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이어서)

 

선생님으로서 강의하는 스타일은 어떠실지 궁금해요.

 

  제가 박사과정에 들어간 27살부터 강의를 하기 시작했는데, 40대까지는 무섭게 강의했던 것 같아요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낸 거죠그 열정이 학생들과도 소통이 되었던 것 같고요근데 그 소통이 지금 생각해보니내가 20대 때 학생들도 20대고 내가30대일 때도 세대 공감이 되었던 거죠나의 열정과 세대가 맞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쏟아내든 소통이 가능한 거였어요선생이라는 건말 그대로 조금 더 앞서 배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저를 통해서 학생들은 좀 더 빨리 알아가는 거죠세상에 널려있는 지식은 너무나 많은데 그걸 다 볼 순 없잖아요그래서 요약하고 정리해주는 사람이 선생인 거라고 생각했어요그래서 가능하면 나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다른 생각들도 균형 있게 정리해서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근데 40이 넘으면서 열정이 떨어지더라고요그 전에는 16주 강의에서 첫 시간부터 세 시간 다 채워 강의했고세 시간 내내 서서 칠판을 몇 번씩 지우곤 했는데 지금은 칠판 쓰고 지우는 것도 힘들어요마음의 열정은 있는데 쏟아내는 게 힘이 들어요그리고 세대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40대 후반부터는 인생에 대한 것들을 담아서 이야기하는 수준이 안 되면 내가 정리해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하더라고요지금은 오히려 강의하는 게 좀 두렵기도 해요내가 다 설명한 걸까학생들은 다 이해한 걸까라는 걱정이 드니까 잔소리가 많아지고요그래도 저는 강의나 연구 다 아직은 재밌어서 해요.

 

 

대표님이 살았던 시대와 다른 시대였고 연구자가 아니라 다른 길을 갔다면 어떤 일을 하고 계실 것 같으세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거 아니면 안된다라든지이 꿈을 반드시 이뤄야지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아요그래서 다시 산다면 이렇게 살고 싶다 이런 건 없어요다만 후회되는 건 있죠제가 아들이 하나 있어요.저는 다른 일하는 엄마직장맘 보다는 많이 놀아줬다고 생각했어요학교에도 같이 오고했으니까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놀아주지 못한 거.

 

아드님이 그렇게 말한 거예요?

 

  아들이 말하길자기가 생각해도 좋은 엄마 아빠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서 컸는데 엄마랑 감정적인 교류는 많이 못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제가 좀 이성적으로 대했나봐요사실 저는 그게 너무 어려웠어요지금도 어려워요아이들을 대하는 것아이들 수준으로 놀아주는 거요엄마여도 그게 어려웠어요.아들한테도 빨리 커서 엄마랑 대등하게 얘기하자고 말했으니까물론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잘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더 놀아줄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은 있어요.

 

앞으로의 비전은 어떻게 그리고 계세요?

 

  60세까지만 잘 일하고 60세 이후로는 은퇴해서 좀 편하게 살면 안 될까ㅋㅋㅋ 저는 65세 정도까지만 일하고 그 이후에는 일선에서 은퇴하고 사회의 잔여범주에서 사회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요.

 

봉사활동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단순히 봉사는 아니고 작지만 늘 현역이면서 멘토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너무 늦게까지 직업으로서의 일은 하고 싶진 않아요.

 

대략 몇 년 정도 남았나요?

 

  대략 10년 쯤남은 10년 동안 제 분야에서 연륜이 깊어지면 좋겠어요연륜이 깊어진다는 건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는다는 거거든요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건 자기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 얘기를 잘 알아듣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거죠저는 아직10년은 더 있어야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ㅋㅋ 그렇게 되면 지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해서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들설득하지 못하는 것들소통하지 못하는 것들을 깨달아 알게 되겠죠지금도 나를 버리지 못해서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말하는 것을 상대가 알아듣게끔 하는 것도 부족한 것 같아요이런 점에서 더 성장하고 더 풍성에 해져야 은퇴 후 황혼의 긴 시간 동안 현역으로 누군가의 멘토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젠더정치연구소 여..연 중심으로 잘 써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그를 보며 연구소를 통한 학술운동에 애정과 열정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젠더정치 제2막을 여는데 박차를 가한 여세연이 그 첫 단추를 단단히 끼웠다고 감히 단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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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11월, 3228명의 발기인으로 출발한 여세연(여성정치민주세력연대)은 여성 정치 참여와 그를 통한 정치개혁 및 실질적인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남녀동수의 사회·정치적 제도 구상과 토대 구축을 위한 조사·연구 사업에 주력하면서 여성의 정치적 역량을 배양(업그레이드)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실천하기 위해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으로 새롭게 도약합니다. 여성이 (함께) 이루는 진정한 민주정치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여세연이 (함께)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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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 오유석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인터뷰어 :  도구, 고래
기사 작성 : 고래
사진 촬영 : 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