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법학교수회 엉터리 성명서에 부쳐 -
최자영, 전 부산 외국어대학 교수이자 그리스 민주주의 전문 연구자.
대한법학교수회 소속 법학교수들이 성명서를 내고 검찰총장 윤석열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처사를 비난했다, 법무부장관이 윤석열에 대해 조치한 직무정지 및 그 징계 요청에 관한 것이다. 비난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 점으로 추릴 수 있겠다. 하나는 “징계사유는 매우 중대하나 구체적인 물적 증거를 확보함이 없이 직무정지에 들어갔기 때문에 수사절차의 적법성에서 흠결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의 이름을 빌려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또 국민의 검찰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법학교수회가 내건 이 두 가지 비난의 근거는 개념의 모호함으로 인해 그 자체가 흠결한 것이다. 첫째, 구체적인 물적 증거를 확보한 뒤에 직무정지를 내려야 한다고 할 때의 ‘구체적 증거’라는 것은 어디에다 기준을 두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성명서에는 그 근거로서 ‘뒤늦게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점을 들고 있다.
대한법학교수회의 이런 논리에 따르면, 일반인의 경우에도 혐의가 있어도 증거가 다 확보될 때까지 구속이니 뭐니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하는 것이고, 또 구속하고 난 다음에 압수수색을 하면 절차의 적법성에 흠결(하자)이 생기는 것이 된댜.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일반인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 혐의가 소명되면 바로 구속조치하고 그 다음에 수사를 추가로 한다.
더구나 공직자의 경우는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다. 검찰총장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판에 그 권력의 남용이 이른바 ‘국민’ 민초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일반인보다 더 신속하고 엄격하게 그 권력에 대해 견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혐의가 있으면 먼저 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대번에 조치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법학교수회는 ‘절차’의 이름을 빌려서 그 권력의 남용 가능성에 대한 조치를 시간적으로 연장하도록 함으로써, 결국 국민의 이익 도모가 아니라, 그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민주정치의 요람인 고대 아테네에서는 도편추방제도(오스트라키스모스)가 있었다. 비수와 같은 권력의 오남용에 대해 미리 견제를 하는 것이다. 도편추방은 시민 민초가 공직자를 추방하는 제도인데, 혐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투표를 통해 추방할 수가 있다. 여기에는 증거가 필요 없다. 증거도 없이 쫓겨나는 공직자는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감내해야 한다. 그런 억울한 지경에 처하지 않으려면 공직에 나서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 인들은 비리 증거가 나올 때까지 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를 처벌을 못하고 마냥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낌새만 보이면 싹을 미리 잘라 없애버렸다. 이것이 고대 아테네 시민의 지혜였다. 그런데 대한법학교수의 비난은 국민 민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치는 것이다. 미련하게도 증거가 확실하게 나올 때까지 그 공권력의 오남용 가능성을 마냥 방치하라고 충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법학교수회는 현재 진쟁중인 ‘옵티머스 라임사건 수사’를 지휘감독하는 검찰총장의 직무를 즉시 정지시킨 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를 방해한 부당한 처사’라고 규정하고, 이것이 ‘국민의 뜻’을 배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대한법학교수회는 검찰이 증거도 없이, 피의자 소환조사 한 번도 없이,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의 청문회 직전에 그 부인 정경심 교수를 기소했을 때 침묵했다. 그런 절차의 위반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던 대한법학교수회가 이번에 그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치 조치에 대해서는 ‘국민’ 민초의 이름을 빌어서 ‘절차의 흠결’을 들고 나섰다.
이들 법학교수들이 말하는 ‘절차의 흠결’은 선택적(차별적)이다. 그뿐 아니다. 이들의 눈에는 ‘옵티머스 라임’ 밖에 안 보이고, 윤석열이 그 가족의 사기 혐의, 그 측근 한동훈의 검언 유착혐의 등이 지금 정상의 수사가 진행되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옵티머스 라임’ 사태가 윤석열 자신이 연루된 수사의 부실로 커졌다는 혐의조차도 안중에 없다. 그저 대한법학교수회의 눈에는 윤석열이 비리를 척결하는 전설의 흑기사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한법학교수회는 윤석열을 비호하는 것이 아니라, 전, 현 법무부장관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을 막고 지금의 검찰조직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그들이 ‘국민’의 이름을 빌어서 하는 비난은 독재적 검찰조직을 옹호하는 것일 뿐, 오히려 다수 ‘국민’ 민초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다. “검사장으로부터 평검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선 검찰청 검사들, 또 검찰 간부 출신 전직 검사들도 그 (법무부장관) 처분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반박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 것이 그 증거이다.
대한법학교수회의 눈에는 개혁에 항명하는 검찰조직의 반대가 오히려 정당한 것이고, 기득권을 침해당하는 자의 몽니 부림으로는 보지 않는 것이다. 대한법학교수회는 민초의 눈이 아니라, 철저하게 검찰의 대변인이 되어있다. 이번 대한법학교수회의 성명서를 통해 다수 여부는 모르겠으나, 적지 않은 법학교수들이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근자에 검찰이 행한 그 숱한 선택적 수사에 대해서 대한법학교수회가 침묵하고 있더니만, 그 침묵이 검찰의 행패에 대한 동조였던 것이다.
사실은 기득권을 도전 받는 검찰은 당연히 자신을 향한 개혁의 칼날에 저항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수십 년도 아닌 근 일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저 그렇게 쉽게 불법, 편법을 밥 먹듯 하던 검찰조직 및 법원, 그리고 그 사법권력을 방패 삼아 정치, 경제적 특권을 누려온 기득권은 당연히 검찰개혁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당장 공수처가 설치되면 다는 아니라도 몇 가지는 햇빛 속으로 끌려나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조직에 몸담은 이나, 그 아성을 측면에서 받들며 짐짓 ‘국민’의 이름을 끌어다대는 대한법학교수회의 교수들보다 더 기막힌 이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 민초들 자신이다. 대한법학교수회가 윤석열을 두고 ‘옵티머스 라임 사건을 수사’를 통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를’ 하는 이라고 치켜세울 때, 그 말을 곧이 듣는 민초들이 그러하다. 대한법학교수회의 이 같은 선동 뒤에 오직 권력을 겨낭하여 그 권력을 흠집 내고 그것을 탈취하고 싶은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감지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부패와 부정은 살아있는 권력 청와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검찰조직이 살아있는 권력이고, 또 우리 주변에서도 만성적으로 일어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는 대소 가리지 않고 만성적으로 만연하고, 검찰조직은 부패의 정화가 아니라 부패를 조장하는 온상이다. 그에 대해 일말의 반성 없는 대한법학교수회는 부패 불감증에 걸린 듯하다.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만 겨냥하는 것이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윤석열과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러나 검찰총장 윤석열도 언젠가는 사라질 한 대리인 껍데기일 뿐이다. 대한법학교수회가 비호하는 것은 윤석열 개인이 아니라, 그 뒤에 움직이는 철옹성같은 기득권이다. 검찰조직, 대한법학교수회가 공권력을 이용하여 비리가 상습화된 이들을 위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