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 2015-02-27 10:53:58 |
[이이화 특별기고]
올해는 민족사적으로 환희와 비극이 교차한 광복과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들머리부터 이완구 국무총리 인준을 두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는데 또 일본 총리 아베는 봄을 맞이해 군국주의 부활을 외칠 모양이다. 그런데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연말, 올 3월에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한국사의 국정화를 결정짓겠다고 공언하였다. 이 작업이 지금 내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도 남북이 분단되어 있으면서 이질적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시대 상황에서 정부의 통제 아래 두고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군국 국가나 전제체제적 발상이다. 현재 일본에서도 군국주의적 발상으로 근현대사 중심의 교과서 서술을 왜곡하고 있으나 국정으로 가자는 논의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현재 교과서 발행제도의 세계적 추세는 검정과 인정, 자유채택제로 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를 겪었거나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나라인 북한을 비롯해 베트남, 러시아다. 불행하게도 1970년대 반민주적·반역사적·반동적 유신체제를 겪었던 한국도 한때 한국사 국정교과서 국가에 포함되어 있었다.
과거를 더 돌아보자. 조선왕조 시대에도 사학이든 관학이든 아동교육 교과서로 <천자문> <동몽선습>을 가르쳤으나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채택하였다. 대한제국 시대에 신교육의 보급에 따라 교과서가 발행되었으나 검정 또는 인정 제도를 시행하여 채택의 자율성이 상당히 보장되어 있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총독부 당국은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을 현장에서 몰아내고 일본어와 일본역사를 필수로 가르치면서도 교과서를 국정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미군정 시기와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1946년 새 학기에 국어와 국사를 편찬하면서부터 교과서에 검·인정 제도를 계속 시행했다. 독재정권의 의도는 접어두고라도 형식논리로만 따져보면 국정을 채택한 적이 없었다.
그 당시의 한국사 교과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적에 다양했다고 볼 수는 없을지라도 형식에서만은 검·인정을 존중했던 것이다. 최소한도 절차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 곧이은 유신시기, 한국적 민주주의와 한국적 민족주의를 외치면서 국사를 국정으로 지정하여 반역사의 길로 치달았다. 왜? 국정의 이 국사 교과서는 반민주적 유신을 합리화하고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을 극복하는 도구로만 바라본 것이다. 북한의 교과서 국정은, 근현대사를 김일성 중심의 주체사상으로 왜곡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비추어 볼 때 유신시절 국정화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국사 교과서를 비롯해 교과서의 자유로운 표현을 존중하려는 분위기가 일었고 한국사 근현대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동안 관학 교수들의 “역사는 한 세대가 지나가서 평가해야 한다”는 논리를 마치 역사 이론의 정설처럼 받아들이는 척박한 풍토에서 근현대사 교육문제의 제기는 하나의 진전이었다. 그리하여 이승만-박정희의 독재 역사가 현장에서 교육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쪽의 김일성 교조도 단편적으로 포함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명박 정권이 갑자기 좌편향 교과서 내용을 바로잡고 또 근대화와 산업화 논리를 펴자면서 국사 교과서 개편작업에 나섰다. 결국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지침이 되는 국사 교과서를 이리 뜯어고치고 저리 덜어내면서 누더기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역사에 대한 무지한 무리들이 자신의 무지를 모른 채 주제넘은 짓을 한 셈이다. 다행하게도 국정으로 가자는 논의나 제안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라는 사생아가 태어났다. 그 집필자들은 기득권 세력과 권력을 쥔 부류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잔머리를 굴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근대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을 적절하게 대비, 마치 가치중립을 포장하여 국사 교과서를 만들어냈다. 곳곳에 널려 있는 사실의 오류는 제쳐두고라도 그 천박한 논리는 억지로 꿰맞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리해 역사학계와 지식인은 물론, 학부모의 세찬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고 말았다. 이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성찰과 반성의 자료가 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말을 다시 돌려보자. 이인호라는 서양사를 전공한 원로 역사학자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대통령 옆에 앉아서, 국민통합을 위해서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가야 한다”고 건의를 했겠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이해한 발언일 것이다. 그는 이어 친일파 청산의 지령이 모스크바에서 내려져 국내에서 친일파 청산운동이 일어났다고도 했다.
그런 뒤 국사 교과서 국정 논의는 물살을 탔다. 김무성과 같은 뉴라이트 교과서를 지원하는 정치인을 비롯해 이승만을 ‘민족의 태양’이라고 추어올리는 유영익 국편위원장과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주장을 펴기도 하고 동조를 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힘입어서인지, 아니면 ‘유신의 딸’인 대통령의 눈치를 살살 살펴서인지 담당 부서인 교육부 장관이 “역사는 한 가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면서 국정화 작업의 진행을 서두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정교과서로 지정해서 학생들이 하나의 교과서로 국사를 배우고 시험을 볼 때 오는 폐단을 지적해 보자.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해석과 상상력이 획일화되고 다양한 가치관이 하나로만 치달아 창의성이 마비된다. 또 수험생들은 하나의 교과서만 달달 외우려는 풍조도 일어날 것이다. 아니면 독재와 유신이 근대화라는 이름에 묻히고 민족과 민주를 찾으려는 운동과 희생이 역사의 무덤으로 파묻힐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산-독재국가에서 지향하는 국정교과서가 민주국가에서도 시행된다는 선례를 남기게 될 수도 있다. 지금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한국의 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본받으려는 움직임이 그 보기가 될 것이다.
어찌 두렵지 않은가?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교육부가 이 작업을 계속 진행한다면 다시 “완구백화점” 사건보다 훨씬 세찬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나아가 사회분열을 조장할 것이며 미래사회에서 전제적 발상이라는 역사의 꾸지람도 따를 것이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의 안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껍데기만 남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즉각 진행을 중단하기 바란다. 평지풍파를 일으켜 역사전쟁을 다시 유발하지 말라.
<2015-02-26>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