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사 1도 모르던 피디, 역사에 푸욱 빠지다

– 이은지 YTN라디오 뉴스제작팀장

인터뷰 : 방학진 기획실장
정리 : 김혜영 선임연구원

●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를 소개해달라
● YTN라디오가 연구소 자문, 경기도와 경기아트센터 제작 지원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장기 프로젝트다.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독립운동가(歌)를, 생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의 육성으로 직접 녹음하고 복원해 프로그램으로 제작한다. 음악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한 한 곡의 독립운동가에는 노래와 함께 그들의 선조 이야기도 담겨있다. 이 프로그램은 공익적 목적의 방송물임과 동시에 역사 기록물로도 가치가 깊어, 청취자들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독립 정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 YTN라디오, 이은지PD와 연구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2018년 YTN라디오 프로그램 광복절 특집 기획 자문을 얻기 위해 홍기희 작가와 함께 연구소에 직접 방문했었다. 당시 제작했던 광복절 특집 5부작 ‘그들이 꿈꾸는 나라’는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사회문화발전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이듬해 같은 프로그램에서 3·1운동 100주년 연속기획으로 반민특위 등 근현대사 관련 특집 방송을 했다. 그해 여름에 신흥무관학교 옛터 답사 에 참가해, YTN라디오 특집 다큐멘터리 을 제작, 연출했 다. 겨울에는 러시아 독립운동 유적지를 방문하면서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만나 취 재하면서 언론인으로서 가져야할 역사 의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취재 기록들 은 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2020년 YTN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다. 역사라는 것은 기억되고 회자될 때 비로소 진짜 역사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가 기억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기록들이 YTN라디오 를 통해 대중 속에서 회자되고 있다.

●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많은 기록물 형태 중 음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광복절 특집 5부작을 연출했을 때 제 5부 프로그램이 친일음악과 항일음 악에 대한 내용이었다. 충격이었다. 故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피날레 곡이었던 ‘희망의 나라로’ 는 대표적인 친일음악인인 현제명이 작곡한 곡이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가곡 중에서도 비슷 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르면 용감하다던가……! 청취자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아마도 대담과 서술이라는 형태보다 노래라는 콘텐츠가 주는 충격파가 더욱 컸던 것 같다. 언젠가는 더 깊게, 노래로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 2부는 당시 망명 독립운동가들이 불렀던 ‘노래’에 관한 내용이었다. 압록강을 건너며 불렀을, 매서운 연해주 칼바람 속에서 해방 조국을 꿈꾸며 불렀을 그 시대 그 분들의 그 수많은 노래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구술로는 전해져왔으나 기록되어 보관되지 못했던, 악보는 있으나 음원은 없는, 그래서 점차 소실되어 우리 삶에 살아나지 못한 독립운동 가들의 독립운동가(歌). 이 노래들을 기록으로 남겨보자, 이번 독립운동가 복원 프로젝트 기획의 시작이었다. 라디오 PD 시각으로 얘기해보자면, 음악은 라디오 매체가 기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콘텐츠 다. 청취자들에게 지식과 정보, 감성을 동시에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라디오에 최 적화된 오디오 콘텐츠. 소리에 집중할 수록 청취자들에게 깊이 각인될 수 있는 노래, 이 아이 템 딱이네 딱.

●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가 그렇게 시작된 거였나?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사실 활자로 된 노래를 입체적으로 복원해서 청취자들의 귀까지 전달되는 작업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필수적으로 제작비가 적지 않게 소 요된다. 이 일에 흔쾌히 동참하여 뜻을 모아준 곳이 있었다. 경기도와 경기아트센터다. 두 곳의 제작지원이 확정되면서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돈 안되고 흥행 안되는 역사 콘텐츠(그것도 근현대사, 게다가 독립운동가 이야기라니)에 YTN 라디오는 하루 다섯 번 방송이라는 횟수를 배정하고, 메인 프로그램 시간인 소위 ‘잘 나가는 방송’시간(방송 광고로 치자면 무려 ‘프라임 타임대’)에 배치했다.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편을 시작으로 프로그램이 방송되었고, 현재까지 13편이 제작됐다. FM 94.5MHz YTN라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다.

●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 기획 단계에서부터 복원할 독립운동가(歌)를 선정한다. 제작진의 기준은 두 가지다. 후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가치와 의미가 있는가, 시의적절한가. 그 후에 노래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찾고,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맥락을 검증해나간다. 이 노래를 육성으로 복원할 독립운동가 후손을 물색하고 섭외한다. 제작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스토리텔링’과 ‘연관성’이다. 이 노래는 왜 꼭 이 분의 후손이 불러야하는가. 노래에 담길 ‘이야기’는 왜 반드시 이 독립운동가여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고민이 끝나고 답이 나오면 살아계신 독립운동가 혹은 그 후손을 만나러 간다.
취재는 긴 시간 이뤄진다. 후손들이 가슴 깊이 안고 살아온 긴 역사를 회상하기까지의 시간도 필요하거니와 ‘반드시 남겨야할 메시지’가 충분히 담겨야하기 때문이다. 2분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하는 시간은 평균 2-3시간. 취재의 하이라이트는 ‘노래’다. 제작진이 만난 거의 대부분의 후손들, 독립지사들은 노래를 꺼려했다. 그런 분들에게 취지를 무한 설명하고 설득하여 무반주 육성 라이브를 받아내기까지, 이
과정을 무사히 끝내면 후작업에 들어간다. 작가는 취재 속기를 바탕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긴긴 이야기들의 날실과 씨실을 엮어내어 2분이라는 액기스를 만들어낸다. 현재 YTN 음악실 전설의 마이더스의 손 장석문 감독이 현대판 독립운동하듯이 음악 작업 중이다.

● 해외에 계시는 후손 분들이 부르는 노래에 대한 계획은 없나?
● 해외까지 나갈 제작비가 없다(웃음). 망명 독립운동가들의 노래를 복원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해외를 나갈 수도 없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해외에 계시는 분들의 노래도 복원하고 싶다. 음질 문제만 해소된다면 유선 인터뷰나 랜선 인터뷰 등도 시도해볼 생각이다.

●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을 찾아서 발굴하는 건 어려운가? 독립운동가 부모님들이 부르시던 노래를 본인들만 알고 계시는 경우도 꽤 있을 것 같다.
● 취재 중에 만난 한 후손은, 독립운동을 하셨던 할아버지가 부르던 노래라며 알려주었다. 가사는 알고 있었으나 곡조는 모르는 듯 했고, 그마저도 미미한 조각의 파편같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노래는 아닌 것 같았다. 다만 할아버지는 “이런 노래를 부르면 잡혀 간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나는 방송인이지 역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즉석으로 ‘이 노래다’는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노래를 기준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제작진이 만난 한 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선조들은 노래조차도 잘 안 불렀다고 하시더라. 생각해보시라.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본인의 이름조차, 사진 한 장조차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분들이 많았다. 그런 엄중한 상황 속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그러니 구전으로만 전해질 수 밖에). 해방 이후에도 당시 정치적 상황 때문에 독립운동했다는 기록을 다 지우고 살았던 분들이 많았으니 말 다했다. 제작진이 만난 후손 분들 중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부른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노래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업적을 직접 들은 분도 거의 없었다. 심지어 해방된 나라에서조차 성(姓)씨를 바꿔서 사셨
던 분들도 있었으니까. 이 프로그램은, 그 분들이 못 다 부른 노래를 후손들이 다시 불러준다는 의미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 시간과 공을 꽤 많이 들이는 것 같은데, 방송 한 번으로 끝내기는 아쉬울 것 같다.
● 사실이다. 그래서 YTN라디오에서는 방송에 내보내지 못했던 취재 이야기들을 재가공해서 3·1절 등 특집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있다. 다만 프로그램을 유튜브나 방송국 홈페이지에 업로드 하는 것은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기록물로 배포할 수 있는 방법 등 대중화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배포하려는 이유? 당연하지않나. 이 노래들은 우리 모두의 역사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더 나아가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 여옥사 8호실의 노래 ‘대한이 살았다’를 박정현이 부르고 김연아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이유도 대중성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노래가 힘을 가지려면 여러 사람들에게 불려야 한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여러 대중들이 한 소절씩 기억하면서 부를 수 있다면, 선조들의 독립 정신이 우리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도 국치추념일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국치추념가’ 노래를 듣다보니 가사에 날짜가 나오더라. 아마 앞으로 경술년 추팔월 이십구일 날짜는 절대 잊지 못할 거다.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부르다보면 자연스럽게 노래 속에 담긴 뜻과 의지를 알게 되지 않을까 한다. YTN라디오가 우리 역사 가운데 이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길 기대한다. 
이런 이유로, 복원을 할 때 고민하는 지점이 ‘대중화’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현대화해서 보다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뜻과 정신을 오롯이 이어가되, 형식은 세련되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에 이 복원된 노래들로 콘서트를 개최하고 실황 음반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 노래가 지금 우리가 부르는 노래와는 많이 다르다.
● 들어보면 타령 같고 시조 같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노래가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97세가 되신 김영관 지사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광복군으로 활동하면서 정작 목놓아 독립군가를 부른 기억은 없다고 하더라. 그때 노래를 부른 다는 건 신분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니까타령 같은 이유가 여기있지 않을까 한다. 혼자 흥얼거리며 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가 그때 당시에 지금 군가처럼 씩씩하고 우렁차게 부를 수 있었겠나.

● 악보가 있어도 타령처럼 불렀던 건가?
●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라고 하면 지금 군대의 군가를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의 노래들로만 구성된 건 아니다. 고향에 두고온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불렀던 망향가도 당시 독립군들에게는 군가였다. 사기를 돋우는 웅장한 멜로디도 있지만, 토닥토닥 망명 독립운동가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곡조도 있다. 또, 똑같은 노래인데 부르는 사람마다 다 다른 노래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음도 다르고 박자도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당시 기록을 남길 수가 없기 때문에 구전으로만 전달하면서 부르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생겼던 것이 아닐까 한다.

● 후손 분들을 인터뷰하고, 만들기 쉽지 않았을 콘텐츠가 제작되고 나면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 빚진 마음이 크다. 역사에 빚지고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빚지고.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 아닐까? 이 고마움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으로, YTN라디오가 현재 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가 이 시대의 독립운동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제작에 임한다. 내가 늘 하는 얘기가 있다. YTN라디오가 하나의 작은 역사적 허브가 되어, 고마운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그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언론이 될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나?
● 지금은 너무 큰 꿈으로 보이지만 꼭 제작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 올해 임시정부기념관이 개관한다. 11월 23일로 예정돼있다고 알고 있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해방된 조국에 발 딛었던 날짜에 맞춘 것이라고. 그 앞에서, 그 분들이 불렀던, 만주와 중국에서 불려진 독립운동가 노래들로 임정 콘서트를 열고 싶다. 과학이 발달해서 AI가 하늘로 돌아간 사람들의 음성과 모습도 복원하는 시대다. 남의 땅에서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들의 목소리와 모습을 복원해서 꿈에 그렸을, 해방된 조국의 임시정부 앞에 세워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남의 땅에서 목놓아 통곡처럼 불렀을 애국가와 당시의 독립운동가(歌)들을 후손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꼭 보고싶다. 임시정부 비서장이셨던 차리석 선생님이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시지
못했다. AI로 되살아난 차리석 선생님과 후손이 함께 복원된 임시정부에서 독립군가를 부르는 모…… 아, 꿈만 꿔도 너무 좋고 행복하다. 빚진 마음이 조금은 해소될 것도 같고. YTN라디오가 꿈을 꾸기 시작했으니, 동참할 누군가도 생길 거라 믿는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FM 94.5MHz YTN라디오를 통해 많이 들어주시고, 노래는 따라 불러주시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달라. 역사는 회자되고 노래는 불리워져야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된다. 박제화되어 있던, 잃어버렸던 노래들이 역사로 살아나는 풍경을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