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 2015-06-03 15:29:33 |
법학계와 역사학계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방영했다는 이유로 시민방송(RTV)에 내려진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징계결정과 이를 문제없다고 판단한 행정소송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비판하는 의견서를 지난 5월 27일 항소심 재판부에 연명으로 제출했다. 선고는 7월 15일경으로 예정되어 있으며, 이 결과는 2년 넘게 무리하게 지속되고 있는 공안검찰의 ‘백년전쟁’에 대한 조사와 기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백년전쟁> 징계조치에 대한 법학계 의견서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우리 법학자 일동은 RTV의 <백년전쟁> 방영과 관련하여 내려진 방통위의 징계조치의 효력을 판정하는 재판부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출하고자 합니다.
민주화 이후에 표현의 자유는 한국사회에서 널리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보적 집단의 표현이든 보수적 집단의 표현이든 동일하게 보호될 것이라는 가정은 최근에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차별이 존재하고 기득권질서를 비판하거나 기존의 확립된 견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의 표현은 크게 제한당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종편방송들의 편향적인 보도와 선동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무제한적인 자유를 인정하면서 그러한 기득권질서를 비판하는 보도와 표현에 대해서는 온갖 형태로 제약과 재제를 가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가의 보도처럼 공정성과 명예훼손이라는 잣대를 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백년전쟁> 방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징계조치 결정과 그 결정의 부당성을 외면한 1심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기득권질서에 대한 비판인 경우에 특별히 주목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이 교과서적이고 초보적인 주장은 인류가 도달한 정치적 지혜의 근본임을 이 사건에서 다시 깨닫습니다. <백년전쟁>은 한국현대사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로서 매우 잘 구성된 작품입니다. 백년전쟁은 다큐멘터리로서 궤도를 이탈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튼실한 작품입니다. 제작자는 또한 고유한 제작방향과 평가방침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고 방송국은 그러한 작품을 온당하게 평가하여 방영할 수 있습니다. 단 그 작품이 허위사실에 기초하여 날조된 것이거나 오로지 주관적인 중상모략인 경우에는 학술적 악평뿐만 아니라 법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와 제1심법원은 사실에 기초해 구성된 작품을 막연히 편향적이라거나 불공정하다거나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어쩌면 1심재판부는 <백년전쟁>이 묘사하지 않거나 강조하지 않는 부분과 관련하여 선입견을 가지고 그러한 판단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심각한 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공정성이란 어디까지나 다큐멘터리가 지적하는 사실과 결론의 상관성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백년전쟁>이 다루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백년전쟁의 추론이나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 두 분의 이미지가 실추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이 작품의 방영이 징계를 받아야할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총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항상 논란이 되는 문제입니다. 전직 대통령, 최고의 정치인, 헌정적인 이유로 권좌에서 물러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온당하고 최종적인 평가는 조만간 확립될 것 같지도 않으며, 더구나 집권여당이나 교육당국이 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닙니다. 보수세력이 정권을 되찾은 이후에 정부는 과거에도 수용하지 않았던 일방적인 뉴라이트 역사관을 강요하고, 관변학자들을 동원하여 교과서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검열제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편적인 규범과 의식을 강화시키고 고양시키는 취지에서도 개입은 최소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정부당국은 마치 자신의 보수적 역사관에 맞지 않은 견해를 제거하려는 18세기 프로이센 국가감독교회와 같습니다. 감독교회의 태도가 방송과 표현의 자유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정부당국은 현재의 집권세력이 숭앙하려는 인물에 대한 일정한 유형의 역사적 사실을 소화하기를 거부하고 이를 보도한 매체에 대해 편향, 불공정, 명예훼손을 이유로 재갈을 물리려고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보기 드문 언론정책입니다. 오히려 전직 대통령의 치욕스러운 행동들을 백일하에 드러냄으로써 진정으로 가치 있는 정치인상과 정치적 세계의 객관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오로지 정치적 피아의 구분에 입각해서 정부당국이 지극히 보수적인 의견과 작품에게는 무제한으로 자유를 허용하면서 기득권세력을 비판하는 방송과 표현을 제한하고 금지하려는 방침은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에 반하는 것입니다. 사법부는 정부의 저열하고 편향적인 언론정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좀더 실질적인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단순히 개인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평가받는 것을 어떠한 면에서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이 훌륭한 성과를 이룬 것도 사실이지만 수 차례 헌정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도 사실입니다. 전체적인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이러한 인물들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이유로 하여 비판자들에게 지배적인 입장을 억지로 수용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정치인으로서, 지도자로서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어두운 역사도 또한 정확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백년전쟁>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 공개된 자료를 기초로 작은 비용으로 두 분의 어두운 과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더구나 <백년전쟁>은 두 인물들의 공적인 의미가 거의 없는 사생활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독립운동의 대부나 건국의 아버지로서의 초상이 온당한지를,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경제개발의 완성자라는 평가가 합당한지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검토하였습니다. <백년전쟁>이 종합적 교과서를 편집하는 사명을 수행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방통위나 1심법원이 말한 불공정성이나 편향성은 적절한 잣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편향과 우상화로 치닫고 있는 두 인물에 대한 정부당국의 평가에 균형을 잡아준다는 의미에서 훌륭한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편향과 우상화를 지적하고 정확한 인식을 제공하려는 비판적인 다큐멘터리에 검열당국이 원하는 수준의 반대의견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감독의 자율권과 방송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허위사실에 입각한 날조방송이라면 재제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그라쿠스의 전기>도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입각했지만 당시의 관점에서나 현재의 관점에서나 평가의 대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백년전쟁>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합리적이고 예리한 비판이라고 평가합니다. 최근의 상황은 방송매체뿐만 아니라 방통위까지 모두 장악한 보수세력이 진실에 대하여 싸우는 수단이 제재뿐이라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법원이 현재의 집권세력이 원치 않는 견해를 전파하는 매체와 다큐멘터리라고 하여 금지하고 억압하는 작업에 항상 참여한다면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다시 전복되는 악순환을 겪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총합적 평가는 하나의 프로그램이나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원이 임의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연구자, 제작자)가 기본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 가감 없이 자유롭게 평가하고 그러한 평가들을 다양하게 축적하였을 때 사후적으로 종합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두 인물의 재임시절의 국가발전에도 불구하고 자행된 온갖 인권침해와 헌법파괴는 현대사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므로 평가가 끝나지도 않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 세대가 사라지더라도 두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역사화 되거나 정전화 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정부당국이 <백년전쟁>이 집권정부와 기득권층에게 불편한 진실―허위사실이 아니라―을 유포한다고 하여 금지한다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법은 정부당국에 ‘허위의 사실’을 제한할 수 있을 뿐 ‘불편한’ 사실을 제한할 권한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범죄로 만드는 추세가 두드러집니다. 법원이 <백년전쟁> 제작자와 이를 방송한 방송국에 죄와 책임을 지우는 행위는 전직대통령의 악사추행을 권력을 통해 국가기밀로 지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법학자들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가 민주사회에서 더욱 튼튼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5.5.20.
강경선(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성태(한양대학교), 고영남(인제대학교), 김기진(경상대학교), 김욱(서남대학교), 김광수(서강대학교) 김도균(서울대학교), 김도현(동국대학교), 김명연(상지대학교), 김민배(인하대학교), 김선광(원광대학교), 김엘림(한국방송통신대학교) 김은진(원광대학교), 김인재(인하대학교), 김제완(고려대학교), 김종서(배재대학교), 김홍영(성균관대학교), 김희성(강원대학교), 문병효(강원대학교), 문준영(부산대학교), 박병도(건국대학교), 박병섭(상지대학교), 박상식(경상대학교), 박승룡(한국방송통신대학교), 박태현(강원대학교), 박홍규(영남대학교), 백좌흠(경상대학교), 서경석(인하대학교), 석인선(이화여자대학교), 선정원(명지대학교), 송강직(동아대학교), 송기춘(전북대학교), 송문호(전북대학교), 송석윤(서울대학교), 신옥주(전북대학교), 안 진(전남대학교), 엄순영(경상대학교), 오동석(아주대학교),오병두(홍익대학교), 윤영철(한남대학교),이경주(인하대학교), 이계수(건국대학교), 이동승(상지대학교), 이상명(순천향대학교), 이상영(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이원희(아주대학교). 이은희(충북대학교), 이재승(건국대학교), 이준형(한양대학교), 이호중(서강대학교), 임미원(한양대학교), 임재홍(한국방송통신대학교), 장덕조(서강대학교), 전윤구(경기대학교), 전종익(서울대학교), 정경수(숙명여자대학교), 정병덕(한림대학교), 정영선(전북대학교), 정태욱(인하대학교), 조국(서울대학교), 조경배(순천향대학교), 조승현(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조용만(건국대학교), 조우영(경상대학교), 조임영(영남대학교), 차성민(한남대학교), 최관호(순천대학교), 최정학(한국방송통신대학교), 최철영(대구대학교), 최홍엽(조선대학교), 한상희(건국대학교)
<백년전쟁> 방영 시민방송(RTV) 징계조치에 대한 역사학계 의견서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우리 역사학자 일동은 <백년전쟁> 방영과 관련하여 시민방송(RTV)에 내려진 방송통신위원회의 징계조치의 효력을 다투는 재판부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출하고자 합니다.
몇 해 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동영상 <백년전쟁>을 발표했습니다. 비영리 시민단체가 제작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상이지만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이 소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이 영상에 대한 반박 글을 대대적으로 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두고 아직까지 송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후손이 영상 제작자를 고소하고, 영상을 방영한 시민방송(RTV)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징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로서 우리는 이러한 세태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밝히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역사 연구는 전문 연구자들만의 영역으로 국한된 면이 많습니다. 학자들 사이의 논문 발표와 학술 논쟁은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전문적 연구 내용이 널리 알려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학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하고, 상대적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연구 성과를 알리는 노력이 부족한 면이 있었던 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사 연구자의 일원으로서 우리도 예외가 아니며, 이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런 점에서 <백년전쟁>에서 시도한 방식은 잘 알려지지 않은, 또는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일반 시민들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좋은 접근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상은 크게 2편으로 나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두 얼굴의 이승만’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프레이저 보고서’가 그것입니다. 이하 글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직함은 생략하겠습니다.
‘두 얼굴의 이승만’편은 일제강점기 이승만의 행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지하듯 이승만은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냈고,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초대 대통령을 지내다 독재로 말미암아 4·19혁명에 의해 물러난 인물입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 선 중요한 인물이기에 그동안 이승만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이승만이 일제강점기 미국을 거점으로 외교노선 중심의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던 시기, 이승만이 국제연맹에 의한 위임통치론을 제시하여 독립운동 진영의 갈등과 분열을 야기했던 것도 상식적인 일입니다. 아울러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이 보여준 독선과 재정운용의 불투명, 파벌 싸움 등은 임시정부의 중요한 분열 요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 또한 학계의 정설입니다. 더욱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대통령을 지냈지만, 독재적 국정 운영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의 힘에 밀려난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사회의 가치에 반대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근년 들어 이승만에 대한 미화·찬양의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사회 일각에서 이른바 ‘건국절’을 준비하고, 이승만을 ‘건국대통령’,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서울 남산에는 4·19혁명으로 쓰러졌던 동상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모두 학계의 정설이나 일반의 상식과도 맞지 않는 주장들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런 움직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백년전쟁>을 제작했던 것입니다. ‘두 얼굴의 이승만’편의 기획 의도는 이승만의 학위 문제, 하와이 행적, 독립운동 인식 등 일반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소재로 삼아 이승만을 미화·찬양하려는 움직임을 경고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프레이저보고서’는 5·16군사정변 이후부터 박정희 집권 초기, 대체로 1960년대 전반기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박정희 정권 시기 전체가 아니라,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등 초기 경제정책에 국한된 내용입니다. 말하자면 박정희정권의 경제성장을 다루기에 앞서 내놓은 짧은 프롤로그형 다큐멘터리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박정희정권 시기의 다양한 경제정책과 경제성장을 다루는 후속 다큐멘터리가 나와야 이 시기 경제성장에 대한 백년전쟁의 총평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군 출신으로서 경제분야에는 사실상 문외한일 수밖에 없는 박정희 정권의 초기 경제정책은 혼선과 미숙함이 많았습니다. 당시 박정희 자신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초기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 계획은 이미 제2공화국에서 준비한 경제개발계획안과 미국 케네디 정부의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 정책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프레이저보고서’는 이런 상식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학계의 통설을 프레이저보고서라는 잘 알려지지 않는 소재를 이용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의 메시지는 한국 경제의 이른바 고도성장이 오로지 박정희라는 한 개인의 지도력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초기에는 제2공화국의 경제개발안이나 미국의 대한정책으로, 또 이후에는 수많은 요인들과 한국인들의 노력이 이루어 나간 성과일 것이고, 그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성장의 그래프만큼 길었던 고통의 그림자(이른바 산업화의 후유증)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수준입니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논문 등을 통해 통상 이야기되는 이러한 내용이 왜 법정다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게다가 다큐멘터리의 형식임에도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백년전쟁>을 둘러싼 일련의 소동을 보면서 특정한 정치적 흐름이나 특정 인물에 대한 편견이 개입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역사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정설을 심도 있게 구성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숨겨진 이면사의 발굴을 통해, 또는 주류에 대한 비주류의 견해를, 심하게는 정설에 대한 부정까지 다양한 영역을 다룰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면적 인식을 제고하고 역사 의식의 대중적 심화를 꾀하는 것입니다.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 결정이나 제1심의 판결은 그러한 한국 역사다큐멘터리의 제작과 이를 방영하는 시스템에 대해 원천적으로 징벌을 가한 우리 시대 또 하나의 역사적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결을 고대하며 역사학자로서 이 의견서를 제출하는 바입니다.
2015.5.22.
강만길(고려대학교), 고동환(한국과학기술원), 구만옥(경희대학교), 권내현(고려대학교), 김경일(한국학중앙연구원), 김기승(순천향대학교), 김동명(국민대학교), 김민철(경희대학교), 김보영(한양대학교). 김성보(연세대학교), 김승태(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영미(국민대학교), 김윤정(역사학연구소), 김윤희(고려대학교), 김익한(명지대학교), 김재웅(고려대학교), 김조년(한남대학교), 김지형(서원대학교), 김한종(한국교원대학교), 남지대(서원대학교), 노영기(조선대학교), 도면회(대전대학교) 문수균(중앙문화재연구원), 문용식(전주대학교), 박기수(성균관대학교), 박윤재(경희대학교), 박은숙(고려대학교), 박진태(대진대학교), 박찬승(한양대학교), 박현서(한양대학교), 변은진(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서명일(고려대학교), 손동유(명지대학교), 송양섭(고려대학교), 신용옥(내일을여는역사재단), 심재우(한국학중앙연구원), 안건호(덕성여자대학교), 안병우(한신대학교), 안태정(노동자역사 한내), 오수창(서울대학교), 오인택(부산교육대학교), 오종록(성신여자대학교), 오항녕(전주대학교), 윤경로(한성대학교), 윤대원(서울대학교), 윤종일(서일대학), 은정태(역사문제연구소), 이경구(한림대학교), 이규태(동국대학교), 이근호(명지대학교), 이기훈(목포대학교), 이달호(수원화성연구소), 이만열(숙명여자대학교), 이상의(인천대학교), 이용기(한국교원대학교), 이욱(순천대학교), 이이화(역사문제연구소), 이정빈(경희대학교), 이종범(조선대학교), 이준식(역사문제연구소), 이지원(대림대학), 이진한(고려대학교), 이태훈(연세대학교), 임경석(성균관대학교), 장동표(부산대학교), 장병인(충남대학교), 장석흥(국민대학교), 장원석(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전명혁(동국대학교), 전영욱(역사문제연구소), 정연태(가톨릭대학교), 정요근(덕성여자대학교), 정진아(건국대학교), 정진영(안동대), 정태헌(고려대학교), 정호섭(한성대학교), 조명근(역사문제연구소), 조인성(경희대학교), 지수걸(공주대학교), 차철욱(부산대학교), 최보영(동국대학교), 최윤오(연세대학교), 하원호(동국대학교), 하일식(연세대학교), 한상권(덕성여자대학교), 한철호(동국대학교), 허은(고려대학교), 홍석률(성신여자대학교), 홍영기(순천대학교), 홍정완(역사문제연구소), 황병성(광주보건대학)
<지지서명 요청> 위 의견서의 취지에 동의하시는 법학·역사학계의 교수와 연구자 여러분들께서는 아래 연락처로 이름과 소속을 알려주시면 '백년전쟁' 관련 법정 투쟁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연락처: 민족문제연구소 02)969-022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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