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 2014-09-06 14:53:45 |
▲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포스터.
민족문제연구소, 다큐 <백년전쟁>에 대한 판결문 분석
“재판부가 오히려 역사적 상식 왜곡하거나 과잉 해석”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정적인 측면만 다뤄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의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해, 다큐를 만든 ‘민족문제연구소’가 직접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반박에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최근 <한겨레>를 만나 “연구소가 소송 당사자는 아니지만, 법원이 다큐 내용에 대해 지적했기 때문에 판결문을 살펴봤다. 그런데 판결문에서 역사적 상식을 왜곡하거나 과잉 해석하는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다큐가 표현상 ‘비(B)급’처럼 보이긴 해도, 이는 풍자를 위한 것이며 내용은 충분한 연구·증거를 토대로 했다”고 강조했다.
<백년전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11년부터 제작하고 있는 6부작 다큐다. 시청자 참여형 채널인 <시민방송(RTV)>은 지난해 1~3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제 강점기 행적을 다룬 본편 1부 ‘두 얼굴의 이승만’(52분)과 박정희 전 대통령 시기 경제성장의 이면을 다룬 번외편 1부 ‘프레이저 보고서’(40분)를 각각 29회, 26회 방송했다. 같은해 7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시민방송의 <백년전쟁> 방영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의 공정성, 객관성, 명예훼손 금지 항목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시민방송에 대해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및 경고’라는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시민방송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차행전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에 대한 징계조치는 정당하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특정 자료·관점에만 기인한 역사적 사실과 위인에 대한 평가는,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는 한 의도적인 사실왜곡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객관적 근거에 기인해 해당 사실만을 중립적으로 방영하는 게 아니라, 추측과 과장, 단정적 표현 및 편집기술을 통해 사실관계와 평가를 자신의 관점으로 왜곡시켜 그 위인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하는 것은 위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공정성·객관성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를 바탕으로, 방송 내용에서 문제 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아래는 판결에서 지적한 부분과 연구소 쪽의 반박을 요약한 것이다.
① 이승만 전 대통령이 ‘고종의 밀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큐가) 이승만 대통령이 고종의 밀사 자격으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조선의 독립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미국에 가게 된 내용 및 이승만 대통령의 박사학위 논문이 여러 책에서 인용될 정도로 우수한 점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연구소 쪽은 이는 잘못된 상식이며 이 전 대통령 본인도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고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 자신의 <독립정신>(1993 정동출판사)을 보면, 대한제국 관료인 민영환·한규설 등이 미국행을 종용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고종의 직접 지시는 아니었고, 또 고종이 민영환 등에 이를 지시했다는 정황 등이 담긴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또 연구소 쪽은 “이 전 대통령의 석·박사학위 취득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지,논문의 수준을 평가하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비상식적’인 박사학위 취득 과정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대표적 ‘예찬론자’인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의 저서에도 담긴 부분이라고 했다.
②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재판부는 다큐가 1912년 11월18일치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이 전 대통령의 발언(“한일합방 후 3년도 지나기 전에 한국은 낡은 인습이 지배하는 느림보 나라에서 활발하고 떠들썩한 산업 경제의 한 중심으로 변모했다”)과, 1916년 10월6일 이 전 대통령이 <호눌룰루 스타블레틴>에 기고한 기사를 인용하며 “그는 악질 친일파”라고 한 부분에 대해, 다큐가 제작의도에 부합하는 부분만 발췌해 그 부분만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담았다고 했다.
특히 호눌룰루 스타블레틴 기사를 더 보면 “우리 한인학교에서는 일본(인)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특정 인종·민족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기엔 너무나 세계시민적인 사람이다”, “일본인들이 한국과 친근하게 지내길 원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생명, 자유, 행복에 관한 원천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둬야 한다” 등이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연구소 쪽은 1910년대 이 전 대통령의 ‘친일적’ 인식에 대한 다른 자료들이 많다고 했다. 1918년 이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작성한 징집대상자 예비조사 명부를 보면, 같이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박용만 등은 국적을 ‘Korea(한국)’로 표기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국적을 ‘Japan(일본)’으로 기록했다.
또 호눌룰루 스타블레틴 기사의 경우, 이 전 대통령이 해당 기사를 기고하기 전 맥락이 중요하다고 했다. 1~2일 전, 같은 매체에 이 전 대통령이 ‘반일적’이란 내용의 보도가 나왔고, 이 전 대통령이 이에 대해 ‘해명’하려는 글을 기고했다는 것이다. 연구소 쪽은 또, 다큐에서는 “이 사건만 본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므로, 이 전 대통령의 인생 전체가 아닌 특정 사건에 대해서만 얘기한 것이라 주장했다.
③ 박용만·김원용의 책은 주장일뿐, ‘객관적 자료’가 아니다?
재판부는 ‘하와이 교민사회 갈등과 일본 군함 이즈모호 발언’과 관련해, “(다큐가) 박용만, 김원용의 주장을 기재한 책을 근거로 했을 뿐 이를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고 했다. 이들이 이 전 대통령과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이란 이유에서다.
이즈모호 발언이란 이 전 대통령이 미국 법정에서 국민회 소속 다른 하와이 한인들에 대해 증언한 것을 일컫는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하와이 교민들 간 갈등으로 폭력사태가 있어 살인미수 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미국 영토에 한국 국민군단 설립하고, 일본 군함 이즈모호가 호눌룰루에 도착하면 파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이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중대 사건을 일으켜 평화를 방해하려는 것이다”고 말했다고 박용만·김원용은 주장했다.
그런데 다큐가 근거로 삼은 김원용의 <재미한인오십년사>는 역사학계는 물론 정부기관인 국가보훈처가 서훈할 때 근거로 삼을 정도로 사료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문헌이다. 또 박용만·김원용은 각각 1995년 국가보훈처에서 건국훈장 대통령장·애국장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다.
④ 이승만 전 대통령의 ‘맨(Mann) 법’ 위반 문제
다큐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맨법(기혼자가 아내가 아닌 여성과 함께 주 경계를 넘으면 처벌하는 당시 미국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미국 이민국에서 조사를 받은 사항을 다뤘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당시 하와이 이민국이 “(법을 위반했다는) 의심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도, 다큐가 부정적 방향으로 왜곡·과장했고 지적했다. 또 사실관계가 아닌 추측이 가미된 부분을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재구성했다고도 했다.
연구소 쪽은 이에 대해 연구소가 직접 이민국 공문서를 번역해 보고, 또 다른 자료들을 종합해 봤을 때 이민국 조사결과에 의문이 많아 다큐에 담게 됐다고 했다. 다큐에선 혐의 기각 사실도 분명하게 밝혔다.
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산주의 활동 및 “명치유신 지사 존경” 발언 관련
재판부는 “박정희 대통령이 주체가 되어 시행한 5·16혁명의 내용과 그 이후의 행보에 비추어 볼 때,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대목은 재판부가 5·16을‘혁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판결문에 적시한 것이다.
연구소 쪽은 박 전 대통령이 해방 뒤 군에 복무하며 공산주의 진영에 가담했다가 숙군 대상에 포함됐던 건 학계에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또 다큐에서는 활동 시기를 기록해 ‘일시적인 활동’임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재판부가 5·16 이후 행보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이전에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고 추정하는 게 오히려 주관적 억측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또 다큐에서 박 전 대통령이 5·16 직후 기시 노부스케를 만나 “혁명을 했을 때 일본 명치유신 지사들을 떠올렸다. 나는 명치유신의 지사들을 존경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담은 데 대해, “박 대통령의 위 말은 일본의 근대화를 존경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소 쪽은 이 또한 재판부가 과잉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⑥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동료들을 밀고해 살아남았고, 무고한 언론인을 재판을 통해 살해한 것처럼 오인되게 사실관계 구성했다?
연구소 쪽은 숙군 당시 사형 판결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이 아는 군대 내 남로당 조직을 수사팀에 알려줬으며 이러한 활동이 국군지휘부와 미 군사고문단의 박 전 대통령 ‘구명’ 명분이 되었다는 부분은,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이 <중앙일보>에 실은 회고글에 담긴 것을 비롯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했다.
또 연구소는 언론인 관련 부분은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을 다룬 것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법원의 잘못된 결정”이라며 재심 개시를 권고해 2008년 재판부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은 점을 강조했다.
연구소 쪽은 “<백년전쟁>에는 허위사실이 포함되지 않았다. 역사적 인물의 실체적 진실을 폭로했다고 해서 명예훼손으로 규정한다면 모든 비판적 역사서술은 범죄가 되고 말 것”이라며 “이번 판결을 언론·학문의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했다.
한편, 이번 재판과 별도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는 지난해 5월 <백년전쟁>이 이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다큐의 감독·피디, 민족문제연구소를 고소한 바 있다. 검찰은 지난 4월 해당 사건을 형사부에서 공안부로 재배당해 논란을 빚었다.연구소 쪽은 “행정법원 판결 선고 바로 다음날 검찰 쪽으로부터 참고인으로 소환한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김효실 기자 [email protected]
<2014-09-06> 한겨레
☞ 기사원문: “5·16이 ‘혁명’이라는 재판부…역사 상식도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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