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 2014-09-11 11:50:01 |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친일반민족 행위자 선정이유…적극적·자발적 협력
관변단체 이사 역임 침략전쟁·황도유학 적극 주장
“일제 강요에 의해 동원된 것” 이의신청 기각 당해
역사학계 “이 이사장 역사인식 문제 안타깝다”
원로 서양사학자로 서울대 명예교수인 이인호 <한국방송>(KBS) 신임 이사장이 한학자인 조부 이명세의 친일행적에 대해 “유학을 위한 타협”이라 한 발언의 후폭풍이 거세다. 공영방송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수장이자 역사학자로서 부적절한 인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이사장은 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조부에 대해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면서 사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다”고 말했다. 또 “취직하신 것”이라며 단순 직업활동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5일 한국방송 임시 이사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한겨레> 10일치 2면).
그러나 10일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를 보면, 이명세의 친일행위는 매우 ‘적극적’이고 ‘자발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면서 펴낸 것이다.
보고서는 이명세가 △조선유도연합회의 상임참사·상임이사를 역임했으며 △‘황도유학’을 주장하고 △일제의 한반도 침략를 찬양했으며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의 업적을 칭송했고 △일제말 징병제 실시까지 찬양했다고 적시했다.
위원회가 핵심적인 친일 행위로 지목한 조선유도연합회는 조선총독부가 전국의 유림단체를 통합해 조선 유림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관변단체다. 이명세는 조선유도연합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일제 고위관료를 칭송하고, 침략전쟁과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는 시문을 짓고, 시국 강연을 통해 황도유학을 적극 주장했다.
황도유학은 일본 국왕과 유교을 뒤섞은 ‘일본식 유교’로 조선 성리학과 뿌리부터 다르다. 황도유학은 또, 일본의 침략전쟁을 뒷받침하고 조선인들의 자발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됐다. 이명세는 1942년 조선유도연합회 기관지인 <유도>에 “나라 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라는 내용이 담긴 한시 ‘축 징병제 실시’를 실었다.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 같은 잡지에 실은 ‘정기가의 해설’(正氣歌の解說)을 통해 일제의 전승을 기원하기도 했다. ‘정기가’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일본 유학자의 글이다. 위원회는 “이명세는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고 결론 내렸다.
위원회는 또, 이명세와 관련해 이의신청도 기각했다. 보고서는 “이명세의 반민족행위 결정에 대해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이사 등으로 참여한 것은 일제의 강요에 의해 동원된 것’이라며 이의신청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의신청자의 인적 사항은 밝혀지지 않았다. 위원회는 “당시 자료를 통해 이명세는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적극적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였던 인물”이라며 이의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국가 기관이 재심을 통해 ‘친일 행위자’로 재차 인정한 셈이다.
역사학계는 이 이사장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안타깝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친일인사들은 대부분 ‘그때 친일파 아닌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한다”며 “‘그 시절 모두가 잘못’이라는 논지를 편다면, 자신의 목숨을 던져 항일운동을 한 사람들의 존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또 “(이 이사장이) 조부 문제로 역사학자로서의 역사의식이나 공정한 사관을 지키지 못한다면 평생의 학문적 업적에도 부정적인 평가를 자초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이 이사장의 해명을 두고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방 국장은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친일이었다면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조선인 고등계 형사도 전부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며 “상당한 재력가였던 우당 이회영은 자신의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중산층 운운하는 것도 비상식적인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의 ‘연좌제’ 지적에 대해선 “이 이사장이 조부의 친일행적을 감싸는 것이 문제다. 이는 당사자의 역사인식 문제”라고 일축했다.
이정국 이유진 기자 [email protected]
<2014-09-10> 한겨레
☞기사원문: 이명세는 국가공인 친일파…“이인호 해명은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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