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육지부와 달리 소위 ‘강’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은 물이 상류에서부터 하류까지 항상 흐르는 곳이다. 하지만, 제주에 그러한 강은 없다. 물이 하천이 아닌 지하로 흘러서, 비가 많이 올 때만 흐르는 ‘건천’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도내 일부 소수 하천에서만 하류에서 용천수가 솟아올라 흐를 뿐이다. 제주도의 하천은 총 143개소 대부분이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하천이다.

위 내용만 보면 제주의 하천은 무미건조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화산섬의 특징을 고스란히 받아 기암괴석과 거대한 소(沼), 하천변의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제주의 하천이다. 뿐만 아니라 이 하천을 중심으로 수많은 생물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건천이 대부분이지만 제주도의 하천에는 약 40여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제주인들에게 하천은 식수를 구하는 곳이기도 했고 신앙의 장소였으며 어릴 적 수영하던 추억의 장소였다. 그래서 하천의 소마다, 기암괴석마다 이름이 있고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도외지역과는 전혀 다른 지질, 생태, 경관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광령천

그러나 그동안 제주의 하천은 복개, 하천정비, 도로 및 주차장 건설, 하수유입, 골재채취 등으로 수난을 당해왔다. 최근에는 하천 복개, 하수유입, 골재채취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현재까지 제주 하천 파괴의 가장 큰 주범은 바로 하천 정비이다. 그것도 행정당국에서 법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란 점에서 문제가 더 크다. 하천정비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홍수 예방이다. 하지만 홍수 피해는 예산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적다. 4대강 사업이 그랬듯이 사실상 토건사업을 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하천 정비과정에서 제주도 하천의 원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온갖 생물이 살고 있던 웅장한 소(沼)들은 포크레인에 파괴되었고 기암괴석도 제방을 쌓으면서 사라졌다. 하천 양변으로 울창했던 상록활엽수림도 사라졌다. 이것은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는 제주도 건천에 대한 고려 없이 도외 지역에서 하는 강 정비 사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천정비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과도하게 부풀린 홍수피해를 근거로 지난 수십 년간 쉬지 않고, 제주도 하천의 원형을 파괴하고 있는 하천정비사업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제주도 하천의 모습은 과거로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2021년 총회때 하천정비 대응을 중점사업으로 정하였다.


최근 오라동사무소 부근, 한천 정비공사 모습

# 가장 많이 훼손된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 천미천

천미천은 총 길이가 25.7km로서 도내 143개 하천 중에서 가장 길고 복잡한 하천이다. 한라산 1,100m 이상 지점인 돌오름,어후오름,물장올 등지에서 발원하여 제주시 동남부지대, 조천읍, 구좌읍, 표선면, 성산읍에 걸쳐 흐르다가 표선면 신천리 바닷가 앞에서 여정을 끝낸다. 1861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천미천은 줄기가 가장 긴 복잡한 하천으로 묘사되어 있다.


천미천 정비 공사 대상지. 도내 하천 중에서도 이 정도의 대형 소가 존재하는 하천은 드물다.

천미천은 생태계가 매우 훌륭한 하천이다. 하천 양안에는 해발고도에 따라 바닷가에서부터 발원지까지 상록활엽수림과 낙엽활엽수가 모습을 달리하며 긴 띠 형태의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하천 곳곳에 수없이 산재한 소(沼)는 규모도 크고 경관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의 서식처와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천미천 정비구간에 포함된 곳. 천미천은 양변에 상록활엽수림과 대형 소가 매우 풍부한 곳이다.

지난 세월동안, 천미천 25km 구간 중에서 이미 하천정비가 많이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천미천의 아름답고 큰 소(沼)들과 양안의 숲 그리고 기암괴석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천미천 정비공사는 현재진형형이다.


천미천 정비현장의 옛날 다리. 이 다리도 철거되어 새로운 다리가 개설될 예정이다.

이번 천미천 공사계획은 총 11.98km로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구간이 모두 포함된다. 제주시 공사 구간(천미천(구좌지구)- 이하 천미천 구좌지구)은 3.98km이고 서귀포시 공사구간(천미천(표선지구)-이하 천미천 표선지구)은 8km이다. 두 곳 모두 호안정비(양쪽에 전석 쌓기 형태로 둑을 쌓는 방식)를 중심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천미천 정비 구간에 포함된 지역. 용암폭포가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위 공사구간을 제외하고 또다시 2.08km(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721~교래리 제4교래교)의 천미천 정비계획이 포함된 제주시 지방하천 하천기본계획 수립 전략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되었다. 그러니까 현재도 천미천의 60%가 넘는 구간이 공사 중이거나 공사를 준비 중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한라산에 포함된 천미천 상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천정비공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최근 2회 정도 현장을 찾아본 결과, 천미천은 상당한 생태적 가치를 갖고 있었다. 앞으로도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천미천 정비 공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