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학문과 운동은 무엇이 다른가? 학문은 이론이고 운동은 실천이라고 하면 정답일까? 이론 없는 운동은 설득력이 없고, 운동·현장 없는 이론은 무용하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이론과 운동은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며 살아온 오유석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를 8월 4일,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에서 만났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오유석이고요, 사회학을 전공하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이 저의 본업이고요. 연구자의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어요.
-쭉 연구자의 길을 걸어오셨는데 그러면 대학 시절에는 ‘학생운동’을 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학생운동에도 분화가 조금 생기기 시작해서, 연구를 하는 것과 운동을 하는 것이 그렇게 불일치하는 시대는 아니었어요. 노동운동이 실천운동이라면 연구는 학술운동이었죠. 한국사회의 구성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한 운동이었으니까. 그래서 대학의 학보사들은 학술운동을 한 거고요.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노동운동 대신 대학원을 선택했고, 지금은 비판사회학회로 발전한 산업사회연구회에 들어가면서 학술운동을 시작했어요. 학술운동 초창기 멤버죠. 당시는 학술운동단체가 하나의 시민단체로서 자기 역할을 했던 때였기 때문에 연구자이지만 실천적 연구를 한 거죠. 실천운동도 학술운동도 모두 사회운동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지위도 한편으로는 연구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죠.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하 여세연)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87년 이후 시민단체가 분화되고 한국의 운동 전반이 바뀌는 과정에서 학술운동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기 시작했어요. 연구를 통한 운동이라는 건 자기 색깔을 가져야 하는데 90년대 들어 각 영역의 전문성이 중요해졌어요. 때문에 운동에 대한 방향성보다는 자기 영역의 전문화를 키우는데 주력하기 시작한 거죠. 다른 한편에선 지방자치가 생기고 지방선거가 시작되면서 여성들도 정치에 진입하는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정치 연구를 하는 여성학자가 필요해졌죠. 김대중 정부 들어 여성에게 정치의 장이 상대적으로 오픈되면서, 여성운동에서의 역량을 ‘정치’라는 이슈까지 확장시킬 수 있으려면 어떤 여성이 정치에 진출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여세연이 창립됐어요. 제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나왔는데 여세연이 이대 사회학과 중심으로 많이 모여서 그 인연으로 여세연 창립준비모임부터 들어가 2000년 창립멤버가 되었어요.
사실 저는 여성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제 전공은 정치사회학, 역사사회학이기 때문에 여성학과는 거리가 있지요. 근데 그 때는 연구자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여세연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지점, 즉 프로젝트 기획을 만드는 사람으로 들어간 거예요. 더해서 여성정치참여에 대한 교육,연구자이면서 선생인 제가 교육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다 대표까지 한 거에요.^^
- 여세연이 조직 이름을 바꾼 걸로 알고 있어요.
지난 2010년 할당제에 대해 총체적으로 정리를 하면서 여세연의 방향을 어디로 둘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왜냐면 여세연의 목적이 여성후보를 발굴하고 교육해서 정계에 내보내는 것인데, 후보 발굴과 교육을 정당이 가져가게 됐거든요.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정당정치가 정착됐다는 거예요. 정당정치가 제도화되면서 무소속으로 나온 여성정치인들이 당선되기 어려워졌어요. 정치를 하려면 당선이 돼서 의원이 되어야 하는데 정당 위주로 선거법이나 정치관계법이 개정되면서 무소속으로는 어려워졌어요. 좋은 후보를 발굴해도 당으로 가야 당선이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여세연이 계속 후보를 발굴할 것인가? NO. 교육도 필요는 하지만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고요. 기존의 여세연이 하던 역할은 점점 축소되어 가는데 그렇다면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실히 보장되고 확장된 거냐? 그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여전히 제도 개혁은 필요하고 유권자 의식을 고양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젠더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젠더정치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왜 여기서 더 나가야 하는지 명분을 만들고 실증하자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래서 ‘젠더정치연구소’라는 이름을 넣었고 우리의 뿌리라는 의미로‘여.세.연’을 붙였어요.
- 대표직도 다시 맡게 되신 걸로 아는데 바쁘신 와중에 다시 대표를 하시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우리는 연구와 실천을 같이 병행하기 때문에 운동단체의 ‘대표’라는 직책을 가져가지만 연구소라는 것을 강조하는 측면으로 대표를 맡기로 했어요. 임기 2년 동안 연구자의 풀을 넓히고 연구소가 순환될 수 있는 대표체제를 만들어 연구소를 정착시키는 게 목표예요.
- 사무국장님도 올해 새로 오셨잖아요. 정말 새출발하는 여세연이네요.
새 술을 새 그릇에 담가야 하잖아요. 가능한 한 과거와 분리하려고 해요.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여세연을 끌고 갈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 대표님께서 영향받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좋은 은사님.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신 이이효재 선생님. 그리고 지도교수였던 조형 선생님. 지금 여성재단 이사장이시죠. 이이효재 선생님께 실천하는 여성의 모습을 본다면 조형 선생님한테는 연구하는 여성의 모습을 봤어요. 연구자면서 실천한 분들을 존경해요.
- 성공회대로 오시게 된 것도 그런 맥락이신 건가요?
그렇죠. 지금 서울시 교육감이신 조희연 교수 때문에 오게 됐어요. 산업사회연구회부터 함께 활동했지만 보다 가깝게는 산업사회연구회가 비판사회학회가 되면서 조희연 교수가 회장을 하고 제가 운영위원장을 했는데 그 때 성공회대에 연구소를 만들면서 결합하게 되었지요.
- 요즘 하고 계신 고민이 있다면요?
고민 너무 많아요. 지방의원으로서 지역에서 지역활동과 의원활동을 잘 했던 여성들이 당과의 관계를 풀지 못해서 재선 혹은 3선 공천에 실패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자질 있는 여성들이 자질이 있는 것과 정당정치의 멤버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낙선한 의원들과 함께 여성정치운동을 함으로써 최고 권력에 가까이 가고 최고 권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우리사회를 좀 더 여성주의적으로, 성평등 사회로,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사는 사회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이런 고민을 해요. 그리고 이번에 지방선거에서 기초공천 폐지 논란이 많았는데 지방자치를 잘 해나가기 위해서는 기초의 정당공천을 폐지해야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에 대한 고민도 있고요.또 젠더정치연구소로 이름 지었으니까 연구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와 그 연구주제가 현실 정치를 바꿀 수 있는 맥락으로 어떻게 접점을 만들 것인가, 자기의 연구와 실천을 접목하려는 연구자를 어떻게 더 젠더정치연구소라는 이름에서 담아낼 것인가, 거기에 어떻게 하면 사무국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재정구조를 만들까라는 고민까지!^^ 다 고민이죠.
- 듣기만해도 머리가 복잡해져요. 머리가 터지시겠어요. 쉬는 시간은 있으세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없어서 병 걸렸어요. 이석증이 왔어요. 물론 쉬는 시간 없이 사람이 어떻게 살겠어요. 저의 가장 큰 행복 하나는 잠자기. 자기 전까지 세상이 꺼질 것 같은 고민거리도 자고 나면 견딜 만 해요. 저는 자려고 하면 48시간도 자고 72시간도 자요. 제일 싫은 게 생리적 현상(소변 보는 거). 웬만하면 화장실 가는 것도 끝까지 참아요. 저희 어머님도 처음엔 이해를 못하셨지만 지금은 쟤가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이구나 생각하시죠. 저렇게 일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하는 건 잠을 자기 때문이란 걸 아시는 거죠.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허리도 안 아프냐? 하세요. 저는 안 아파요. ㅋㅋ
- 마지막으로 그렇게 주무신 건 언제에요?
그것도 다 젊을 때에요. 30대 때 논문 쓸 때는 정말 72시간씩 잤는데 이제는 많이 자야 24시간에요. (일동 빵터짐)
- 선생님으로서 강의하는 스타일은 어떠실지 궁금해요.
제가 박사과정에 들어간 27살부터 강의를 하기 시작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