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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부인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을 외면한
재판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2021년 6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하는 판결을 내렸다.

  해방 이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인권회복과 역사정의의 실현을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기나긴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일본의 전쟁책임과 식민지배 책임을 묻는 투쟁이 피해자들의 존엄을 지키고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패소를 거듭하면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시민들은 피해자들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한일 시민사회의 지난한 투쟁은 지난 2018년 역사적인 대법원 판결로 소중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대법원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의 성과를 반영하여 식민지주의의 극복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가로막아 온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성격을 분명히 하여 ‘65년 체제’의 극복을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실현한 역사적인 판결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하면서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주장은 국제법상 인정받은 적이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일괄처리 되었으며 피해자들의 권리 행사는 제한된다.’면서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에 강대국의 약소국 병합이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실정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2018년 대법원 판결은 국내법적인 해석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선언한 대법원 판결을 의도적으로 폄훼한 것일 뿐만 아니라 식민지주의 극복이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왜곡된 역사인식에서 비롯한 판단으로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판결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일 시민사회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올린 강제동원 소송투쟁의 법적, 사회적, 역사적 성과와 의미도 부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줄기차게 식민지 지배, 전쟁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정해 왔다. 재판부가 판결에서 사례로 든 ‘니시마쓰(西松)건설’ 강제동원 사건의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2007년 4월 27일)은 일본 사법부가 전쟁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여 만들어낸 대표적인 논리이다. 즉, 한국과 중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이 잇따르자 일본 정부와 사법부는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지만 재판으로 청구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 법적 책임을 회피해 온 것이다.
  결국 니시마쓰 판결로 피해자들은 강제동원의 피해사실을 인정받았지만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청구할 길이 영원히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에 피해자들은 부득이하게 한국으로 무대를 옮겨 지난한 법정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마침내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거두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하고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재판받을 권리마저 가로막았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청구가 받아들여져 향후 제기될지도 모르는 국제재판에서 패소하게 될 경우에 “대한민국 사법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하며, 여전히 분단국의 현실과 세계 4강의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상황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국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져 헌법상의 ‘안전보장’을 훼손하고 사법신뢰의 추락으로 헌법상의 ‘질서유지’를 침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는 왜 재판부가 법적 판단을 넘어 정치 외교 안보 등의 문제를 과잉해석해가며 궤변에 가까운 논리를 강변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사대적이고 기상천외한 발상을 서슴지 않고 판결문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2013년 강제동원 사건의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 일본 경단련 등 경제 4단체는 ‘한반도 출신 징용공 등의 청구권 문제는 앞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나 비즈니스에 장애가 될 우려가 있고, 한일 경제관계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어 깊이 우려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아베 정부는 ‘국제법을 위반한 있을 수 없는 판결이다. 일본 정부는 의연하게 대처하겠다.’며 수출규제를 시작했다.
  박근혜의 청와대와 외교부, 양승태의 사법부, 피고기업을 대리한 김앤장은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사법농단을 통해 의도적으로 판결을 지연시켰고, 그 사이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박근혜는 “강제징용 피해 배상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라며 사법농단을 직접 지시했다. 양승태를 비롯하여 사법농단을 주도한 법관들은 아직도 반성은커녕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며 처벌을 피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사법농단의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 그리고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일본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한편 피해자들의 당연한 권리행사가 국가의 안전보장을 해친다며 ‘인권’보다 ‘국익’과 ‘국격’을 앞세우는 퇴행적인 역사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법부 본연의 임무는 피해자의 인권을 외면하고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 오로지 헌법정신에 따라 판결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2015년 일본군‘위안부’ 한일합의는 박정희 군사독재와 박근혜 정권이 ‘국익’과 ‘국격’, ‘국가안보’와 ‘한일관계’라는 미명 아래에 피해자들의 ‘인권’을 무참히 내팽개친 외교적 참사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이번 판결도 이와 결을 같이하는 것으로 역사의 엄중한 평가를 면치 못할 것이다.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고 이를 다시 역행시키려는 도발은 항상 있어왔다. 대법원의 승소판결에도 일본 정부와 피고기업은 사죄와 배상은커녕 2년 7개월이 지나도록 한일관계의 파탄을 위협하며 어떠한 책임도 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여기에 굴하지 않을 것이며, 지난 수십 년간의 연대투쟁을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회복과 역사정의 실현이 불가역적으로 관철될 그 날까지 우리는 항상 그들과 함께 할 것임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밝혀둔다.

2021년 6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