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이 8일 오후 6시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 (추모 페이지 http://sybstory.kr)

   

성유보 위원은 1943년 6월 28일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65년 서울대 정외과를 졸업해 67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74년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동참했고, 75년 강제 해직돼 동아투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겨레신문 1대 4대 편집위원장,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방송위원회 위원, 희망래일 이사장,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언론개혁운동과 평화운동에 매진해 왔다.

성 위원은 언론노조와 인연이 깊다. 신문개혁 입법 투쟁 당시 자전거를 타고 전국 순회하기도 했고, 대선 총선 등 언론감시 활동을 함께 해 왔다. 방송위원위 위원 때에는 공공성 공영성을 강조한 방송 정책 집행에 애를 썼고, 사업장 현안에도 두루 신경을 썼다. 또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에 맞선 투쟁에 전면에 섰고, 최근 박근혜 정권의 언론사 낙하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성유보 위원은 언론노조 출범 1주년 되던 지난 2001년 “한국언론이 비민주적, 반언론자유적 왜곡현상을 일으키고 있는데는 언론관계 법과 제도가 낡고 전근대적인데서 비롯된다”며 “이 법과 제도개혁의 문제는 범시민사회가 함께 나누어야할 과제”라며 언론노동자들과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공고히 했다.

   

또 2008년 언론노조 활동과 관련 성 위원은 “지금 노동운동은 보편적이지만, 박정희 정권 때 언론자유 운동의 경우 기자 개개인은 싸울 길이 없었다”며 “하지만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제작거부 투쟁과 농성을 할 수 있었고, 자유언론 실천 투쟁인 10.24 운동을 통해 유신 정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 위원은 이어 “임금이 노조 운동의 기본이지만,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국민과 함께, 아니 한걸음 더 나가 국민을 대신해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싸워야 한다”며 언론노조 운동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성 위원은 2014년 노동절을 앞두고 “노동이 없으면 자본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다”며 노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장례는 ‘민주 통일 이룰태림, 참언론인 고 성유보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11일(토) 오전 7시 세브란스 병원에서 발인을 하며, 8시 한겨레 앞 노제, 9시30분 시청 앞 영결식, 11시30분 광화문 일민미술관(동아일보)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모란공원으로 모셔진다.

성유보 선생의 필명인 ‘이룰태림’은 성(成)의 뜻 ‘이룰’과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투쟁을 하다 남영동에서 풀려났을 때 부친이 유언과 같이 남긴 말에서 태림(泰林)이 나왔다.

 “‘큰 숲’에는 호랑이도, 여우도, 늑대도, 토끼도 산다. 옳고 그름을 너무 날세우면 피곤해서 못 사느니라.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에만 시시비비를 가리도록 해라”  

   

▣성유보 동아투위 위원 주요 약력=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84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86년), 한겨레신문 초대 편집위원장(88년), 한겨레 논설위원(90년), 사회평론사 대표이사(93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98년),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 대표(2000년), 방송위원회 위원(2003년), 희망래일 이사장(2013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