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가 발족합니다 ]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자대학교페미니스트네트워크 W.F.N.이 모여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백범넷)'을 발족합니다. 아래 발족 선언문을 보시고 동감하시는 단체들의 많은 연대 바랍니다.
 
 
발족 선언문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했다. 너무나 유치하고 말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들의 그 투정을 사회가 진지하게 받아주면서 모순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누구나 수만 번은 할 손 모양이 남성 혐오라며 온갖 곳에 시비를 걸자 대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등이 줄줄이 사과하고 멀쩡한 창작물을 수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계자를 징계까지 했다. 여성 혐오(Misogyny)의 실태를 섬세하게 살피고 변화를 약속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반페미니즘’을 내세우며 이를 이용해 표몰이를 했다. 대선 주자들은 단지 주목받기 위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폐지의 이유 역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국가의 새로운 역할 고민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이거나 혐오 논리로 점철되어있다.
 
명백한 백래시(backlash)이다. 마치 온 사회가 더이상 참지 않고 싸우기를 선택한 여성들의 입을 막고 납작하게 누르려 혈안이 되어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백래시가 오늘만의 일인가. 여성들이 가부장제를 ‘불편하게’ 만들 때마다 의도를 꼬집고 비트는 행위, 거짓뿐인 반박은 언제나 따라붙었다. 근래의 백래시에 남다른 점이 있다면 더욱 공공연하고 뻔뻔해졌다는 점이다. 혐오자들은 이제 여성들을 비하하고 욕하는 행위를 대놓고 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통해 ‘못된 페미’들은 그런 대접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언론은 아무런 고찰 없이 조회 수를 부르는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성별 간의 갈등’이라고만 보도한다.
 
애초에 왜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구도처럼 그려지는가. 그 이유는 남성들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여성 대상의 높은 범죄율에, 성별 간 임금 격차에, 어떤 여성도 피해갈 수 없는 성적 대상화에, 거대한 성매수 산업에, 그리고 일상에 만연한 성희롱과 여성 혐오에 여성들은 분노하고 반박하지만, 남성들은 침묵하고 방관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예민하고 까칠하고 화내는’ 이유는 아무리 사회가 발전해도, 4차 산업혁명이 와도 성차별과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여성 혐오자들만 모르고 있다. 무지할 수 있는 권력을 구조적 차별로 보장받으며 쉽게 ‘그런건 없다’고 떠든다. 그리고 이제 이 정치 권력의 시스템은 그 아둔함을 이용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법을 고안해냈다. 이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조리의 시대를 무기력한 냉담으로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손을 잡고 한목소리로 반격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가정폭력을 사회 문제로 만들었고, 성폭력처벌법을 제정시키고 최근의 n번방 방지법까지 꾸준히 발전시켜왔으며, 호주제와 낙태죄를 폐지시켰다. 수많은 여성 혐오와 여성폭력 그리고 그 생존자들의 말하기가 또다시 ‘해프닝’으로 묻히지 않도록 다 함께 거리로 나와 ‘생각하고 설치고 떠들었다’. 유례없는 백래시, 여성주의에 대한 혐오가 쉽게 무너뜨리기에는,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이루어왔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우리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직진할 것이다.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는 이가 당신 혼자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다시 한번 우리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모순의 시대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용기와 저항으로 통과하기 위해 발을 내딛고자 한다. 그 단순한 사실이 우리가 모인 이유이다. 지친 서로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가다 보면 수많은 파도가 쉼 없이 몰아칠지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는 아프기만 했던 순간들을 함께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버티고 싸우다 흠뻑 젖은 모습이 숨겨야 할 불리함이 아니라 당당한 저항의 이력이 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숨죽이지 않고 분란을 일으키며 성평등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2021. 8. 13.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