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거짓 없는 사실.

순수한 거짓 없는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회의한다.

참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된다.

이는 상대주의나 다원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그러하다.

더하여 참이란 것도 단 하나의 것이 아니라 다양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진실’에 대한 요구는 마치 ‘이데아’에 대한 욕망과 닮아있다.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나는 동굴밖의 세상.

모든 물질과 사건의 배후에 있는 마지막, 욕망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실체적 세계가 그것이다.

이것은 영토화, 동일화, 권력화와 연결된다.

5.18은 오랜 시간 이 ‘진실규명’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80년 5월을 받아들이고 삶의 힘으로 만드는데 진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두환’은 이미 다수의 이들에게 ‘역적’이고 ‘살인마’일 뿐이다.

5월의 강력함이 군인들과 지배자들로 하여금 그 시점에서 ‘쿠데타’나 ‘계엄’을 주저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것은 87년 6월이나 17년 ‘촛불’의 잠재적 힘이기도 하다.

진실이 처벌을 위한 어떤 사실이라는 점에 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이란 5월의 봉인되지 않는 힘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라를 위한 ‘민주화운동’이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그런 수사들로 덮으려는 범람하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여 진실이란 이데아의 원본을 향한 ‘진실규명’이란 싸움을 통해서 흐려지는 시뮬라크르의 세계이다.

아쉽지만 세월호의 문제도 ‘진실’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

그것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는 이들이나 법 개정 투쟁을 하는 이들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무언가 더 밝혀질 것들이 있고 또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우리에게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차고 넘치도록 해주고 있다.

전혀 모자라지 않는다.

생명이 국가적 영역인 ‘안전’으로 취급되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야 한다.

진실이란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숨겨진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에 집중하는 순간 흐려지는 것들에 있다.

그리고 이는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침몰하지 않는 진실'에 대한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생명을 포획하는 것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