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태식, 홍난유 비석 방치 논란
친일 인물 알고도 쉬쉬한 문화원…친일잔재 청산에 소극적인 당진시
“제대로 된 전수조사로 독립운동가들이 예우받는 사회 만들어야”


사진 왼쪽부터 1. 당진 남산공원 석궁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 자연보호헌장비 옆에 인태식 씨의 공적비가 세워져있다. 2.당진문화원에서 당진문화예술학교로 올라가는 도로 오른쪽에 홍난유의 선정비를 비롯한 당진에 덕을 쌓은 인물의 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당진신문=지나영 기자] 당진 남산공원에는 당진 출신의 관료·정치인 출신 인태식 씨의 공적비가, 그리고 당진문화원에는 1903년부터 1905년까지 당진군수로 재직한 홍난유 씨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수록된 친일 인물이다.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에 세워진 두 인물의 비석에는 그들의 공만 적혀 있을 뿐, 친일 행적에 대한 설명은 없다. 특히 인태식 씨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분류되면서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홍난유 씨는 당진시에서 파악조차 못했다. 친일 인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자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작년 당진문화원에서 동학농민 관련 특강이 있어 방문했다가, 문화원을 둘러보던 중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홍난유 씨의 비석을 발견했다”며 “특강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홍난유 씨가 친일 인물이라고 말했더니, 이미 문화원 관계자는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진시는 홍난유 씨가 친일 인물이라는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친일 잔재 청산에 지자체와 관계자들이 적극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친일 인물 알고도 쉬쉬한 당진문화원

당진문화원 홈페이지에는 홍난유 씨의 이력 및 활동사항의 마지막에 “전남광주군수를 역임하면서 일제의 앞잡이 역할을 하여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에 수록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당진문화원 관계자는 “2년 전에 기존 남산 스포츠센터 인근에 있던 홍난유 씨의 송정비가 당진문화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안내 표지판을 만들기 위해 정보를 수집했다”며 “수집한 자료에서 홍난유 씨의 친일인명수록을 확인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진문화원은 홍난유 씨가 친일 인물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송정비에 대한 어떠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당진시민단체는 물론 당진시, 심지어 당진문화원장조차도 본지가 취재에 들어가고 나서야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

당진문화원 유장식 원장은 “오래전부터 당진에서 덕을 쌓았다는 분들에 대한 비석을 해 놓은 것으로 홍난유 씨의 비석을 두고 누군가 문제를 제기했다면 이사회를 통해 처리 방안을 논의 했을 것”이라며 “문화원은 당진시로부터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비석을 문화원이 자체적으로 치우거나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추후 문화원 이사회가 열리고, 회의에서 비석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모아지면 시에 처리방안을 두고 논의를 요청하겠다”고 전했다.

당진시 문화관광과 정영환 과장은 “한 사람의 비석을 세우기 위해서는 배경이 있었을 것이고,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 결정 내서 비석을 세우기는 어렵다”며 “그런 점에서 홍난유 씨의 비석에 대한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정보 수집을 통해 당진문화원과 논의를 거치는 과정을 거쳐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친일 잔재 청산은 공론화가 우선”

의병 진압과 강제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은 홍난유 선정비는 광주공원에도 있다. 이에 광주광역시는 전수조사를 통해 지난해 선정비를 뽑아 옮기고 그 앞에 단죄문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설치해 놓은 홍난유 단죄문

하지만 당진시는 그동안 친일 인물의 공적비에 대한 처리 및 단죄비 설립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 2007년 공론화 됐던 인태식 씨의 공적비 문제와 홍난유 씨에 대해서 정확한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친일 잔재 청산에 대한 시의 추진사업 계획도, 친일 잔재물 청산에 관련한 부서도 따로 없다.

당진시역사문화연구소 김학로 소장은 “친일잔재를 대한민국에서 청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친일의 자손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지자체에서 가장 먼저 앞장서서 친일 잔재 청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진에서 친일 인물의 잔재물 청산이 되지 않은 것으로 남산에 있는 인태식 씨의 송정비를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인태식 씨의 송정비는 지난 2007년 당진참여연대가 문제를 제기하고, 단죄비를 설치해야 한다며 공론화가 됐었다.

당시 당진군은 인태식 씨의 송정비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됐고, 결국 당진참여연대는 단죄비 사업을 추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까지 인태식 씨의 친일 행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단죄비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당시 당진참여연대 부회장을 맡았던 당진시의회 조상연 의원은 “당시 인태식 씨의 공적비 앞에 영세불망비를 세우는 것을 추진했고,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었지만 끝내 할 수 없었다”며 “공적비에는 인태식 씨의 좋은 내용만 적혀 있고 친일 행위에 대한 내용은 전혀 적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상연 의원은 “친일 잔재물을 청산하고 단죄비를 세우기 위해서는 지역 내 시민단체에서 먼저 앞장서야 할 것”이라며 “친일 잔재 청산은 시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이 가고,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당장 먼저 움직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친일 잔재 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당진시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친일 인물 공적비 처리 방안 및 친일 잔재물 청산을 위해서는 여론이 우선 모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일반 시민들은 모르는 일제 잔재물이 분명 있는데,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이든 언론에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본지의 취재 과정을 통해 홍난유 씨의 선정비 문제를 알게 됐다는 김학로 소장은 “홍난유 씨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에 대해 나도 알지 못했던 만큼 시민들은 친일 인물 및 잔재물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더 없을 것”이라며 “그동안 친일파가 주류를 이끌어오면서 친일 잔재 청산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지자체에서 친일 잔재 청산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당진시는 당장 친일 잔재물 청산에 대한 추진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지역 내 시민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제대로 된 전수조사를 거쳐 잔재물을 청산해 독립운동가들이 예우받는 사회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일인명사전

인태식
1930년 조선총독부 재무국 세무과속으로 근무 이후 1938년 경성세무감독국 홍천세무서 속(서장)으로 근무했다. 경성세무감독국 강경세무서 서무과장과 홍천세무서 서장 등으로 재직할 때 중일전쟁과 관련한 특별세 및 임시이득세 등의 징수, 임시조세 조치 사무, 중일전쟁에 종군한 군인·군속에 대한 조세면제와 징수유예 사무, 중일전쟁과 관련한 각종 세금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강화 등 전시 사무를 수행한 공로로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렸다. 해방 후 1953년 실시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자유당 소속으로 당진에서 출마, 당선됐다.

홍난유
1904년 2월 충청남도관찰부 당진군수에 임명됐던 홍난유 씨는 1905년 11월부터 전라남도관찰부 광주군수를 지냈다. 홍난유 씨의 선정비는 청렴한 덕으로 정치를 잘 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05년 세워졌다. 하지만 광주군수로 재직중이던 1908년 의병 진압을 목적으로 관내 각 면을 순회하면서 연설했고, 1909년 9월 일본군이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남한대토벌작전’을 실시하자 관내 각면을 순회하면서 관민들을 설득했다. 합병 후 1910년 10월 전라남도 광주군수(고등관 6등)에 유임되면서, 재직중이던 1913년 1월 사망했다. 1912년 8월에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기도 했다.

지나영 기자

당진신문 

☞기사원문: 당진 남산공원과 문화원에 버젓이 세워진 친일파 공적비