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고래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 한윤정 전환연구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060300035
한달 전에 읽은 감동적인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의 제목은 ‘2020 고단 3057·4634(병합)’. 울산지방법원 형사2단독 유정우 판사가 쓴 판결문이다. 그는 작년 6월 울산 울주군 앞바다에서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선장 2명과 선원 7명에게 징역 2년~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기존 판결보다 형량이 꽤 높다. 근거는 판결문에 있다. 전체 26쪽 중 6쪽을 고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에 할애했다.
“고래는 포유류에 속하는 바다상의 거대동물로서 약 2500만년 전에 인간보다 먼저 지구상에 출현하였고(현생인류는 20만년 전 출현),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흔히 생태계 정점에 있는 최고 포식자는 약육강식 원리에 따라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잡아먹기만 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생태계의 순환과 균형을 가능하게 한다.
“고래는 ‘고래펌프’라고 하는 수직운동과 ‘고래컨베이어벨트’라고 불리는 대양을 가로지르는 활동을 통해 바다 표면으로 미네랄을 가져오는데, 그 미네랄이 식물성 플랑크톤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고래 배설물의 영양소들은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하는 토대를 제공한다.”
더구나 고래는 ‘탄소중립’에도 크게 기여한다. 판결문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최신 보고서 ‘기후위기의 자연적 해결방안’(2019년 12월)을 인용한다.
“큰 고래 한 마리는 일생 동안 평균 33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고래에게 흡수된 탄소는 고래가 죽더라도 수백 년간 고래 사체에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고래 개체수는 전 세계적으로 합쳐 약 130만마리로 추산되는데, 상업포경 이전 개체수로 추산되는 약 400만~500만마리가 현재에도 있다고 전제한다면 연간 17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더 포집할 수 있다.” 17억톤은 지난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390억톤의 4%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IMF는 큰 고래 한 마리의 가치를 200만달러(22억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피고인들이 포획한 밍크고래 거래 가격은 7000만원이다. 인간의 소탐대실이다.
판결문은 인간중심적인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라는 관념에 대해서도 다른 입장을 내놓는다.
“우리가 고래를 보호해야 할 이유는 단지 고래가 멸종위기종으로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가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이 고래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와 같이 지구에서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국제포경위원회(IWC)가 40년간의 노력 끝에 1986년 상업포경을 금지시켰지만, 대표적 포경국가인 일본은 2019년 IWC를 탈퇴했다. 그에 앞서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14년 남극해에서 연구 핑계로 계속 고래를 잡는 일본에 금지 판결을 내렸는데, 이를 제소한 호주정부의 이유 역시 “고래 관찰이 호주 동부해안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 판사는 돈벌이가 아니라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고래가 살아야 한다고 했다.
피고인들은 작년 6월8일 포항 구룡포에서 어선 2척에 고래 포획도구를 싣고 출항했다. 울산 쪽으로 내려가다 오전 11시쯤 밍크고래 두 마리를 발견했다. 선원들은 선장 지시에 따라 배 한 척은 고래를 몰고, 다른 한 척은 퇴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고래를 가둔 뒤 작살을 쐈다. 그리고 작살과 연결된 로프로 고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피를 많이 흘려 죽도록 한 뒤 배 위로 끌어올렸다.
주범인 선장에게 내려진 징역 2년의 실형은 이례적이다. 보통 초범은 벌금형이나 징역 1년 미만의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재범도 실형 1년 미만이다. 재판부는 “적발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 내지 집행유예형에 그친다는 현실은 일부 어민들에게 불법 고래포획에 대한 동기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자연의 권리를 말하지만 법정에서 그것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막연했다. 과거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을 저지하려던 천성산 도롱뇽은 ‘원고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몇년 전 인도 갠지스강 등은 법정에서 법인격이 인정돼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게 됐다. 유 판사의 결정은 그런 이례적 조치가 아니더라도 책임 있는 사회구성원의 의식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의 결론이다. “고래가 바다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그 바다는 여전히 인간에게 쓸모 있고 유용할 것인지 의문이다. 고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고래를 보호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문구로 요약해본다. “고래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 역시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한달 전에 읽은 감동적인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의 제목은 ‘2020 고단 3057·4634(병합)’. 울산지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