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문인협회가 단죄비 사유지로 이전…민족문제연구소 반발
“돌려주지 않으면 더 크게 세울 것” vs “시비와 함께 철거한 것”


‘친일 시인’ 김해강 단죄비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광복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른 시인 김해강의 ‘단죄비’가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1일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전주 덕진공원에 세워진 단죄비가 어딘가로 옮겨졌다.

단죄비가 있던 자리에는 비석 대신 무언가로 파헤친 흔적만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죄비는 김해강의 친일 행적을 낱낱이 알리기 위해 지난해 8월 그를 기리는 시비(詩碑) 바로 옆에 세워졌다.

건립 비용은 민족문제연구소 회비에 전주시 지원을 보태 충당했다.

김해강은 ‘전북 도민의 노래’, ‘전주 시민의 노래’를 작사하는 등 오랫동안 지역에서 존경받는 문인으로 평가돼 왔으나, 일본 자살특공대를 칭송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 등의 시를 비롯한 친일 작품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단죄비에는 ‘천황을 위해 죽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죽음이 어디 있느냐고 부르짖던 김해강이여!’, ‘그대의 글은 생명의 외경(畏敬)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죽음을 부추긴 사악한 선동문이었다!’ 등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친일 시인’ 김해강 단죄비 제막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족문제연구소 자체 조사 결과, 단죄비를 옮긴 이는 전주시 문인협회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 문인협회는 덕진공원에서 김해강의 시비를 철거하면서 옆에 있던 단죄비까지 도내 한 사유지로 이전했다고 민족문제연구소는 전했다.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단죄비를 세운 것은 우리인데, 문인협회에서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비석을 가져갔다”면서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문인협회에 전화했더니 처음부터 단죄비를 이전하기 위해 시비를 철거했다고 한다”며 “(단죄비를) 돌려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 두 배로 더 크게 세우겠다”고 덧붙였다.

시 문인협회는 단죄비를 가져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유대준 시 문인협회장은 이날 취재진과 통화에서 “이전부터 시비를 철거해 달라고 했는데 그 작업이 미뤄지니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단죄비를 세웠다”며 “시비를 철거했으니 단죄비도 옮기는 게 이치에 맞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단죄비는 파손하지 않고 사유지에 잘 놔뒀다”며 “시비나 단죄비 모두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두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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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사원문: 하루 아침에 사라진 김해강 ‘친일 단죄비’…’누가 이런 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