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l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모처럼 상식적인 이야기가 중국에서 전해졌다. 지난 7월 16일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의제 중 하나인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석탄산업(이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등재 후속 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초안대로 채택했다. 초안은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산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이 올해 6월 7일부터 9일까지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 방문과 온라인 회의를 통해 정리한 보고서와 결론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조사단의 임무는 ①각 시설의 전체역사 해석전략 ②한국인 등 강제노동 이해 조치 ③희생자 추모 조치 ④국제 모범 사례 ⑤당사자간 대화 등 다섯 가지 사항에 대해 일본정부가 2015년 등재 당시, 그리고 이후에 한 약속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를 조사해서 보고하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조사단은 위원회 결정의 여러 측면이 준수되었고 일부는 모범적인 방식으로 준수되었고 당사국의 여러 약속도 충족되었지만,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등재 당시 당사국이 한 약속이나 등재 당시와 이후에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아직 완전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조사단 보고서, 22쪽).”
디지털 해석 전략이라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증강현실(AR) 지도와 몰입형 다중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여 세계적인 모범 사례를 구축했다고 평가했으나 한국 정부와 한일 시민단체와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문제로 제기한 ‘전체 역사’에 관해서는 “여전히 불충분하며”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강제노동에 대한 기술이 없고, 희생자 추모를 기리는 시설도 없음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한일 양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 현장 방문과 관련 자료 조사 등을 근거로 보고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보고서 내용은 매우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사단의 보고서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문이 지적하고 있는 핵심이다. 단순하지만 무게 있는 이 지적에 일본은 야단법석이다. 사실과 다르다니 한국 정부가 로비한 탓이라니 하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국제적으로 망신살을 뻗친 것이다. 이 망신살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등재에서부터 산업유산정보센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가토 고코라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공적 자산이자 공공기념 시설이 이처럼 한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부터가 공공성을 상실한 것이며 일본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토 고코와 그가 전무이사로 있는 산업유산국민회의가 ‘역사수정주의’에 기초하여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모든 전쟁이 다 그렇다는 식으로 범죄성을 희석시키려 하듯이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부정한다. 또한 난징대학살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의 역사를 교과서와 기념시설에서 삭제하려 한다. 그래서 어느 일본 평론가는 일본 역사수정주의를 “썩은 내 나는 것에 비단보를 덮어씌운 신판 황국사관”이라고 비판했던가. 그런데 최근 수년 동안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부인’과 ‘부정’을 넘어 오히려 한국 정부와 강제동원 피해자·유족들이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하고 있는 거짓말쟁이라고 국제무대에서 공격하고 있다. 산업유산과 관련해서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는 산업유산국민회의가 그 중심에 서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3구역(참조 전시실)은 어린 시절 하시마 섬에 살았던 주민들의 구술 영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민족차별 없이 사이좋게 잘 지냈으며 강제노동도 없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가토 고코는 “한국이 왜곡된 역사를 선전하는 걸 바로잡기 위해서” 3구역을 만들었다고 조사단에 말했다. 탄광 노동을 하지 않았던 어린애들의 이야기로 수많은 강제동원·강제노동 피해자들의 생존 증언을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없다. 더구나 그 피해자들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있으며, 인근 다카시마탄광에서는 연합군 포로들도 있었다. 주민들의 말대로라면 피해를 증언했던 그들 모두가 거짓말쟁이가 돼야 한다. 조사단의 질문은 왜 이런 피해자들의 증언은 전시돼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전시하는 흉내라도 냈더라면 보고서가 아마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좀 더 근본적인 비판을 하면,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비롯해 산업유산을 홍보하는 자료에는 일본인 노동자들의 삶조차 반영돼 있지 않다. 산업유산의 명암이 제대로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산업유산에는 단지 아시아 최초의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기계와 ‘성공’이라는 빛바랜 신화만 등장한다. 이 유산에서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흘린 땀과 노력, 한숨과 눈물, 저항과 좌절, 그리고 희망과 절망 등을 읽어낼 수는 없다. 아니 그 흔적이라도 다음 세대에게 알려주려는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다. 남은 것은 박제화된 전시장과 상품으로 바뀐 체험관, 그리고 녹슨 기계들뿐이다.
일본 정부가 다음 세계 산업유산으로 사도광산을 등재하려고 한다. 이 사도광산의 정보센터에는 일본인 노동자가 읊은 이라는 글이 전시될 수 있을까.
“사도금광은 나라의 보물. 언제나 황금꽃이 핀다. 조그마한 연립주택에서 광산으로 창백한 노동자의 행진곡소리-아직 밝지 않은 아이카와 바다로 퍼진다. 여기에 천 명의 삶은 굳어지고 눈뜨고 볼 수 없는 지하의 노동. 노동자는 바뀌고 또 바꿔서 오랜 세월 여기 무덤의 왕국 전각을 쌓아 올리고, 광산의 소리는 날마다 울려 퍼지는데- 그 소리는 우리들의 소리일까? 지하 1천 척 갱도에서 생명줄 칸델라에 죄수처럼 곡괭이를 흔드는 노동자, 오늘도 ‘규폐’로 피폐해진 2번 갱의 노동자, 불사신의 나는 날마다 비틀거리고, ‘비틀거리’면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나, 놈들은 결코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1931년)
세계유산위원회가 권고한 ‘전체 역사’란 바로 이런 것을 포함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산업유산은 ‘희생자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장, 시민 학습의 장, 국제적인 학술 교류의 장’으로서 기능할 것이다. 필자는 한일 정부와 시민사회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역사 갈등의 장이 아니라 함께 ‘동아시아 공동 기억의 집’으로 만들어 가자고 여러 차례 제안했다.
그러나 지금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볼 때, 이런 제안은 사치스럽다. 세계유산위원회가 결정문을 채택하자 가토 고코는 산업유산국민회의 누리집에 올린 ‘유네스코 결의, 유네스코·이코모스 전문가 보고서에 대해’라는 글에서 보고서 내용이 사실에 반하며, 전문가들이 한국인 피해자를 전쟁포로(POW)로 잘못 알고 있다고 황당한 주장을 한다.
도대체 어느 전문가가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를 전쟁포로라 했는가. 산업유산의 ‘전체 역사’에 한국인 외에 연합군 포로도 강제노동했다는 사실을 기록하라고 요구한 걸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오해인가 무지인가. 게다가 그는 ‘희생자’에 대한 견해가 조사단과 다르다고 항변한다. 그는 희생자라는 단어가 가해자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 용어를 쓰기 싫어하는 속내를 내비친다. 그래서 그냥 산업재해로 죽은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희생자 추모’를 대체하려는 편법을 제시한다. 위원회의 결정을 전혀 외면할 순 없으니 이런 저런 형태로 물타기를 시도하려는 모양이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기사원문: ‘군함도’ 국제 약속 안지킨 일본, 고립을 자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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