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가 참여한 KBS 단독 보도

‘간도참변에 관여한 한국인 경찰 공적서 발굴’ 방영

박광종 선임연구원

KBS는 지난 3·1절 저녁 9시 뉴스에 ‘간도참변에 관여한 한국인 경찰 공적서 발굴’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KBS가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일제가 1921년 6월에 작성한 라는 제목의 문서 철에서 한국인 경찰 48명의 공적명세서를 확인하고, 1920년 간도참변 당시 한국인 경찰들이 간도 지역 항일 독립운동가와 수많은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한 일제의 만행에 적극 가담
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KBS가 입수한 는 (재간도일본영사관), (두도구분관과 용정촌총영사관), (국자가분관) 등 4종류, 600여 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중 한국인 경찰 48명의 ‘공적서’가 상세하게 담겨있다. 이 문서들은 간도참변을 지휘한 일본군 부대장들이 ‘토벌’에 참여했던 일제 경찰(한국인·일본인)들에 대한 공적서를 작성하고, 간도총영사관이 이 공적서를 취합해 일본 외무성에 보고한 것이다. 연구소는 각종 사료(자료)를 조사해 간도참변에 참가한 한국인 경찰 48명 가운데 조선총독부 소속 순사로 간도로 파견된 ‘응원 경찰’ 9명이 일제로부터 종군기장(從軍記章)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종군기장은 일본이 대외침략을 기념하며 전쟁에 참전한 이들에게 수여하던 일종의 상훈으로, 간도참변에 가담했던 이들 역시 종군기장을 받았던 것이다. 이들은 주로 첩보 수집 및 보고, 길 안내, 통역, 독립운동가에게 변절을 강요하는 귀순 업무 등을 맡았는데 독립운동가 체포와 민간인 마을 ‘초토화’에도 직접 가담했다. 48명 중 간도참변 당시 간도총영사관경찰서에 근무하던 일본 외무성 경부 2명(현시달·김
영규)은 이미 에 수록된 인물이다.

이외 종군기장을 받은 ‘응원경찰’ 9명을 포함해 46명이 독립운동(가)을 탄압한 사실이 자료를 통해 확인된 만큼 추가 행적 조사가 필요하다. 예컨대 연구소가 소장한 다른 자료에서 간도참변 당시 일본 외무성 경부보(간도총영사관경찰서)였던 최태욱이 1926년 1월 당시 경부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태욱은 간도참변에 앞장 서 공적서에 ‘조선인 경찰관의 본보기’로 ‘공적이 가장 현저하다’고 기록된 인물이다. 연구소는 간도참변에 관여한 한국인 경찰 48명에 대한 행적을 철저히 조사해 이들 중 친 일·반민족행위가 명백하고 선정기준에 부합한 경우 향후 발간할 증보판에 수록할 예정이다. 한편 연구소는 에서 한국인 경찰들이 체포에 앞장 선 독립운동가 중에 이미 서훈이 추서된 독립유공자를 일부 확인하였다. 또한 이들 외에 확인된 다수의 한국인 사상자(死傷者)와 피체자(被逮者)와 관련한 독립운동 행적을 추가 조사해 KBS와 공동으로 서훈을 요청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