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2015-05-26 18:30:37


(이 글은 필자가 종전 7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5월 7일에 베를린에 개최된 기념행사에 야스쿠니촛불공동행동의 일원으로 참석하여 발제한 것을 약간 수정하였다.)


죄의 정치


어떤 죽음을 기억하고 어떤 죽음을 배제하고,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이상화할 것인지는 예로부터 정치의 본령에 속한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전사한 아테네 병사들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유족의 위태로운 감정을 배경으로 애도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일본사회가 그랬듯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도 희생자를 어떻게 애도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앓고 있다. 그런데 애도의 대상이 전쟁과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아니라 전범이나 가해자라면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파행을 겪게 된다. 그래서 야스쿠니 신사를 생각할 때 애도의 정치가 아니라 죄의 정치(politics of guilt)가 더 어울린다. 죄의 정치란 전쟁범죄나 중대한 인권범죄에 따른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을 이행하고 국내적 또는 국제적인 평화를 수립하는 역동적인 정치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 국가폭력을 자행한 사회의 성원들은 죄의 얼룩에서 벗어나기 위해 윤리적으로도 정화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법적 대가도 치러야 한다. 죄의 정치는 외부세력의 강박이 아니라 사회의 내재적인 발전을 통해서 전개되는 경우에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국가폭력에 소극적으로 연루되거나 수수방관하였던 보통사람들이 후회와 성찰에 입각하여 공동체를 재구성하려는 집단적 정치적 의사를 형성할 때, 죄의 정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죄의 정치의 최종생산물은 평화를 사랑하는 건강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희생자의 판타지로서 백조일손지지

총칼로 전쟁을 하지 않는 동안 인간은 기억과 관념을 가지고 전쟁을 한다. 기억을 위해서 전쟁을 한다. 지금도 제주4.3사건의 희생자명단에서 남로당원을 배제해야 한다고 우파들은 주장한다.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논리를 지금도 강변한다. 군경은 6.25전쟁 초기에 수만 명의 민간인들을 예비검속의 명분으로 체포하

여 학살하였고, 제주4.3사건의 관련자들도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정부당국은 제주도 모슬포에서 130여 명을 집단살해하고 6년이 지나도록 그 시신에 접근하는 것조차 금지하였다. 접근이 허용되었을 때에는 시신들은 뒤엉켜서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고, 유족들은 유해를 임의로 짜 맞추어 묘지를 만들었다. 그 시신들은 원래의 몸이 아니지만 각각 개인으로 취급되어 안치되었다. 대신 유족들은 이 무덤을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백여 명의 조상에 대하여 그 후손들은 한 사람처럼 봉사하고 애도하자는 뜻을 담는 공동묘지)라고 부르고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그러므로 백조일손지지는 학살 이후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판타지이다. 학살을 제거하고 평화를 추구하고 분단을 극복해달라는 유지를 품은 불가사의한 묘지로서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할만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백조일손지지의 정반대의 시설이다.

침략주의의 충전소

야스쿠니 신사는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인의 강제합사, A급전범(침략범죄자)의 합사, 일본수상의 참배 등은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 상황을 증폭시킨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제거한다면 이제 감당할만한 시설로 인정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 자체에 있다. 서승은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시설이 아니라 군사시설이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야스쿠니 신사는 실제로 식민주의와 침략주의의 만신전과 같다. 타이완침략, 조선강제수교, 오키나와 병탄, 청일전쟁, 러일전쟁, 독도병합, 조선강제병합,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은 제국주의 일본의 70년전

쟁 또는 대(對)아시아전쟁--대동아성전이 아니라--이라고 불러야 한다. 물론 어느 국가나 국민이든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에 대해 문화적 자율성을 갖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몰자를 위한 추도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는 그러한 시설들과 동일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곳은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꿈꾸는 시설이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오로지 제국주의 침략과정에서 천황제의 지지대로서 역할 했다. 일본정부가 70년간의 침략전쟁을 통해 자행한 범죄와 야만에 대해 주변국가에 사죄의 감정을 갖고 진정으로 평화적인 관계를 원한다면 그러한 혐오시설은 일본제국의 패망과 동시에 일찍이 해체되었어야 했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고스란히 담은 시설을 일본이 유지하는 데에는 자민당 정부와 일본의 우익의 힘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아패권(亞覇權)을 활용하려는 미국의 계산도 한 몫 한다. 과거사에 대한 미국의 모호한 태도가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학자들은 동북아시아에서 역사경계선과 안보경계선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학습의 차이에서 역사의 차이로


형사책임과 관련해 일본과 독일을 비교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 1945년 이후 연합국은 나치 전쟁범죄를 강도 높게 청산하였다. 물론 나치공직자들이 군정말기에 대체로 제자리에 돌아왔지만, 독일정부는 유대인학살과 전쟁범죄에 관여한 자들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처벌하였다. 일본에서도 1945년 이후 연합국은 많은 전범들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맥아더는 전쟁범죄의 총책인 일본천황의 책임을 면제하였으며,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생화학무기를 제조하였던 731부대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연합국의 점령통치가 종결된 이후에는 일본정부는 전쟁범죄자를 처벌한 사례가 전무하다. 이 점은 독일과 일본의 역사를 오늘날 상당히 다르게 만들었다. 예컨대, 1960년대의 제2차 아우쉬비츠 소송이나 2011년 뎀잔주크(Demjanjuk) 소송(영화 <뮤직박스>의 모델)은 독일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도 전쟁범죄와 경각심, 책임을 학습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독일 대중들은 연합국의 점령과 강제청산을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와 같이 지속적인 학습과정을 통해 20세기가 지향하는 국제인도법의 정신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반면 일본정부와 대중에게는 이러한 학습의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제2차세계대전까지의 일본의 행위와 책임을 아직까지도 총정리하지 못했다. 위안부문제, 식민침략, 남경대학살 등은 여전히 일본 시민들에게는 평화와 인권의 정신을 만회하기에 좋은 학습기회이다. 그러나 일본사회와 일본정부는 그와 같은 일차적 죄를 부인하고 책임의 이행을 부인하면서 독일 작가 랄프 지오르다노가 말한 '제2의 죄'를 지속적으로 범하고 있다.

전쟁선동으로서 참배행위

야스쿠니 신사 자체는 죽은 자에 대한 사사로운 애도의 공간일까?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를 위해 죽은 군인이나 그에 준하는 자만이 묻혀있기 때문에 사사로운 애도의 감정이 아니라 숭배와 찬양의 감정이 작동한다. 거기에 합사된 자들은 일체화되고 신으로 격상된다고 한다. 인권법적으로 평가하자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참배행위는 자유권규약이 금지하고 있는 전쟁선동이다(ICCPR 제20조 제1항). 야스쿠니 신사의 출범부터 마지막까지 일본침략의 수행자들이 묻혀있기 때문에 동북아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기타 희생자를 위한 간이시설(예컨대, 진영사)을 지어 구색을 맞춘다고 해서

시설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더구나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 자행한 침략과 만행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이행하는지 여부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동북아 시민들의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학살이나 남경대학살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고 이행하지도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 시민들은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정치적 군사적 역량강화를 당연히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전몰자들은 대개 아시아에서 일본의 패권을 위한 70년간의 침략전쟁 수행자들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서 뭔가를 기린다는 것은 일본의 침략국가성을 찬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는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인 일본이 안고 있는 내면의 어둠이다. 물론 모두를 전쟁의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모호하게 접근하는 독일의 ‘노이에 바케(Neue Wache)’ 1)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야스쿠니 신사가 구조적으로 그와 같이 전환되기 어렵다고 본다. 일본에서 합당한 죄의 정치가 발현되고 과거사의 책임을 이행하고 평화를 위해 깨어날 때, 그 때에나 노이에 바케와 같은 시설이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침략전쟁의 전범과 가해자들을 참배의 대상으로 한 야스쿠니 신사는 관리주체와 법적 지위를 아무리 변경하더라도 여전히 국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띨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가 발산하는 기운은 침략주의와 맹목적 국가주의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고민한다. 전쟁에서 죽은 자를 추도하는 시설로써 전쟁과 애국심을 선동하지 않는 형태가 가능할까,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가 진정으로 평화주의의 제도로써 가능할까? 평화의 제도는 권력과 권위를 통해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고 깨어있는 시민들만이 평화의 제도일 수밖에 없다. 노이에 바케를 만들고도 독일은 미국과 함께 전쟁동반자관계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1) 노이에 바케는 최근에 타협을 이룬 독일의 전몰기념공간이다. 그러나 시설은 죽은 군인을 영예롭게 하는 의도를 추구하지 않고 널리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끌어안은 어머니> 상만이 전시되어 있다.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 모두를 애도하고 있다. 시설의 입구에 쓰여진 애도문구에서 여전히 동서독간의 이데올로기적 상흔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낀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5-05-20> 인권연대

기사원문: 야스쿠니와 죄의 정치 (이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