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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동물의 능력을 훔쳐 히어로가 되고 싶은가
히어로가 훔치고 싶은 동물의 능력

 

글 바오밥 활동가

 

많은 사람들에게 두렵거나 보기 싫은 동물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바퀴벌레 다음으로 거미와 박쥐를 꼽지 않을까. 딱히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것도 없는데 그냥 싫다. 징그럽고 무섭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징그럽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거미와 박쥐에 열광하고 심지어 그것들을 보고 싶어 한다. 거미인간과 박쥐인간,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물에서 영웅으로 변신한 거미
인간의 상상력은 동물로부터 영감을 얻어 수많은 상징들을 만들어냈다. 스파이더맨은 거미의 능력을 가진 히어로로, 벽에 붙어 다니고 거미줄을 쏘아대면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한다. 눈에 보이는 즉시 때려잡아야 할 미물로 여겨지던 거미가 영웅으로 승격한 것이다. 거미에 한번 물리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 정도로 거미의 능력은 매력적이고 인간에게 이롭다. 거미의 상징이기도 한 거미줄은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5배나 질겨 첨단 방탄복 소재로 연구되고 있으며 공기가 잘 통하고 수분을 막아줘 ‘꿈의 섬유’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거미줄은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5배나 질겨 첨단 방탄복 소재로 연구되고 있으며 ‘꿈의 섬유’라고 불리기도 한다. ⓒHenry Oon, flickr

지구에 거미가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주인공인 피터 파커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져 스파이더맨의 가면을 벗어버린다. 스파이더맨이 사라진 뉴욕엔 범죄가 들끓기 시작한다. “거미를 죽이면 불행이 찾아온다. 당신이 53마리의 파리를 잡지 않는 한.” 영국 민요의 한 구절이다. 거미는 매미충, 파리, 모기와 같은 해충들을 잡아먹는다. 20년 이상 거미 연구에 몰두해온 임문순 박사는 농약 공해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 거미에 있다고 말한다. 거미는 ‘살아있는 농약’이라는 것. 이 정도의 능력이라면 거미가 히어로의 대접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거미님, 몰라뵈서 죄송했습니다.

 

박쥐의 어둠을 훔친 배트맨
스파이더맨이 거미의 능력을 빌린 히어로라면 배트맨은 박쥐의 모습을 흉내 내어 만들어진 히어로다. 배트맨이 살고 있는 ‘고담시’는 범죄자들이 득실득실한 어둠의 도시다. 브루스 웨인의 부모는 강도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하고,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검은 망토를 두르고 정의의 사도 배트맨으로 변신한다. 박쥐는 낮 동안 잠을 자고 밤에 먹이를 잡으러 돌아다니는 습성을 지닌 동물이다. 어둠의 악당들을 퇴치하는 정의의 사도와 박쥐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져 밑도 끝도 없이 강하기만 했던 슈퍼맨과 어깨를 겨룰 만한 히어로가 탄생한 것이다.

 

배트맨의 성공은 그가 가진 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박쥐의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검정 마스크, 검정 슈트, 검정 망토, 검정 자동차는 배트맨을 어둡고 고독한, 그렇지만 마음은 따뜻한 인간적인 히어로로 만들어 준다. '올블랙' 패션 종결자 배트맨! 박쥐는 귀로 어둠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밤에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 어둠을 틈타 먹이를 쉽게 구하는 것이다. 배트맨이 검정색으로 온몸을 치장하여 악당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해가 진 밤에 주로 활동을 하는 설정은 박쥐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에서 히어로가 된 거미와 박쥐. 이들이 히어로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까. 아니면 히어로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할까. 어쨌든 인간이 동물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의 능력을 훔쳐 히어로가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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