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잦아들기는커녕 세계 곳곳에서 재확산되는 기세다. 미세먼지 농도를 수시로 체크하는 게 지난해까지의 일상이었다면, 이제는 매일 신규 확진자수를 확인하고 재난 문자에 피로감을 느끼는 세상에 산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염병도 문제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더 무섭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공중보건 위기는 어느 덧 경제위기로 치환됐다.
사람의 이동과 물류가 멈추자, 맑은 공기와 자취를 감췄던 동물들이 돌아온 ‘코로나의 역설’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오래 지속될 것 같지 않다. 자연의 회복은 곧 경기 침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어떻게든 다시 굴러가도록 정부는 전례 없이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고 있다. 올해 세 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만 60조 원에 달한다. 국민재난지원금, 위기 기업 구제, 고용을 비롯한 사회안전망 확충과 같은 명목의 경기 부양책이 동원됐다.
‘오늘날 만약 신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 성장일 것이다.’ 이 명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건재해 보인다. 적어도 한국의 상황은 그렇다. 정부의 위기 대응이나 재정 투입 방식은 생태적 위기를 불러온 기존의 방식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기업의 부담을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온실가스, 그린벨트,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며, 국익을 앞세워 해외 석탄발전 건설 사업에 공적 재정을 퍼붓는 것과 같은 방식 말이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은 이런 회색 성장주의에 도전하는 프로젝트인가. 유럽연합의 그린딜이나 대선 레이스가 진행 중인 미국 민주당이 제시한 그린뉴딜은 공통점이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한다고 대충 얼버무리지 않는다. 2050년 전까지 유럽과 미국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막대한 공적 재정을 투여해 경제 전반의 탈탄소 전환을 추동하겠다는 자금 계획도 동반됐다. 유럽은 그린딜에 향후 10년간 1조 유로(약 1,300조원) 투자하면서 친환경이나 유해를 끼치지 않는(‘do not harm’) 조건일 경우에만 재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조건에 따라 화석연료는 물론 핵발전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면 한국판 뉴딜의 핵심축의 하나로 그린뉴딜이 제시됐지만, 녹색의 구체적 목표와 규모가 무엇인지는 불명확하다.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 없이 녹색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호는 공허하다. 회색 경제를 강하게 눌러 구조적 전환을 촉진하지 않은 상태에서 녹색을 아무리 덧칠해봤자 겉치레에 불과할 뿐이다.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대책은 대규모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산업계의 으름장을 핑계 삼아 정부는 소극적인 기후변화 대책을 정당화시킨다. 뚜렷한 개혁 조치도 없고 녹색 투자 규모도 어정쩡한 한국판 그린뉴딜은 그래서 왜소하다.
세계는 코로나로 인해 기존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일상을 맞았다. 위기의 시간 속에서 배운 게 있다면, 우리 사회가 마음만 먹는다면 집단적으로 방향을 바꾸고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현재 직면한 생태적 위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뉴딜이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라면, 코로나 이후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는 행동하는 시민들의 몫이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 활동가
탈핵신문 2020년 7월호(79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