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 2014-09-30 13:19:06 |
『이인호 망언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상식과 금도를 벗어난 이인호는 공직자의 자격이 없다
이인호 씨의 망언이 점입가경이다. 명색이 학자 출신인데 최소한의 양식마저 저버린 저 노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치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일으켜 숱한 무고한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간신 유자광의 현신을 보는 듯하다. 역사를 악용했다는 점, 권력에 유착했다는 점, 반대세력을 무고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인호 씨는 문민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양지만을 찾아다녔다. 한때 진보 역사학계를 기웃거렸던 그는 뉴라이트의 대부로 화려하게 변신하며 역사왜곡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2007년 이른바 ‘건국6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의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 폄훼에 앞장섰으며, 백범 김구에 대해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한 사람'이라고 단정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2013년 3월 청와대 원로 초청 오찬에서는 우리 연구소가 극우세력의 조직적 역사왜곡에 대응하여 근현대사 진실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역사다큐 『백년전쟁』에 대해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했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고변하여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현 정권의 기도에 단초를 열었다.
최근에는 노구를 이끌고 극우세력의 대변자를 자임하면서, 사관 이전에 수준미달이 문제가 되었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적극 옹호하는 한편 우익 원로들의 지지 기자회견을 주도했다. 총리후보로
지명되었다가 역사인식이 문제가 되어 낙마한 문창극 씨에 대해서는 “(교회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 이를 반민족이라고 하면 제정신이 아니고 마녀사냥이다. 비이성적이고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다”고 극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최고 권력자의 의중에 영합한 일련의 과격한 행보는 KBS 이사장이라는, 본인의 경력과 무관한 감투로 보상받았다. 현 정권 들어 모든 인사가 그러했지만 “전형적인 낙하산이요 논공행상”이라는 들어 마땅한 비판이 뒤따랐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인즉, 이인호 씨는 KBS 이사장 선임 이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사실상의 검열을 공공연하게 주장하여 언론 관계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가 하면, 공직자로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천박한 역사인식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방송통제와 역사왜곡 이 두 가지 임무를 초장부터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망언 행진은 끝날 기미가 없이 계속되고 있다. 조부의 친일 행각에 대해서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면서 사신 것이다.…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다”라는 변명을 늘어놓음으로써 다시 세간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데 이어, 며칠
전에는 '우리 역사 바로보기-진짜 대한민국을 말하다’라는 우스꽝스런 주제로 열린 전경련 주최 강연에서 친일파 청산 주장이 소련의 지령 때문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엽기적인 주장을 서슴지 않아 색깔론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조롱을 받았다.
이쯤 되면 언급하기에 우리도 대략 난감할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어 보인다. 제 정신이라 하기에는 발언 내용이 가당치 않기 때문이다. 논리가 있고 근거가 있어야 반박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해방 이후
최우선의 과제가 친일파 청산이었고 이것이 전민족적 합의였다는 데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는 점만 밝혀 둘 뿐이다.
‘오십보 백보’이긴
하나 이인호 씨는 박정희주의자이기에 앞서 골수 이승만 추종세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가 역사논쟁에서
유독 집착한 목표가 ‘이승만의 온전한 복권’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가 극구 옹호하는 조부가, 기독교도인 이승만과 이기붕을 성균관
명예이사장과 부이사장으로 추대하고 3.15 부정선거를 적극 지원하는 등, 독재에 충성한 일원이었다는 점을 볼 때 그 같은 해석은 한층 설득력을 가진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시계는 반세기를 거슬러 역행하고
있다. 피어린 사월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그를 기념하는 동상이 다시 세워지고,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무리들이 백주대낮에 활보하고 있다. 이제 정치깡패 땃벌단이 설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박정희가 5.16쿠데타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구악일소!” 바로 당시의 척결대상이었던 이승만 추종세력이 그 딸의
비호 아래 애국세력을 자임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이긴 하나, 초록은 동색이요 민간독재든 군부독재든 파시즘은 결국 한 통속임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 웃지 못 할 현실이다.
박근혜 정권은 영원한 이정표로 삼아야 할 역사와 백년대계인
교육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던 역사에
대한 반역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일차적인 목표는 이승만의 복권이지만 궁극적인 종착점은
박정희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사실도 명백해 보인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극우인사 배치를 통한 공영방송
장악은, 거대한 역사변란의 서막이며 장기집권을 향한 그들 나름의 원대한 포석이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은 사월혁명 이래 50년이 넘는 민주화투쟁의
굳건한 기반 위에 자리잡고 있다. 얕은 술수와 음모만으로 거짓을 진실로 바꾸기에는 우리 사회에 축적된
경험과 지혜가 결코 녹록치 않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양식있는 많은 이들이 현 정권
들어 심화되고 있는 극우세력의 권부 진입을 우려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극단적인 이념편향이 우선은
정권의 입맛에 맞겠지만, 종국에는 국가에 커다란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인내도 한계가 있다. 상식과 금도를 지키지 않는 공직자의 작태에 분노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언제까지
안하무인식의 망발을 지켜만 보아야 하는가. 이인호 씨의 연이은 도발이 신념에서 비롯한 것이 확실할진대, 이를 용인한다면 앞으로 치러야 할 사회적 손실과 그 폐해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비뚤어진 역사인식의 소유자를 잠시라도 책임있는 공공의 영역에 두어서는 아니된다. 헌법정신과 국가정체성에 반하는 망언을 자행하고 있는 이인호 씨를 계속 비호한다면 정권 또한 심판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남은 선택은 이인호 씨를 즉각 퇴진시키는 길 한 가지뿐이다.
2014. 9. 30.
민족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