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 2015-07-07 14:32:23 |
[기고] 1965년 후유증 겪고 있는 한국, 왜 이러나?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지난 6월 30일~7월 3일까지 독일 본에서 열린 『 부정적 세계유산과 미래가치』전시회. 민족문제연구소와 폴란드, 독일, 필리핀, 네덜란드 전문가 등이 일본이 등재 신청한 산업유산에 대한 문제점을 짚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
한일 간의 합의를 거친 뒤 7월 5일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되자, 한국 외교부는 윤병세 장관이 직접 나서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히 반영되는 형태로 결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한국 외교의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곧바로 밝혀졌다.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 외교부의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베 일본 총리가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 없이 자부심에 가득 찬 메시지를 발표한 데 이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사토 구니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의 '강제징용' 표현을 두고,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국 쪽의 해석을 정면 부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일본이 이와 같이 표리부동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배경에는 한국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과,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증이 있었다. 이런 태도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적지 않다.
첫째, 강제노역 사실이 유네스코 등재 결정문이나 주석(foot note)에 직접 표현되지 않고 '주석의 레퍼런스(참고)'에 일본 측의 발언 형식으로 반영되어 공식적인 권위가 현저히 떨어졌다.
둘째, 한국 정부가 당초 요구했던 강제노동의 뜻이 명확한 'forced labour'가 아니라, 'forced to work'로 표현을 완화해 줌으로써 '일하게 됐다'는 식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셋째, 노역을 강제한 주체가 정부인지 민간인지 불분명하게 되었다. 일본 특유의 모호한 어법은 그간 한일관계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즐겨 사용돼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넷째, 후속조치의 이행에 관한 보장 장치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경과보고서 제출과 2018년 경과보고서 검토만을 약속받았을 뿐, 강제노역에 관한 정보센터의 운영 등 세부 실천사항에 대한 합의가 전혀 없다.
피해자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사회와 달리, 한국 외교부는 처음부터 전쟁범죄 유적 7곳을 반드시 제외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메이지시대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등재가 목전에 닥치자 여론을 의식 뒤늦게 외교전에 뛰어들었다. 따라서 치밀한 전략이나 대응 매뉴얼이 부재한 상태에서 한일 간 교섭에 들어갔으며, 결국 일본의 잔꾀에 말려든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지난 6월 30일 독일 본에서 열린 『 부정적 세계유산과 미래가치』전시회의 세미나. 민족문제연구소와 폴란드, 독일, 필리핀, 네덜란드 전문가 등이 일본이 등재 신청한 산업유산에 대한 문제점을 짚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
주목해야 할 일은 또 있다. 7월 6일자 <산케이>는 "외무성 관계자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위원회에서의 일본 측 발언을 재판에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확약을 한국 정부에게서 몇 번이나 확인 받았다고 한다. 외무성 관계자는 '한국 내에 (유산 설명에 강제 노동의 명기를 주장하는) 여러 여론이 있다. 본 현장에서 확인함과 동시에 하이레벨(각료급)에서도 확인했다'라고 심의를 하루 보류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한국 외교부가 비밀리에 일본 측에 비공식적인 이면 약속을 해 준 것이 아닌가. "1965년 한국과의 국교정상화 때 체결된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에 의해, 소위 조선반도 출신자의 징용 문제를 포함하여, 한일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라는 기시다 일본 외무상의 단호한 발언도 이면 약속을 다시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뤄낸 값진 성과"라고 자평했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끊임없이 과거사를 부정하는 지금까지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일본의 양심' 운운하는 외교부의 기대 섞인 전망이 과연 가능할 일인지 자못 궁금하다. 일본에 모든 것을 맡겨 버렸으니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말인가.
1965년의 한일협정에서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아 발생한 후유증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이, 부실한 합의로 다시 위험하고 모호한 선택을 하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다음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메시지, 일본 외무대신 담화, 그리고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발표문이다.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제강, 조선, 석탄산업' 세계유산 등록에 대한 총리의 메시지>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제강, 조선, 석탄산업'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에 걸쳐 일본이 서양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힘으로 인재를 육성하고, 산업을 일으키고, 산업 국가가 된 것을 전하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해외의 과학기술과 자국의 전통 기법을 융합하여 불과 50년여 만에 산업화를 이루어낸 일본의 모습은 세계에서도 드물며,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적합한 보편적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8縣 11市에 걸치는 23개 구성 자산의 보전을 위해 몰두하고 지원해 오신 지역 여러분들, 100년을 넘게 산업자산을 가동시키면서 유지하고 보전에 대처해 오신 기업 여러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날의 '물건 만들기 국가 일본'의 원점이자 선인의 위업을 전하는 이 훌륭한 유산의 보전과 차세대로의 계승을 향해 결의를 새롭게 하겠습니다. 2015년 7월 5일 <외무대신 담화> :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제강, 조선, 석탄산업'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람표로의 기재 결정에 대해서 (제39회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에서의 심의 결과) (외무대신 담화) 2015년 7월 5일 1. 오늘 5일(현지시간 동일) 독일 본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39회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유산에 추천했던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제강, 조선, 석탄산업'이 세계유산 일람표에 기재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며, 관계자 여러분과 함께 이 결정을 환영하고 축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2. 본건은 1850년대부터 1910년에 걸쳐 우리나라에서 제철·제강, 조선, 석탄산업과 같은 중공업의 산업화에 중심적 역할을 맡았던 유산군으로 높게 평가 받았습니다. 시행착오 속에서 비서양에서 처음으로 산업화에 성공한 선인들의 노력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이번 결정에 의해, 이들 유산군이 다한 세계적 역할이 한층 널리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3. 본건의 등록 결정 후, 우리나라는 세계유산위원회의 책임 있는 멤버로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의 권고에 진지하게 대응해 갈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 발언을 했습니다. 이 발언은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인식을 말한 것이며, 1965년 한국과의 국교정상화 때 체결된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에 의해, 소위 조선반도 출신자의 징용 문제를 포함하여, 한일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다. 4. 앞으로도 이들 유산군을 포함한 일본의 자산에 대해서 온 세계 사람들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이해해줄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연계하며 그 매력을 더욱 세계에 발신해 나가겠습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발표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가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히 반영되는 형태로 결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금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정부는 과거 1940년대에 한국인 등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한 사실이 있었음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습니다. 정부는 최근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과 관련된 긍정적 움직임에 더해서 금번 문제가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된 것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선순환적 관계 발전을 도모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2015-07-07> 프레시안
☞기사원문: 일본에 놀아나 '샴페인 터뜨린' 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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