌다.

‘정치인들의 뻔뻔한 의도로 세월을 은폐하고 모욕하는 것을 보고 들어야 하는 일상’ ‘진상을 규명하는 데 당연히 필요한 것들이 마련되지 않는 일상’, ‘거리로 나와야 하는 일상’, ‘’거리에서 굶는 아내를 지켜봐야 하는 일상‘,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과 같은 마음으로 초코바, 초코바, 같은 것을 자신들에게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는 일상‘,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냐는 일상‘, ’갇힌 아이를 건져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일상‘ ’거듭 습격 당하는 일상‘

   

황정은 작가는 “왜 그런 일상인가. 일상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세계란 어떤 세계인가”라며 “나 역시 그 세계에서 발을 뺄 수가 없다는 것을 자각한다. 어른들을 향해서, 당신들은 세계를 왜 이렇게 만들어버렸습니까, 라고 묻는 입장이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됐다”고 적었다.

전규찬 교수는 “세월호는 빼낸 평형수, 즉 공공성의 복구가 사회재건, 생명 보존, 평화회복의 중대한 방책임을 반증한다”며 “안전한 항해를 위해 평형수가 필수적이듯, 사회 안전 유지를 위해 공공성 회복이 절대적임을 깨닫게 된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이어 “공영방송을 되찾고 진실의 저널리즘을 복구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며 “(이것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산 자들에게 남긴 결정적인 유훈”이라고 덧붙였다.

거센 바람에 모인 이들의 체온만큼 좋은 것은 없으리. 체육관 담요로 서로를 덮어주고,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함께 울고, 웃고, 외쳤다. 추웠지만 춥지 않았다. 등대 역시 ‘여기야’ ‘여기야’ 라며 바다와 하늘에 신호를 쉼 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기다림의 버스’는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대한문 앞에서 출발한다.

[문의: 홈페이지 http://jindo.sewolho416.org/ 이메일 [email protected]/  입금: 국민 023501-04-215123 양한웅(진도행 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