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욱 교수의 ‘탈핵을 꿈꾸며’](5) 국책사업이면 다인가? 주민자치권 존중하라
 

삼척의 지역사회는 앞으로도 여러 번 험난한 고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주민투표를 부정하는 핵마피아가 지역의 상공회의소, 특히 건설업·금융업 등을 통해 물량공세와 비난·중상의 흑색선전을 펼쳐 지역공동체 분리책동에 나설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북위 37도선’ 위에 있는 강원도 삼척시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정부 계획은 2014년 10월에 실시된 주민투표로 높은 장벽에 부딪혔다.

당황한 정부는 전원개발사업이 국가사무라는 점을 내세워 투표 결과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주민투표가 단순히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의견수렴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예정지역으로 파급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도이지만 주민자치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인 주민투표조차 부정하려는 정부 자세는 중앙집권체제의 전형적인 폐해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핵발전소 중심의 에너지정책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지방에 하달하는 방식으로 실시돼 왔다. 핵발전소 주변 지역들의 경우 사고 시 예상 피해범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정보와 의사결정과정에의 접근과 참여는 완벽하게 차단됐다. 주변 지역에 대한 배려는커녕 입법부조차 확인·검증을 못할 만큼 폐쇄적이었다. 심지어 정부는 1978년에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무 및 주민의 기본권조차 제한하는 ‘전원개발촉진법’까지 제정해 국책사업(?) 추진에만 집중해 왔다.

이 법은 독재정권이 경제정책 추진과정에서 댐 및 공업단지 예정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차질을 빚었던 경험을 토대로 도입한 것이다. 일본이 1952년 제정해 2003년 폐지한 ‘전원개발촉진법’과 명칭까지 똑같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비슷하다.

갈등 증대시키는 군사문화 사고방식
정부는 반민주적인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지정한 예정구역인 만큼 삼척 주민투표의 결과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주민서명부에서 복수의 위조 날인 같은 심각한 결함이 드러난 만큼 정부는 주민투표의 정당성을 논하기 이전에 지정고시의 주요 근거로 내세웠던 주민서명(부)의 재검증 작업을 먼저 실시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정부가 핵발전소는 국책사업이므로 추진한다는, 즉 주어진 임무의 절대 완수라는 군사문화의 사고방식을 고집한다면 사회적 갈등비용만 증대시킬 뿐이다.

과거 군사정권은 거점개발방식의 경제정책에 부수하는 지역 간 현저한 경제력 격차를 조장 또는 방관해 왔다. 군사정권은 핵발전소 또는 쓰레기 처분장 같은 기피시설을 경제적·재정적으로 궁핍한 낙후 또는 과소지역에 건설해 왔다. 지역주민이 혐오시설의 입주를 기피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의 당연한 결과인데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지역주민을 단순히 지역이기주의(NIMBY 현상)로 부각시켜 사회적 압력을 가했다. 1980년대 말부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장을 둘러싸고 핵마피아가 자주 이용했던 여론조작의 상투수단이기도 하다. 한편 이주 주민들은 일률적인 저액의 보상금을 받은 탓으로 곧 열악한 환경으로 변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복합적인 화학물질의 오염피해가 심각했던 온산(현 울산) 지역이 대표적이다. 삼척의 경우 전 시장이 의욕적으로 개발한 공업단지로 입주하려는 기업이 없는 탓에 개발비용의 차입금 및 이자가 시 재정을 압박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 때문에 전 시장은 핵발전소 유치에 따른 막대한 지원금이 자신의 실책에 대한 면죄부가 될 것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삼척시의 재정적 약점을 이용한 핵마피아는 기득권 확대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 군사정권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고려해 공업단지조차 북위 36도선 이하로 정했던 점이나 1681년 6월 국내에서 기록상 가장 큰 규모(매그니튜드 7.5)의 지진이 일어났던 지역이 삼척·강릉·양양 일대인 사실도 잊어버린 듯하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스스로 도입한 주민투표제도(2004년)의 취지를 철저히 부정하는 반민주적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의 특성과 주민의사를 존중하는 지방분권체제가 절대 필요하며 그 정착화 수단으로써 주민투표제가 도입되었다.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주민들이 선출한 지자체의 수장 또는 의원들이 주민들의 의사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민투표제는 주권자인 주민이 직접 자신들의 의사를 밝히고 또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한 보완장치로서, 결과적으로 지방행정 및 의회의 질적 향상도 가져온다.

따라서 삼척의 주민투표는 현대사에서 지역 민주주의를 향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중대한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삼척시의 주민투표가 과거의 반대운동에서 얻은 교훈을 살려 대화를 거듭한 다수결의 선택이었다는 점은 높게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단순하게 소수파의 이견을 배제하는 다수결의 전제(專制)와는 판이하게 다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자의적 해석과는 달리 지역주민들도 핵발전소 또는 관련 시설이 지역발전의 기폭제 역할은커녕 오히려 장해물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가령 정부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국책사업의 예정지역을 정했다 하더라도 지자체는 지역사회의 이해와 관련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자체는 주민에 가장 가까운 행정조직으로서 지역주민의 생명·안전·환경 등을 유지할 기본적인 책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도 국가사무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책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특히 핵발전소 같은 위험시설의) 입지 지자체 주민의 입장도 충분히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지자체만이 신속하고 적절하게, 또는 지자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사무는 점점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지역의 다양성과 민주주의 절차를 존중한다면 삼척의 주민투표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합리적인 사고능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주민투표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정부
유감스럽게도 삼척의 지역사회는 앞으로도 여러 번 험난한 고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주민투표를 부정하는 핵마피아가 지역의 상공회의소, 특히 건설업·금융업 등을 통해 물량공세와 비난·중상의 흑색선전을 펼쳐 지역공동체 분리책동에 나설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국책사업의 절대 완수를 내세운 핵마피아들은 특히 지방선거에 전력을 기울인다.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입지 지역의 지방선거 때마다 금전거래 및 상호비방이 관행처럼 거듭되면서 매번 체포자까지 나오는 등 선거 후유증이 지역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켜 왔다.

핵발전소 1기당 수조원의 거대 이권을 둘러싼 이해충돌에 주민의 감정대립까지 겹쳐 핵발전소의 건설계획이 발표에서 취소까지 이르는 데 보통 30여년이나 걸렸다. 이 때문에 건설이 취소돼도 오랜 세월의 분규로 고착화된 공동체 내의 대립이 최소한 한 세대 동안 지역사회 재생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 국책사업은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는 중앙관료의 경직된 조직문화는 사업의 수정 또는 변경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인 주민자치까지 뒷전으로 밀어낸 채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악법까지 동원하면서 타성적으로 국책사업의 수행에 중독증상을 보인다. 이러한 핵마피아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사법부의 역할이 더욱 주목을 받을 것이다.

최근 법원은 1심에서 고리1호기 주변 피폭 주민의 건강피해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특히 피해와의 인과관계가 종래의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확대된 점은 획기적인 변화로 높이 평가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원고와 피고(사업자) 간 능력의 비대칭성을 보더라도 합리성과 정당성을 가진다. 앞으로도 국책이라는 가면을 쓴 핵마피아의 폭주로부터 시민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사법부 본연의 모습을 기대한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