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희망센터가 함께 하는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은 817일 민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용허가제 위헌결정을 촉구했습니다. 이날은 고용허가제가 시행된지 17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이 지난해 3월 헌법소원을 청구한지 1년 반 가까이 지났지만, 헌법재판소나 정부는 현재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입니다. 고용허가제는 비닐하우스 숙소 등으로 대표되는 열악한 주거문제, 임금 체불, 사업주의 신체·언어 폭력, 강제적인 추가근무 등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채용부터 근로계약 연장 여부가 사용자에게 달려있다 보니, 사업장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우는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비판도 잇따릅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한국정부는 현대판 노예제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짧게는 3년 길제는 98개월간 한국에서 체류하며 일하는 동한 한 사용자를 떠나지 못하도록 묶어놓고 있다. 사업장변경 제한은 이주노동자를 공장 기계로 취급하는 비인간적 처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아래는 이날 기자회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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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권리의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는 위헌이다!

위헌판결 촉구 공동 기자회견문

 

2004817일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고용허가제가 처음 시행된 날이다. 가장 열악하고 힘든 일을 시키기 위해 불러들인 이주민들을 처음으로 법적 근로자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라는 명칭을 얻었다 한들 노동자로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17년 전과 다르지 않다. 사용자에게 부족한 인력공급하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다는 점이 그 어떠한 권리보다 한국에서의 삶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영하 20도의 날씨에 난방되지 않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이주 노동자, 38개월 일하는 동안 34백만 원 넘게 체불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결국 빈손으로 한국을 떠난 이주 노동자. 이는 한국에서, 그리고 불과 작년에 있었던 일들이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도 상황은 처참하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임금체불액이 2020년 한해 15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가정 등 일상생활을 모두 유예하고 오로지 일만 하라고 한국에 불려왔건만, 임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것이다.

 

농업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아 통상적으로 월 이틀의 휴일만 주고 300시간 가까이 일을 시키고 있지만, 실제 일한 시간대로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작성된 근로계약서대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에 한 술 더 떠서, 2014년부터 퇴직보험금의 퇴직 직후 지급이 아닌 출국 후 지급, 2017년부터 임금에서 터무니없는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도록 한 숙식비용 징수 지침시행 등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우습게 보는 것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임금만이 아니다. 생명과 안전 역시 상시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 중 이주 노동자의 비율은 10.7%이다. 국내 노동자 중 이주노동자 비율이 약 3%인데 산재 사망사고의 비율이 그 3배가 넘는 것이다. 작년만이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최근 5년간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가 매년 100명을 상회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들이 원래도 위험하고 열악하지만,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후 지난 17년간 이주노동자를 공급하면 그만이라는 듯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짧게는 3, 길게는 98개월 간 한국에서 체류하며 일하는 동안 한 사용자를 떠나지 못하도록 묶어놓은 사업장변경 제한은 이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공장의 기계를 돌아가게 하는 노동력으로 취급하는 고용허가제의 비인간성을 대변한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것은 종전 고용관계 종료에 대해 사용자의 동의를 얻거나, 고용관계 종료가 고용노동부장관이 고시하는 근로자의 책임이 없는 사유에 해당함을 입증할 때뿐이다. 원하는 것은 사직일 뿐임에도 자신에게 책임이 없음”, 즉 사용자에게 책임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종전 사용자를 위해 계속 일하거나 출국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이러한 사업장 변경 제한은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노동자를 강제노동에서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체계의 근간과 충돌한다. 한국이 올해 비준하여 20224월 발효를 앞둔 ILO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은 강제노동을 어떤 제재의 위협으로 강요된 것이며 스스로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역무로 정의한다. 근로기준법상 위약 예정의 금지, 근로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전대채권과 임금의 상계 금지, 강제저축 금지 등은 모두 노동자를 강제노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이렇듯 노동법은 국가가 사용자에 대한 관계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는 법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 하의 사업장변경제한은 국가가 오히려 노동자에게 사직할 경우 재취업을 허가하지 않고 추방시키겠다고 위협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 결과 이주 노동자의 사용자에 대한 종속성은 극대화되고, 협상력은 더욱 약화해 열악하고 불리하며, 그리고 심지어 불법적인 노동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작년 318, 이주노동자 다섯 명이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변경제한이 헌법에 따른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구인들은 일하는 사업장에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근로계약서와 다른 기숙사비 공제동의서 서명 강요와 기숙사비 명목 임금 삭감, 무면허 건설기계 운전 강요, 근로계약 불이행 위약금 예치 강요, 보호장구 미지급, 사업장에서의 폭발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등의 부당하고 불법적인 처우와 근로환경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을 떠나지 못했던 청구인들의 처지는 고용허가제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7년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노동력으로만 취급하여 무권리 상태로 사용자에게 공급하는 제도로 전락하였다.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변경 제한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을 근간으로 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이유다. 사업장변경 제한은 위헌이고, 폐지되어야 한다.

 

 

2021817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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