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 내팽개친 탄소중립법 통과를 규탄한다!
- 8.19.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 -
지난 8월 19일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기본법)이 통과되었다. 여당인 민주당은 법안소위 정회 중 갑작스레 안건조정위를 열었고, 야당이 항의, 퇴장한 가운데 곧바로 조정안을 전체회의에 제출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시급한 기후위기 대응의 필요성에 대한 호소가 이렇듯 졸속과 야합으로 둔갑해버렸다. 이미 전세계적인 기상 이변의 빈발 속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확인되고 있는 마당에, 기후위기 대응을 외면하는 법안을 날치기 처리한 무책임하고 비겁한 집권 여당, 민주당을 강력히 규탄한다.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법제도적 초석을 놓는다는 ‘기본법’의 제정이 구시대적 성장지상주의의 굴레를 벗어던지기는커녕 그린워싱과 책임 떠넘기기까지 정당화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
2018년 바로 한국의 인천 송도에서 채택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특별보고서에서 제시한 감축치에도 크게 미달하는 감축목표를 제시하고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하여 범위를 법안에 넣었다고 자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탄소에 기반한 개발 모델을 뿌리치기는커녕 4대강 사업의 그 녹색성장 추진을 명시해놓고서, 탄소 배출 제로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난 주에 발표된 가장 최근의 IPCC 보고서가 돌이킬 수 없는 온난화 지점으로서의 1.5°C 상승이 다시금 10년 가량 앞당겨졌다고 밝힌 마당에 국제적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2030년에도 5억톤에 달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겠다는 것이 탄소중립의 약속을 담은 ‘기본법’일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이 법으로 인해 그나마의 탄소중립위원회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탄소중립’을 이름에 걸고 ‘탄소중심’ 경제를 여전히 버릴 수 없다는 시나리오를 낸 그 위원회로서야 제자리를 찾아주는 고마운 법이겠지만, 녹색으로 덧칠한 ‘성장’에 기후정의를 내던져버린 그 법과 위원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본법’이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책임지는 기구이어야 한다는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다. 이미 탄소중립위원회의 한계와 문제점은 누차 지적된 바 있고, ‘탄소중심’ 시나리오를 낸 것에서 확인된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잡을 기회조차 이렇게 버려지기에는 현재의 기후위기의 진행 양상이 너무도 심각하고, ‘한 걸음 내디뎠다’ 자평하기에는 우리의 삶과 미래가 경각이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그린워싱 기후대책의 명분쌓기용 들러리기구로서의 탄소중립위 참여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탄소중립위의 시나리오 초안이나 이번 ‘기본법’이 보여주는 바,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탄소중심 경제를 어떻게든 부여잡아보려는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았음에서 오는 자족감보다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결국 노동자가 앞장서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욱 무겁다. 기후위기 대응은 그저 수치를 맞추기 위해 생색내고, 불가피한 현실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다. 먼 곳, 먼 훗날이 아닌 ‘지금 당장’, 이곳 우리의 삶과 미래를 지켜내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 지역과 일터, 경제 체제와 사회 구조, 모두를 바꿔내는데 바로 지금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한국사회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노동자 민중의 주도적 참여 속에 기후위기를 낳은 현 사회경제체제를 바꿔내기 위한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정의로운 산업 전환을 위한 노정 및 산별 교섭과 협의가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노동법제와 사회복지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의 비용과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녹색성장기본법의 철회와 제대로 된 법 제정을 위한 근본적인 재출발이 필요하다. 나날이 심각성을 더해가는 기후위기의 현실 앞에서, 국제사회, 아니 인류의 미래를 위한 요구에 눈 감은 채 언제까지나 눈치만 보고 제 잇속만 챙기는 모습이어선 곤란하다. 법 통과 전, 앞으로 남은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에서는 제발 집권 여당이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은 타조의 모습은 아니길 바란다.
2021년 8월 2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