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과학도의 꿈을 접고 평화통일과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임재근 후원회원
인터뷰 방학진 기획실장
이번 달에 인터뷰하는 대전지부의 임재근 후원회원은 통일뉴스와 오마이뉴스 기자로서 대전지역의 여러 현안에 대해 적극 발언해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에서 교육연구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6년 김창룡 묘 이장 추진 시민연대를 구성할 때 민족문제연구소를 알게 되었고 2016년 연구소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지부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으며 2019년 ‘대전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서’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팀장으로 활동하면서 대전형무소 터, 산내 골령골 등 우리 주변에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곳들을 다니면서 평화기행을 안내하고 있다. 2019년 여름 산내 골령골에서 해설을 하는 장면.
임재근 회원은 2016~17년 촛불항쟁 시 61차례 131일간의 대전촛불시위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여하며 기록사진을 찍어 (대장간, 2017)을 펴냈다. 2019년 8월에는 한국전쟁이 대전지역에 남긴 상처들을 증거하는 사진 27점을 전시한 임재근 사진특별전 〈콘크리트 기억〉을 개최했고, 같은해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는 제18회 민주언론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 2020)라는 논문으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난 8월에 한국전쟁·대전전투 70년 기록전 〈전쟁기억,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을 열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문제를 사회 이슈로 부각시켰다. 서면으로 진행된 임재근 후원회원과의 인터뷰를 정리해 보았다.
문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에 있는 비영리민간단체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에서 교육연구팀장으로 활동하면서, 대전지역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의 평화통일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중함과 통일의 필요성을 실내 강연으로 진행하기도 하구요. 대전형무소 터, 산내 골령골 등 우리 주변에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곳들을 다니면서 평화기행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영상과 사진을 통해서도 평화통일과 인권, 역사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의 꿈은 과학도였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카이스트에 진학했는데, 지금은 그 꿈을 잠시 뒤로 미루고 통일교육을 통해 통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시대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대학 시절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면 항일운동에 나서는 것이 시대적 요구였다면, 분단시대에는 통일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며 과학도의 꿈은 통일된 나라에서 이루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문 : 민간인 학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이유는 어떤 것일까요?
답 : 민간인 학살 사건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활동과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예요. 2015년 2월 말에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민간 차원의 유해발굴이 일주일 동안 진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2014년 민족문제연구소, 4.9통일평화재단, 한국전쟁유족회 등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을 결성해 진주에서 유해발굴을 진행한 후 두 번째로 선정된 지역이 제가 활동하고 있던 대전의 산내 골령골이었습니다.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를 비롯한 대전의 여러 단체들도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유해발굴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유해발굴 지원팀에 결합해 유해발굴에 동참했습니다. 때마침 그때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써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유해발굴에 동참하면서 논문의 주제를 ‘한국전쟁 시기 대전지역 민간인 학살 연구’로 잡고, 논문을 쓰게 되면서 더 본격적으로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한 활동과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평화기행 해설을 다니면서 틈틈이 찍은 사진을 모아 이란 제목으로 노근리평화기념관과 옛 충남도지사관사촌 ‘테미오래’에서 사진전을 진행했다. 2019년 테미오래 6호 관사에서 진행한 사진전 전시장의 한 장면.
문 : 옛 대전형무소 사진전을 개최하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답 :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주요 사업 중 하나가 ‘평화기행’이에요. DMZ 평화기행이나 제주 평화기행도 다니지만, 저희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이나 인근 지역으로 더 자주 평화기행을 다녔습니다. 대전에서는 주로 대전형무소 터와 산내 골령골을 찾았구요. 대전 인근의 충북 영동 노근리로도 평화기행을 자주 다녀왔습니다. 평화기행을 다녀오고, 준비하면서 그 현장에서 많은 사진들을 찍곤 했었는데요. 2019년에 노근리국제평화재단에서 사진전을 열자고 제의해 사진전을 진행했습니다. ‘콘크리트 기억’이란 제목을 단 사진전의 주요 키워드는 ‘전쟁’, ‘학살’, ‘감옥’이었구요. 구체적인 장소는 ‘노근리 쌍굴다리’,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 그리고 ‘옛 대전형무소 터’였습니다. 27점의 사진을 모아 7월 2일부터 2달 간 노근리평화기념관 전시실에서 전시를 진행했고, 9월부터는 한 달여 간 대전으로 가져와 옛 충남도지사관사촌 ‘테미오래’에서 전시를 이어갔습니다. 충북 영동 노근리에서 시작한 사진전을 대전을 찍고, 올해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서울의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도 하고 싶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아쉽게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문 : 산내 학살에 대해 독자 분들에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답 :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에 의해 대전형무소 재소자를 비롯해 보도연맹원 등 1,800명에서 최대 7,000명가량이 무참히 학살당해 암매장된 사건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서 전 국토가 무덤이라 할 만하지만, 그 중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사건은 피해 규모와 성격에 있어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입니다.
희생자들은 대전 지역에만 국한된 것에 아니라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 관련자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분들이 많았습니다. 암매장된 구덩이는 길이가 작게는 20~30m에서, 50m, 100m, 최장 200여 m에 이르기까지 무척 깁니다. 이 구덩이들을 모두 이으면 1km에 달할 것으로 보여 대전 산내 골령골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최근 산내 골령골에서는 사건 발생 70년 만에 대규모 유해발굴이 진행되었습니다. 9월 21일부터 대략 40여 일간 진행된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약 80평 공간에서 유해 200여구가 발굴되었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향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인 평화역사공원(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될 예정입니다.
지난 2019년 봄에 찍은 산내 골령골의 모습. “흩날리는 벚꽃 잎이 산내 골령골 마당 위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분홍 꽃잎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수천여 명의 넋이라도 되는 듯 참으로 슬픈 봄날이다.
문 : 민족문제연구소와의 인연과 향후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답 : 제 기억으로 민족문제연구소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6년 대전지역에서 대전지부가 주축이 되어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행위자 김창룡 묘 이장 추진 시민연대’를 구성할 때였습니다. 이때부터 김창룡 등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민족반역자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매년 현충일에 김창룡 묘 이장 촉구대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찾아내 정리하는 ‘대전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서’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후과(後果)들이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친일청산이 시급합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해방된 조국은 분단된 조국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통일을 이루었을 때에야만 온전한 해방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대전지부에서 항상 건배사로 ‘친일청산, 민족통일’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요, 이 구호를 완수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올해 한국전쟁·대전전투 70년을 맞아 옛 충남도지사관사촌 ‘테미오래’에서 기록전 ‘전쟁기억,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을 전시했다. 지난 10월 8일에 전시회 오프닝 강연을 옛 충남도지사공관 야외정원에서 진행했다.
문 : 그 밖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답 :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올해를 뜻깊게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미루고 있던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전쟁기 대전전투에 대한 전쟁기억 재현 연구’라는 제목으로 마무리지었습니다. 논문을 통해 대전전투를 중심으로 살펴본 한국전쟁 기억재현의 시선들이 군인들에게 맞추어 있었고, 호전적이고, 적대적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전쟁은 우리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전쟁은 승패를 떠나 양측 모두에게 심대한 인명피해를 주었습니다. 전투에 나선 군인들보다 자신을 보호할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던 민간인들은 피아(彼我)의 학살 속에, 폭
격 속에, 그리고 피란과 굶주림 속에 죽어가면서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를 다짐하는 호전적 전쟁기억을 통해서는 전쟁을 미리 방지할 수 없고, 오랫동안 호전적, 적대적 입장에서 전쟁기억에 노출된 사회에서는 전쟁에 친화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전쟁기억 재현은 오랫동안 배제됐던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기반으로 재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대전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국가를 위한 죽음’과 ‘국가에 의한 죽음’이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대전의 서북쪽 유성구 갑동에는 국립대전현충원이 위치해 있고, 그 반대 남동쪽인 동구 낭월동엔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골령골이 있습니다. 현충원은 ‘국가를 위한 죽음’의 상징이고, 골령골은 ‘국가에 의한 죽음’의 상징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전쟁기억은 ‘국가를 위한 죽음’에 너무 치우쳐 있고, ‘국가에 의한 죽음’은 외면당하고, 배제되어 왔습니다. ‘국가에 의한 죽음’에 대해 철저히 성찰하고, 교훈을 찾을 때에만 비극을 재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국가에 의한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전쟁기억을 평화를 위한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