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민체육공원 친일파 모윤숙·박시춘 작품 비석 발견
창원 산호공원 수십년째 친일파 이원수 노래비 놓여있어
전문가 “조례 통과로 법적 근거 있어 전수 조사 시급”


이형탁 기자

경남지역 친일 잔재가 최근 잇따라 발견되면서 기존 친일 기념사업을 포함한 청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두번째 친일 잔재 청산 조례안이 도회의를 통과한 만큼 지자체가 시급히 전수조사에 착수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해시민체육공원에서 친일파 모윤숙 시인과 박시춘 작곡가의 작품 비석이 최근 발견됐다. 이들은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낸 4천여 명의 친일파가 담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돼있는 인물들이다.

◇친일파 모윤숙 시인(1909~1990)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함경남도 원산 출신 모윤숙 시인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일제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시를 써냈다. 모 시인은 1941년 에 시 ‘지원병에게’를 발표했다.

“눈은 하늘을 쏘고 그 가슴은 탄환을 물리쳐 / 대동양의 큰 이상 두 팔 안에 꽉 품고 / 달리어 큰 숨 뿜는 정의의 용사 / 그대들은 이 땅의 광명입니다 // 대화혼(大和魂) 억센 앞날 영겁으로 빛내일 / 그대들 이 나라의 앞잡이 길손 / 피와 살 아낌없이 내어바칠 / 반도의 남아 희망의 화관(花冠)입니다”

그녀는 또 가미카제로 출격해 희생한 조선인 소년비행병 출신 하사관인 히로오카 겡야를 찬양하기도 했다. 모 시인은 1943년 12월 에 발표한 시 ‘어린 날개-히로오카(廣岡) 소년항공병에게’를 발표했다.


이형탁 기자

“고운 피 고운 뼈에 / 한번 새겨진 나라의 언약 / 아름다운 이김에 빛나리니 / 적의 숨을 끊을 때까지 / 사막이나 열대나 / 솟아솟아 날아가라. // 사나운 국경에도 / 험준한 산협에도 / 네가 날아 가는 곳엔 / 꽃은 웃으리 잎은 춤추리라.”

모 시인은 그밖에도 ‘신년송-금녀의 노래(1945)’ ‘호산나·소남도(1942)’ ‘해군의 얼굴(1943)’ 등 다수의 친일시와 산문을 남겼다. 대부분 일제의 침략 전쟁에 조선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거나 침략전쟁을 아시아 민족 해방전쟁으로 미화하는 내용이다.

그녀는 이같은 친일 뒤 1945년 8월 해방을 맞이하고 친일파들의 일반적 행보대로 반공주의자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반공 시를 여러 편 써냈고 그녀의 흔적이 김해 이곳에 있다. 시비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그녀가 쓴 것으로 알려진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새겨져 있다.

◇친일파 박시춘 작곡가(1913~1996)

모윤숙 시비 옆에는 대표적 친일파 작곡가 박시춘의 노래비가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경상남도 밀양 출신 박시춘이 작곡한 군국가요는 13곡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태평양 전쟁 시기 중 1942~1943년 ‘결사대의 아내’ ‘아세아의 합창’ ‘지원병의 집’, ‘조선해협’ ‘혈서지원’ 등이다. 특히 조선해협은 1943년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에서 지원병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 ‘조선해협’의 주제가다. 또 ‘혈서지원’은 조선징병제 실시 축하 기념으로 만들어져 기념음반에 수록됐다.

모윤숙 시인처럼 해방 뒤에는 국군 관련 작품 활동을 벌였다. 김해에 있는 박시춘 노래비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작곡한 ‘전우야 잘 자라’가 새겨져 있다.

그는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등으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다 1996년 숨졌다. 그의 고향 밀양에서는 지난 2019년 그를 기리기 위한 박물관 건립을 두고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이 찬반 갈등을 벌이다 결국 건립이 취소됐다.


이형탁 기자

◇친일파 이원수 아동문학가·수필가(1911~1981)

도내에는 수많은 친일파 흔적이 남아있다. 대표적으로는 이원수 아동문학가다. 창원시 산호공원에는 그가 1920년대 동시로 쓴 ‘고향의 봄’ 노래비가 1960년대 세워져 이곳 공원 중심에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이원수 문학가는 양산 출신으로 유년기를 창원에서 보낸 친일인명사전에 공식 등재된 대표적 친일파다. 그는 일제시대 1935년 2월 ‘함안독서회사건’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돼 10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1937년을 기점으로 체제에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는 1942년 에 ‘낙하산-방공비행대회에서’라는 제목의 동시를 발표했다.

“푸른 하늘 나는 비행기에서 / 뛰어나와 떨어지는 사람을 보고 / ‘앗차’ 하고 놀라면 꽃송이처럼 /활짝 피어 훨-훨, 하얀 낙하산, / 오오, 하늘공중으로 사람이 가네 / 새들아 보아라 / 해도 보아라 / 우리나라 용감한 낙하산 병정, / 푸른 하늘 날아서 살풋 내리는 / 낙하산 병정은 용감도 하다, / 낙하산 병정은 참말 좋구나”

일제가 항공일 행사나 비행기 헌납운동과 같은 행사를 기획하면서 항공열을 확산시키려 했던 배경이 있다. 조선 아동을 포함한 조선인 전체를 황국신민으로 인식시켜 전쟁을 독려할 의도가 있었는데 이원수 아동문학가가 여기에 적극 동참했다는 평가다.


친일인명사전. 왼쪽부터 모윤숙 시인, 박시춘 작곡가, 이원수 아동문학가. 이형탁 기자

◇ 전문가 “기념사업 문제 조례 통과로 근거 마련…전수조사 시급해”

전문가들은 이같은 시비나 노래비 등 친일인물 기념사업은 지자체나 지역 단체가 역사적 검증없이 대중성 있는 인물 위주로 선정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김도훈 박사(전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는 ‘친일기념사업과 지역권력’이라는 발표문에서 “지역사회의 친일행위자 기념사업은 친일 행위를 둘러싼 미래지향적 논의보다는 친일 인물 기념을 통해 기득을 유지하려는 세력, 인물 선정에 정당한 기준없이 지역 내 유명인물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지역관료의 비민주적 행정결정과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이처럼 친일기념 사업이 지자체의 일방적 행정 등으로 진행되다보니 잔재 청산은 물론 법적 근거가 없어 전수 조사 자체도 어려웠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수개월 끌던 경남도의 친일 잔재 청산 조례안에 이어 지난달 경남도교육청의 친일 잔재 청산 조례안이 통과됐다.

전문가는 조례 등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므로 지자체가 공식적으로 친일 잔재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고 그 결과를 토대로 기념사업을 철회하거나 단죄비 등을 설치하는 방식 등으로 친일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친일 인사 기념 사업은 경남뿐 아니라 전국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해방 뒤 청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경남은 민간 차원에서 친일 흔적 조사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이뤄진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방 실장은 그러면서 “경남도와 경남교육청이 제안한 친일 잔재 청산에 대한 조례가 둘 다 통과됐는데 경기도나 전남, 광주처럼 하루빨리 지자체에서 공식적인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단죄비를 설치하거나 철거하는 방식 등으로 친일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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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기사원문: 경남 친일 잔재 잇따라 발견…전수 조사는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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