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2015-02-27 10:58:34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지난 23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때아닌 ‘친일’ 논쟁이 벌어졌다. 화폐 등에 그려져 있는 위인들 초상화 중 친일 반민족행위 전력이 있는 화가들의 그림을 빼자는 법안을 놓고 여야가 찬반으로 갈려 설전을 벌인 것이다.

 

이날 심의된 법안은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조정식 의원이 각각 발의한 것이다. 배 의원은 지난 2013년 7월 국가공인 영정을 지정하고, 이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10년 단위로 공모해 재지정하는 법안을 냈다. 국가공인 영정 지정 등을 위한 위원회 설치 등도 담았다.

 

조 의원도 지난해 11월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다만 ‘친일 반민족 행위자 저작의 영정지정 불가’를 명시한 것이 배 의원 법안과 달랐다.

 

두 법안 모두 “친일 전력 화가들이 그린 위인 초상화를 정부가 나서서 더이상 쓰지 말게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으로 담겼다.

 

문제된 그림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1만원권 세종대왕, 이당 김은호 화백의 5만원권 신사임당, 월전 장우성 화백의 100원짜리 주화에 새겨진 이순신 초상화 등이다. 김기창·김은호 화백은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에 의해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됐다. 장 화백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경향신문이 26일 입수한 국회 속기록 초고를 보면, 여야의 첨예한 친일 논쟁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은 “일반 그림과 달리 우리 민족의 혼과 얼, 자긍심 등을 담는 그림이어야 하는데, 친일파 화가들 그림이라면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것 아닌가”라며 법안 통과를 주장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은 “그림에까지 그런 관점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소위원장인 새누리당 신성범 의원은 “지금까지 다 그걸 봐왔는데 그때는 우리가 얼이 없었나”라고 반문했다. 같은 당 이상일 의원은 “일본사람처럼 그렸나”라고 물었다.

 

이에 김태년 의원은 “민족 정기를 세우는 문제”라고 되받았다. 법안 발의자인 배재정 의원은 “정부가 나서서 (초상화) 지정 해제를 하는 게 부담스러운가”라고 따졌다. 논쟁이 계속되자 신 의원이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았으며 큰 반향을 불러올 것”이라며 논의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법안심사소위 속기록 초고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새정치연합 김태년 의원 =“표준영정은 일반 그림과 달리 우리 민족의 혼과 얼, 자긍심 등을 담는 그림이다. 단순하게 그림의 기술적인 측면만을 놓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법안은 전혀 문제가 없다. 화폐에 들어간 그림을 바꾸는 것이 돈이 많이 든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바꾸는 게 맞다. 과거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영정을 그렸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용인이 됐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지금과 같은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 문체부가 직권 지정 해제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그림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 =“친일을 했다고 해서 그림에까지 그런 관점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친일 행적과 작품의 가치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친일행위를 한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아닌가.”

 

▲새누리당 신성범 의원(소위원장) =“아니, 그런데 1973년도에 세종대왕을 운보(김기창)가 그렸고, 이순신 장군도 장우성 선생이 그렸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다 그걸 보고 왔는데 그러면 그때는 우리가 얼이 없었나?”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 =“일본사람처럼 그렸나?”

 

▲김태년 의원 =“그래서 일본풍이 많다는 것도 있어요. 실제로. 일풍이 있어요 왜풍이.”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 =“아니, 예술적 가치도 굉장히 높다고 판단해서 그런건데 친일파라는 이유로 그림을 무조건 교체하고 딱 경직적으로 하고 그러는 건 좀...”

 

▲김태년 의원 =“과거 어떤 식민 청산이나 민족정신을 견결히 지켰던 나라들에서는 자기 민족에게 해를 끼치고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들이 한 영정 이런 것을 상상할 수 없을 거다. 그리고 그때는 국민이 그런 규정들이 명확하지 않아 잘 모르고 용인했던 것 아닌가.”

 

▲김회선 의원 =“화폐에 들어간 영정까지 바꾼다면 그 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신성범 의원 =“국민들이 다 익숙해져 있는데….”

 

▲김태년 의원 =“백번이라도 다시 그려야 하면 다시 그려야 되는 거죠”

 

▲신성범 의원 =“친일을 했다고 해서 직권으로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았으며 큰 반향을 불러올 것이다. 문화계에서도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또한, 화폐에 들어간 영정까지 바꾼다면 그 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검토를 더 해봅시다”

 

▲신성범 의원 =“엄청난 파장이지.”

 

▲김태년 의원 =“아니, 이게 파장을 두려워할 문제입니까? 민족 정기를 세우는 문제 아니냐.”

 

▲신성범 의원 =“문화계라든지, 예술계가…”

 

▲배재정 의원 =“정부가 부담스러워하는 건 뭡니까? 문화부가 직권해제하는 게 부담스러운건가?

 

▲문화부 1차관 =“화폐도 다 바꿔야 해서 사회적 파장 굉장히 크다”

 

▲신성범 의원 =“문화계 의견도 들어봐야하고...미안하지만...공감대도 필요하고...”

 

▲박홍근 =“공감대는 있죠. 비용 문제는 고려할 수 있겠지만. 문화계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건 불필요한 얘기다.”

 

▲신성범 “그래요? 어쨋든 시간이 더 필요한 듯 하다. (나중에) 계속 심사합시다.”


<2015-02-27> 경향신문

☞기사원문: [단독]“화폐 속 세종·이순신… 친일 화가 그림 빼자” “지금까지 봐왔는데 그때 우리는 얼 없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