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주의는 최근 몇 년 동안 잊혀졌던 주제이었습니다. 다자주의보다는 각국의 이해에 기초하여 형성된 다극화된 오늘날의 글로벌 환경속에, 국가 간의 경쟁에는 협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주요 국가간에 국제법인세의 개혁에 대하여 이루어진 글로벌 합의는 다자주의가 죽지 않았다는 매우 반가운 증거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못합니다. COVID-19 대유행기간 동안에도 세계화는 계속 진행되었지만, 예전에 비하여 여전히 불평등이 심화되고 시민들간에 고립감이 증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의존적 상황은 어느 때보다 갈등적입니다.  백신개발과 데이터 그리고 기술표준을 포함한 소프트파워는 무기화되었고, 모든 것이 정치적 경쟁의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세상도 점점 자유를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정치 및 경제 시스템을 시민들에게 가장 잘 제공할 수 있는 민주주의 자체가 부정적인 논쟁의 치열한 공방으로 인하여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개방경제, 성과의 공유(positive-sum outcomes), 사회정의와 연대에 기반하여 예측이 가능한 세계를 기대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의 퇴치에서 기후변화의 대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인류 모두가 겪고 있는 도전과제는 오로지 글로벌 협력을 통해서만 처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EU는 인류 모두에게 겉보기에 무미건조하지만 기술적이며 관료적인 개념이 지닌 실제적 이점을 보여주기 위해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를 되살리는데 계속해서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한편, ‘다자간 참여’를 거부하는 대안인 ‘나홀로 해결’ 방식은 한마디로 백신에 대한 접근성의 감소, 기후대응에 대한 불충분한 조치, 악화되는 안보위기, 부적절한 규제가 남발되는 세계화, 그리고 글로벌 수준의 불평등 증가 등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강한 국가라도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 G20 의장(주최)국인 이탈리아는 현안적 과제에 더하여 다자주의를 의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EU가 다자주의에 대한 요건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다자주의를 실제의 행동으로 실천하는 조건에서, 다자주의가 모두를 위한 제도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때마침 논의를 시작한 글로벌 조세협정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7월초 G20 재무장관들이 승인하고 132개국이 지지한 이번 협정의 내용은 다(초)국적기업들에 대해 최소 15%의 글로벌 최소세율을 설정하고 이들 기업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해당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정한 세계화를 향한 역사적인 조치이자 효과적인 다자주의를 위한 획기적인 성취로 평가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개별정부 단위에서 개인의 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OECD에 따르면 국가 간의 세금정보 자동교환으로 2009년에서 2019년 사이에 G20 국가의 추가세수로 950억 유로(1,120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고, 조세피난처에 숨은 예금은 34%가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규모가 매우 큰 다국적기업들의 조세회피 행위를 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OECD는 다국적기업들의 조세회피로 인해 매년 세계적으로 1000억~2400억 달러의 세수손실이 발생하며 이는 전체 법인세 수입의 4~10%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합니다. 더욱이 현재의 국제적 법인세시스템은 100년 전에 설계된 것으로 오늘날처럼 세계화되고 디지털화된 경제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습니다.

EU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국제적인 협력을 통한 대응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습니다만, 최근의 돌파를 가능하게 한 것은 지난 1월 초에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건설적인 참여였습니다. 이는 과거 매우 부정적이었던 미국이 국제적 다자주의의 비전을 지지하기 위해 복귀했다는 놀랍고 반가운 신호였습니다.

현재로 새로운 법인세도입을 지지하는 132개 주권국가들의 경제규모는 전세계 GDP의 90%를 차지합니다. 이번 협정자체가 다국적기업들의 조세회피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진전이며, 극소수의 부유한 승자와 수십억 명의 패자를 배출하여 왔던 법인세율의 바닥을 향한(rush to bottom) 국제적인 경쟁에 끝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제 인류사회는 규칙의 힘에 대한 믿음을 되찾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국가가 전염병과 싸우는 비용을 공히 부담하고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함께 동원해야 하는 시기에, 이번 협정은 각국정부의 수입을 높이고 재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불평등이 증가하는 시기에, 새로이 공정성의 확대기반을 제공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최근의 조세협정은 다자주의적 행동이 보다 공평한 형태의 세계화를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향후 인류사회는 백신기술에 대한 접근 및 기후위기의 대응에서 데이터 보안 및 기술표준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역에서도 유사하고 효과적인 국제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대유행의 시기에 경험하고 있는 전염병의 중요한 교훈을 무시한다면 미래세대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인류 모두를 위한 진정한 다자주의 의제를 실현하려면 현명한 전략과 대담한 전술이 필요합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7-26.

Josep Borrell

유럽연합 집행위 부위위원장으로 외교안보분야의 최고위 책임자

Paolo Gentiloni

이탈리아 전직 외교장관 출신으로 유럽연합 집행위 경제분야 담당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