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2월호(641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이수호 보령우유 생산자

한살림에는 좋은 우유가 있다. ‘좋은 우유’의 정의가 무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생산자가 직접 유기재배한 초지에서 난 풀과 유기농 배합사료를 연중 빈틈없이 고르게 먹이고, 폭신한 톱밥이 도톰하게 깔린 널따란 축사에서 편히 쉬며, 젖이 아프지 않도록 하루에 세 번이나 착유하며 키운 젖소가 생산한 우유라면, 또한 여러 목장의 원유를 섞지 않고 단일목장의 원유로만 만들고, 살균과정에서 유익균과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여 만든 우유라면, 좋은 우유라고 잘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보령우유가 만들고 한살림이 공급하는 ‘유기농우유’가 그렇다.

 

이 같은 좋은 우유를 만들기까지 보령우유 이수호 생산자는 39년의 시간을 오롯이 쏟아부었다. 보령우유에 원유를 공급하는 개화목장의 문을 연 것은 그가 스물두 살이던 1982년. “친구들이 대학교 다닐 때, 저는 머리를 젖소 다리 사이에 파묻고 우유 짜느라 정신없었죠. 하하. 원래 고향인 당진에서 젖소 두 마리로 시작했어요. 돈이 없으니 남의 땅 옮겨 다니며 풀을 먹이다 10년쯤 지나서 땅값이 싼 보령으로 넘어왔어요. 그때 2천 평을 처음 샀는데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땅이 생기니 너무 좋더라고요.”

 

두 번의 위기 끝에 탄생한 좋은 우유

자기 소유의 땅에서 젖소를 키우고 국내 1, 2위를 다투는 우유회사에 전량 납품하는 등 안정적인 생산체계를 이룬 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아 위기가 닥쳤다. 우루과이라운드와 한미FTA 등 유제품을 비롯한 농산물 시장의 빗장이 하나씩 열리기 시작한 것. “낙농 선진국들과는 역사나 규모 등에서 비교가 안 되잖아요.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지 공부를 많이 했는데, 결국은 ‘좋은 우유’로 승부를 낼 수밖에 없더라고요. 조사해보니 미국은 전 국토가 GMO로 오염되어 있어서 사료용 곡물을 중국에서 수입해서 젖소에게 먹이고, 거기서 난 우유를 다시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구조였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직접 유기재배한 풀을 먹여서 키워보자고 마음먹고 유기농우유를 시작했죠.”

당시만 해도 유기농우유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던 터라 납품하던 우유회사의 반응은 냉담했다. 우유회사의 낙농팀장으로부터 시작해 회장의 결제도장을 받기까지 꼬박 열한 달이 걸렸다. 고무된 마음으로 주변의 젊은 생산자들도 설득해 지금은 보령지역이 우리나라 전체 유기농우유의 30%를 차지하는 곳이 됐다. “범산목장이나 성이시들목장, 상해목장 등과 함께 우리나라 유기농우유 1세대인 셈이죠.”

 

 

또 한 번의 위기는 2013년 찾아왔다. 납품하던 우유회사의 갑질 사태가 터지며 불매운동의 주요 대상이 된 유기농우유의 매출이 급감한 것. 우유회사는 유기농우유 비중을 최소화하기로 하고, 보령지역 생산자들에게 납품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어렵게 일군 유기농우유 터전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함께 납품하던 젊은 생산자들이라도 살리고자 자발적으로 우유회사와 거래를 끊고, 독자적인 가공 및 유통망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가공과 유통 경력이 있는 동업자에게 우유 가공공장을 맡겼지만 양쪽 다 경험이 부족해 몇 년간 적자를 겪었다.

다행인 것은 그러한 좌충우돌의 과정에서 한살림을 만났다는 점이다. 큰 실패를 통해 체득된 가공 경험에 좋은 유통망까지 확보한 이수호 생산자는 2016년 지금의 보령우유를 설립하고, 2017년 가공공장을 준공해 지금까지 한살림과 함께하고 있다. “10만 평 초지에서 난 풀로 270마리 젖소를 먹이고, 매일 5톤의 우유를 내고 있어요. 그중 70% 정도가 한살림에 나가고요. 몇 번의 굴곡이 있었지만 39년 전으로 돌아가면 다시 할 것 같아요. 제가 만드는 우유에 자부심이 있고 그걸 많은 사람에게 먹일 수 있다는 기쁨도 크죠.”

 

 

등급제에 가려진 젖소의 어려움

젖소가 자라는 환경이나 세세한 생산과정을 살피기 어려운 소비자가 좋은 우유를 고르는 방법으로 가장 흔하게 알려진 것이 바로 등급 확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당 세균수와 체세포수에 따라 우유 원유의 위생등급을 매기고 있고 우유회사들도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세균수는 원유를 얼마나 깨끗하게 짜내는지를, 체세포수는 젖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확인하는 척도로 쓰인다. 하지만 이수호 생산자는 위생등급체계 만으로는 좋은 우유를 구별하기 어려우며 이 같은 방식이 오히려 젖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체세포는 젖소의 몸에서 생기는 죽은 상피세포나 백혈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건강한 젖소에서도 원유에 ㎖당 20~40만 개씩 섞여 나오죠. 유방에 염증이 생기면 체세포수가 늘어나니 젖소 건강을 살필 수 있는 지표가 되긴 하지만 요즘처럼 체계적인 관리가 되는 상황에서 위생등급을 유일한 기준으로 남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낙농진흥회 원유검사현황에 따르면 2020년 11월 기준 생산한 원유의 94.7%가 세균수 기준 최고등급인 1A등급을 받았고, 체세포수 기준으로는 67.1%가 1등급을 받았다. 다시 말해 시중에 나오는 우유 대부분이 최고등급을 받는 상황에서 위생등급은 좋은 우유의 변별력이 되기 어려운 것. 오히려 체세포수를 낮추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진다.

“우리나라의 체세포수 1등급 기준은 ㎖당 20만 마리 이하로 아주 높아요. 미국이나 유럽 등은 40만 마리인데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3등급 수준이죠. 그런데 체세포수는 젖소가 나이 들면서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거든요. 등급이 낮으면 판매대금을 적게 받으니 젖소를 빨리 도태시키죠. 젖소가 새끼를 낳는 횟수인 산차 평균이 우리나라는 2.5회에 불과한데, 낙농선진국보다 1회 이상 적은 수준이에요. 젖소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유 생산량도 많은데, 체세포수 때문에 일찍 도태시켜야 하니 젖소에게도 생산자에게도 아쉬운 일이죠.”

이와 비슷한 일이 유지방 관련해서도 일어나고 있다. 우유회사에서 원유 판매대금을 지급하는 기준에는 세균수, 체세포수 등 위생등급 이외에 유지방과 유단백질 함량도 포함되는데, 이중 유지방의 경우 4.1% 이상이 되어야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홀스타인 종의 평균 유지방은 3.5%인데 이를 4.1% 이상으로 높이려면 곡물사료 비중을 높인다든지 목화씨를 급여해 침샘을 자극, 되새김을 많이 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써야 해요. 소비자들은 오히려 지방이 적은 우유를 선호하는데 원유의 유지방 비율을 높게 만드느라 젖소는 젖소대로 고생시키고, 4.1%짜리 원유를 가져다 지방을 분리해서 1.5~2%의 저지방우유를 만들어 파는 이상한 상황이죠. 특히 수입산 목화씨는 거의 GMO라고 봐도 되니 그 또한 문제고요.”

 

 

자연을 순환하게 하는 좋은 우유

이야기 막바지에 다시 한 번 ‘좋은 우유’란 무엇인지 물었다. 위생등급, 가공방식 등 우유 생산의 전 과정을 짚어주며 이야기하던 이수호 생산자는 잠시 생각하다 ‘좋은 젖소가 생산한 우유’라고 정리했다.

“좋은 젖소에게서 나온 우유가 좋은 우유겠죠. 좋은 젖소는 좋은 땅에서 난, 좋은 먹을거리를 먹으며 자랄 거고요. 유기농우유를 시작했을 때 가장 신경 썼던 것이 젖소를 먹일 초지였어요. 풀사료와 배합사료의 비율을 연중 일정하게 맞춰서 먹이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직접 농사지은 풀을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거든요. 좋은 풀을 먹은 젖소가 배출한 축분을 잘 발효시켜서 땅에 환원하고 거기서 나오는 풀을 다시 소에게 먹이는 등 자원순환하는 농법이 결과적으로 좋은 우유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보령우유에서 생산한 한살림 유기농우유는 우리나라 유기농우유 중 가장 저렴하다. 유기농 풀사료를 수입하는 대신 직접 재배한 풀을 먹이고, 체세포수나 유지방 함량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젖소의 산차수를 높인 결과다. 순환하는 자연의 산물인 ‘좋은 우유’를 ‘부담없는 가격’에 이용하자니 덩달아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